(앞에서 계속됩니다.)

임을 애타게 갈구하면, 만남은 성급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법인가요? 사랑을 애타게 갈구하는 남자는 그미를 사랑하는 대신에, 스스로 갈구하는 임의 상만을 사랑합니다. 돈키호테는 (비록 착각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행위를 필요로 하는 현실과 직접 부딪칩니다. 현실 속에는 자신의 갈망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돈키호테가 둘시네아를 생각할 때는 이와는 다릅니다. 그미는 하나의 명상으로서 돈키호테의 뇌리 속에서만 출현할 뿐입니다.
친애하는 T, 언젠가 독일의 작가 투콜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키 크고 날씬한 분을 갈구하지만, 작고 뚱뚱한 분을 얻는다. 그게 삶 C'est la vie”이라고 말입니다. 둘시네아는 아주 가까운 곳, 토보소에 살고 있는, 속된 표현으로 이목구비가 그냥 달려 있는 추녀입니다. 그런데도 돈키호테는 그미를 최고의 미녀로 착각하고, 가급적이면 그미를 만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돈키호테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립니다. 즉 그미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는 자신이 가치 없는 인간이며, 언제나 그미로부터 떠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젊고 매력적인 약혼녀 레기네 올젠 Regine Olsen과 결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수사의 길을 걷고 싶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의 결혼생활로 인하여 행여나 그미에 대한 깊은 사랑이 실제 현실에서 파괴될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사랑하는 임과 이별함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마음속에 품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미가 파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리석은 철학자는 행여나 그미가 자살할까 노심초사했다고 합니다. 그는 평생 레기네를 그리워하며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결국 레기네 올젠이 받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후회의 편지 그리고 유산으로 남긴 그의 저작물이었습니다.
돈키호테 역시 키르케고르처럼 행동합니다. 실제 현실에서 둘시네아에 대한 사랑을 처음부터 포기함으로써, 마음속으로 가장 커다란 위안을 얻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는 엄밀히 따지면 비정상적으로 왜곡된 것입니다. 21세기의 지금 여기를 의식한다면 오히려 “사랑하면 뺏어라”라는 전언이야 말로 만고불변의 진리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사진은 피카소의 안락의자에서 잠든 여인입니다. 돈키호테는 깨어있는 꿈속에서 살면서, 자신의 실존을 마냥 시험하고 있습니다. 돈키호테가 희망하는 세계는 실제 세계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기사들의 전설 그리고 그들이 추종하는 여인들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주인공은 바로 이러한 희망의 세계 속에 그리고 갈구하는 세계 근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세계가 -제한적인 의미에서 고찰할 때- 결코 천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둘시네아는 그 자체 “발견될 수 없는 여인 la femme introuverble”입니다.. 그미는 오히려 꿈속의 현재형으로 출현합니다. 돈키호테는 그미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미를 애타게 갈망하지만, 그미는 영원히 건드릴 수 없는 북극성과 같은 항성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환상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완전한 여인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이러한 상이 깨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돈키호테 그리고 둘시네아 -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처구니없는 사랑의 그림자를 쫓는 젊은 청춘남녀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허상인데도 불구하고, 실재하는 인간을 바로 고찰하는 분은 무척 드뭅니다.
(걔속 이어집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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