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보라매였다.
할아버지는 늑대였다.
그리고 증조부는 바닷속의
강도와 같은 생선이었다.”
1. 들어가는 말
요하네스 보브롭스키 (1917 - 1965)의 "레빈의 방앗간. 나의 할아버지에 관한 34개의 문장 Levins Mühle. 34 Sätze über meinen Großvater" (1964)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 사이에 빚어지는 생존 문제와 갈등을 예리하게 묘파하고 있다. "레빈의 방