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라 한은 1946년 자우어란트의 브라흐트하우젠에서 태어나다. 그미는 처음에는 사무직원으로 살려고 했으나, 진로를 바꾸어 대학에서 문예학, 역사학 그리고 사회학 등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다. 함부르크, 브레멘, 올덴부르크에서 시학을 강의하였으며, 1979년에서 1989년까지 브레멘 라디오 방송국에서 문학 부문 프로듀서로 일하기도 하다. 시집으로는 『머리 위의 심장 (Herz über Kopf)』 1981, 『유희하는 사람들 (Spielende)』 1983, 『연애 시편들 (Liebesgedichte)』 1991 등이 있다. 특히 울라 한은 90년대부터 장편 소설을 발표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다. 2001년에 간행된 소설, 『숨겨진 단어 (Das verborgene Wort)』는 작가의 유년 시절의 금기 사항과 이로 인한 사회의 부적응 등을 다루고 있다.
구상적으로 말하자면
울라 한
한 그루 나무라면 나는 그대의
공허한 손 안에서 자라리라
그대가 바다라면 나는 그대의
하얀 모래성들을 쌓으리라.
그대가 꽃 한 송이라면 나는
그대의 모든 뿌리 파헤치리라
하나의 불꽃이라면 나는 부드럽게
그대의 집을 재로 만들리라.
요정이라면 나는 땅 아래로
내려가 그대를 빨아 마시리라
그대가 하나의 별이라면 나는
하늘 위에서 그댈 쏴 죽이리라.
Bildlich gesprochen von Ulla Hahn: Wär ich ein Baum ich wüchse/ dir in die hohle Hand/ und wärst du das Meer ich baute/ dir weiße Burgen aus Sand.// Wärst du eine Blume ich grübe/ dich mit allen Wurzeln aus/ wär ich ein Feuer ich legte/ in sanfte Asche dein Haus.// Wär ich eine Nixe ich saugte/ dich auf den Grund hinab/ und wärst du ein Stern ich knallte/ dich vom Himmel ab.
(질문)
1. 시인은 어떠한 유형의 여성들을 비판하고 있습니까?
2. 상처 입은 “자궁”은 오로지 남자의 배신 때문일까요?
(해설)
상기한 시 「구상적으로 말하자면」은 이른바 “멀티 포엠 (Multipoem)”의 형식을 빌려, 급진적 사랑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멀티포엠”은 시, 음악 그리고 영상 등을 예술적 매체로 활용하는 전위 예술의 장르로서, 남한에서는 장경기 시인이 이를 주도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시에서 “나무”, “바다”, “꽃”, “하늘”, “집” 등은 기존의 연애 시에서 아름답고 서정적인 이미지를 반영하는 시어로 사용된 바 있는데, 시인은 이러한 시어의 의미를 완전히 전복시킵니다. 이는 남자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고 남성적 질서 속에 안주하려는 여성들에 대한 경고의 발언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꽃은 뿌리를 통해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한 남자의 “모든 뿌리”를 속속들이 파헤치려고 합니다. 바다는 무제한적 넓음의 공간이지만, 시인에 의해 하얀 모래성들로 축소화되어 있습니다. 집은 더 이상 편안함, 안온함을 뜻하지 않고, 불에 타버릴 대상으로 전락해 있을 뿐입니다.
“요정”은 더 이상 아름다운 용모와 예쁜 목소리를 지니지 않습니다. 그미는 사랑하거나 증오하는 임을 익사시키려고 의도합니다. 별은 더 이상 도달되지 못하는 무엇이 아닙니다. 그것은 증오로 가득 찬 어느 여성의 표적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로써 여성은 오늘날 더 이상 사랑 받는 존재가 아니라, 남자들의 배신으로 인하여 “상처 입는 자궁 그 자체”를 상징하지 않는가요? 비근한 예로 소설가 이경자는 『사랑과 상처』(실천문학 1998)에서 다음의 내용을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즉 한 명의 가부장에게 매달려 사랑의 진수를 맛본다는 것은 하나의 허상이라고 말입니다. 당신은 이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시 예술
울라 한
감사해요 새로운 형식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나는 우뚝 서 있어요
확고한 운각들 그리고 오래된
규범들 무더기 각운 위에
울려 퍼져야 하는 걸 글로
담고 당신들의 귀에 들려주지요
그 노래는 나의 땀구멍에서
시행으로 줄줄 흘러나와요
위에, 그 위와 그 아래
바로 위에 그 가까이에 자 이제
로렐라이는 자신의 노래 부르면서
그렇게 행동했지요
Ars poetica von Ulla Hahn: Danke ich brauch keine neuen/ Formen ich stehe auf/ festen Versesfüßen und alten/ Normen Reimen zu Hauf // zu Papier und zu euren/ Ohren bring ich was klingen soll/ klingt mir das Lied aus den/ Poren rinnen die Zeilen voll // und über und drüber und drunter/ und drauf und dran und wohlan/ und das hat mit ihrem Singen/ die Loreley getan
(질문)
1. 현대시에서 일탈된 전통시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2. “로렐라이”의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시인의 결단은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해설)
시의 제목은 호라티우스 (Horaz, BC. 65 - BC. 8)의 시 예술을 연상시킵니다. 이로써 울라 한은 포에지를 시 형식을 통해서 성찰하려고 합니다. 작품은 1981년에 집필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모든 전위적 실험을 남김없이 시도하였고,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하여 과거의 모든 문학 형식으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이때 한은 의도적으로 소네트라는 인습적 형식을 도입하였지요. 평론가들은 한의 이러한 태도를 진부하다고 야유했습니다 (Reich-Ranicki 2002: 736). 그러나 세밀히 시를 읽으면, 우리는 시인이 소네트 형식을 막무가내로 사용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령 제 2연은 잘못된 행으로 끊겨 있어서, 각운이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인용 시에서 소네트 형식은 울라 한에게 시적 주제이자 시적 수단이라고 말입니다.
과거의 시는 운율 그리고 각운 등을 맞추면서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달콤한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시인은 한가로이 시 형식에 신경을 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의 기능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시에서 일탈된 전통시의 기능은 음악과 미술적 특성입니다. 가령 호라티우스는 시의 회화적 특성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문학 작품은 그림과 같다. (Ut pictura poesis erit)”.
그러나 오늘날 시의 기능은 대체로 전체주의적 질서에 대해 저항하려는 추세를 보여줍니다. 폴커 브라운 (Volker Braun)도 말한 바 있듯이 “공산주의 그리고 포에지는 체제 파괴적으로 기능”합니다. 울라 한은 상기한 시에서 더 이상 사람들이 듣기 좋은 작품을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노래”는 더 이상 그미의 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시인은 더 이상 로렐라이의 운명을 답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로렐라이는 라인 강을 지나치는 사공들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면서,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갔습니다. 이는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요정 세이렌의 술수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한마디로 달콤한 노래로 사공들의 목숨을 빼앗는 노래는 더 이상 시의 기능으로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시의 기능은 과연 무엇일까요? 울라 한은 이러한 본질적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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