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5. 타민족의 추방과 잃어버린 보헤미안 문화
레빈의 방앗간은 프로테스탄트를 신봉하는 독일 제국주의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담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보브롭스키의 소설은 가난한 소수 민족들에 대한 작가의 인간애, 쿨머란트에서 살아가던 보헤미안의 삶의 방식을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방앗간이 누구의 소유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보브롭스키에게 중요한 것은 쿨머란트에서 살아가던 소수 민족들의 동류의식을 묘사하고 그들의 다른 삶의 방식 및 존재 가치를 부각시키는 일이었다. 예컨대 브레히트는 "코카사스의 백묵 원 Der kaukasische Kreidekreis"에서 땅의 소유권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서 그루셰와 아츠다크의 우화를 도출해내고 있다면, 보브롭스키는 방앗간 소유권 문제보다는, 보헤미안 출신의 집시들, 유태인들 그리고 바이츠만텔과 같은 방랑 시인들이 어떻게 근거지를 잃고 떠나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예를 제시하려고 했다.
주변 인물들 역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레빈의 방앗간 문제에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견해를 표명한다. 특히 몇몇 독일인들은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레빈의 정당성에 적극적으로 입증하려 하거나, 이에 동조한다. 하모니카 연주자 빌룬은 술을 너무 마셔 교사직에서 쫓겨 난 독일인인데, 하베당크와 함께 방dkt간이 레빈의 소유라는 것을 행동으로 입증한다. 보헤미아 출신의 플룻 연주자 요한 블라디미르 게테는 “어째서 그들은 그따위 인간이냐?”고 ‘나’의 할아버지 요한을 비난한다. ‘나’의 외할머니 격인 후제는 요한의 범법 행위를 비난할 정도로 사리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정의를 추종하는 인물이다. 법에 대해 일가견을 지닌 후제는 재판 과정의 일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그리고 설교자 펠러의 아내인 요제파는 요한에게 허리를 굽히고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는 남편을 심하게 비난한다. 이때 그녀는 남편에게 뺨을 맞고 난 뒤에 만취 상태에서 자살해 버린다. 요한이 레빈의 방앗간을 가로채려고 계획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피혁꾼 프로에제는 요한에게 “너는 범법자야”하고 말하며, 비난을 가한다 (3. 164). 또한 폴란드 부농인 게르만 레브레히트는 경제적인 이유로 요한의 입장을 따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푼다. 즉 그는 레빈의 방앗간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니스반트와 코린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한마디로 말해 레빈의 방앗간은 -비록 방법론적으로는 비사실적이지만- 당시의 쿨머란트의 현실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비록 너무 많은 등장인물로 인하여 소설적 긴박감이 약화되고 있기는 하나, 소설은 19세기 중엽의 여러 동유럽 민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사항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인물, 가수 바이츠만텔과 화가 필리피이다. 소설 속에서 바이츠만텔은 약자를 위하는 민족시인 내지는 예언자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이른바 세계 시민으로서, 국적을 초월하여 대립의 국면이 벌어질 때 언제나 약자의 편에서는 사람이다. 국적 불명의 바이츠만텔은 독일어 폴란드 어를 함께 사용하는 국적 불명의 가수인데, 그의 바지에는 미타우 지방의 문장 (紋章)인 십자가가 마치 헝겊처럼 붙어 있다. 그는 폴란드의 집시 하베당크와 함께 레빈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이를테면 바이츠만텔은 바르샤바 독재자와 차르의 폭정에 항거하는 농민을 노래하기도 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과연 누가 말할까/ 동쪽 지역은 목사들을 전혀 필요하지 않네.” (3. 171).
바이츠만텔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형적 음유 시인 내지는 가수라면, 화가이자 시인인 필리피는 현대 시민 사회에 살고 있는 지식인 화가의 전형이다. 화가 필리피는 소설의 결말부분에 잠시 등장하는데, 내레이터인 ‘나’에 의해서 무척 유머러스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는 시장을 “오래된 고객”이라고 칭할 정도로 대등하게 대하고, 경찰 서장에게 “너, 내 말뜻을 많이 알아차려라”고 반말한다. (3. 218). 특히 필리피는 말 장수 로옙스키가 반유태주의에 열광한다는 이유로 더 이상 상종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필리피는 요한에게 예술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예술의 과업은 죄를 저지른 자에게서 편안함을 빼앗는 데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6. 첫 번째, 두 번째 유령의 상
다섯 개의 유령의 상은 "레빈의 방앗간"에서 에피소드로서 실려 있지만, 작품의 주제 및 등장인물의 심리적 상황을 고려할 때 무척 중요한 사항들을 시사하고 있다. 요한은 다섯 번에 걸쳐 유령을 만난다. 유령들은 분명히 ‘나’의 선조들이다. 그러나 선조의 이야기는 현재에 살고 있는 ‘나’와는 결코 무관한 게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15번째의 핵심적인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아버지들의 잘못은 자식들에게 그리고 삼사 세대 손자들에게 재앙을 내렸다. 그러니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에 관해서 말하지 말자. 우리는 아마 이 아버지와 할아버지들 역시 삼사 세대 혹은 26세대의 자식들임을 알아야 하리라.” (고딕체 - 필자; 3. 126).
첫 번째 유령의 상은 제 2장에서 등장한다. 이때 요한은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려고 멜켄으로 가기 전에 요한은 꿈을 꾸게 되는데, 꿈속에서 강도 폴레스케를 만난다. 송골매라고 불리던 검은 수염을 단 건장한 남자는 꿈속에 나타나 “나의 권리!”하고 외친다.
폴레스케는 폴란드 사람으로서 15세기 때에 폴란드 독립을 위하여 의적 활동을 벌린 인물이었다. 그는 “오스트로비츠키” 혹은 “폴레스케 폰 보브로보”라고 불리던 것으로 미루어 요하네스 보브롭스키의 선조이다. 폴레스케는 1507년에서 1516년에 말을 거래하다가, 나중에 폴란드의 권익을 위하여 의적 활동을 벌린다. “만약 단치히 사람들이 오면 도로를 점거하여 그들의 마차를 멈추게 한다. ‘매’가 외치면, 폴레스케의 부하들은 숲에서 나와 급습한다. 협상 혹은 타작. 17개의 걸어 총.” (3. 26). 폴레스케는 체포되어, 살인 판결을 받는다. 4주 후에 그는 감옥에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그러나 보브롭스키는 폴레스케가 처형당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실제로 폴레스케가 사망 시기는 1526년 3월이었는데, 소설 속에는 1516년 9월로 기록되고 있다.
첫 번째 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꿈에 관한 일반적 해석”이 아니라, 꿈을 꾼 요한의 처지는 어떠한가? 그리고 주인공 ‘나’는 어떠한 입장을 지닌 채 꿈을 기술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폴레스케는 무언가를 생각한 뒤에,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할아버지는 이를 솔직히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선조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권리와 관계되는 달콤함을 맛보고 있었다.” (3. 25). 이로 미루어 ‘나’의 묘사에서 드러나는 것은 두 가지 사항이다. 첫째로 폴레스케가 폴란드 출신의 의적이긴 하였으나, 요한의 선조이다. 사실 요한이 프로테스탄트를 신봉하고 프로이센 황제를 지극히 섬기고 있으나, 그의 조상 가운데에는 폴란드의 피가 담겨 있다. 그러니까 순수 독일인의 피 순수 유대인의 피 등을 따진다는 것 자체는 -보브롭스키에 의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인종과 인종 사이를 이간시키도록 작용한다. 둘째로 폴레스케에 관한 꿈은 요한의 무의식 속에 담겨 있는 양심의 가책에 의해서 출현한 것이다. 폴레스케가 자신의 나라를 위해서 의적 활동을 전개했다면, 요한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레빈의 방앗간을 소유하려고 하고 있다. 말하자면 요한은 자신에게도 폴란드의 피가 담겨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강제로 방앗간을 차지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다.
두 번째 유령의 상은 제 3장 마지막 부분에서 꿈속에서가 아니라, 요한의 환영으로 나타난다. 말켄에서 여러 명의 유지들에게 재판에 대한 지지를 부탁한 뒤 요한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는 세숫대야에 물을 부을 참이었다. 요한 앞에서 크뤼스츠토프의 모습이 나타난다. 거울을 통해 나타난 유령은 야윈 얼굴에 셔츠와 맨발 차림으로 요한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요한에게 “나의 영혼이여!”하고 말을 건넨다. 크뤼스츠토프는 로코츠 출신의 장수로서 1606년에서 1608년 사이에 침략 전쟁을 벌인 가톨릭을 신봉하는 스웨덴 왕 치그문트에 의해 추방당한 사람이다. 그는 “보브로보 출신의 경건한 거친 인간”으로서 요한의 선조 가운데 한사람이다 (3. 58). 프로테스탄트에 열광한 크뤼스츠토프는 왕에게 쫒기면서도 전투를 감행하다, 결국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그는 새로운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 예수이트 교인들과 함께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바로 크뤼스츠토프이다. 할아버지는 즉시 알아차렸다. 비알켄에서 버드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 보브로보 출신의 경건한 거친 인간, 크뤼스츠토프였던 것이다. 도저히 그의 영혼은 신앙이 죽어버린 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없었기에 목숨을 끊었다. 수많은 동료들이 1603년 그곳을 지배하던 왕 치그문트 3세의 폭력에 의해서 쫒기거나 화형당하지 않았던가?” (3. 58f). 정신을 되찾은 요한은 자신의 모습이 바로 셔츠 차림에 맨발임을 알고는 너무나 놀라 그릇을 깨뜨린다.
한마디로 말해 두 번째 유령의 상은 요한의 죄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의 독불장군과 같은 종교적 신념의 확인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뒤이어 나타나는 ‘나’의 발언에 의해서 그대로 증명되고 있다. “신앙. 1874년 말켄 동맹. 종파 분열의 극복. 침례파, 재림파, 방법론자 안식일파, 멘노 시몬스파.” (3. 59). 아닌 게 아니라 글린스키와의 대화는 폴란드 지역의 가톨릭에 대한 비판에 국한되었을 뿐, 유태인 내지는 슬라브 민족에 대한 비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엄밀히 따진다면 크뤼스츠토프는 “가톨릭을 믿지 않는 자는 나라를 떠나라!”라는 정책에 반발하는 인물의 전형이다. 폴레스케가 “범법 적인 행위”를 저지른 요한을 꾸짖는 인물라면, 크뤼스츠토프는 요한의 프로테스탄트 종교관과 정치관을 공고히 해주고, 종교적 신념을 확인시켜주는 인물이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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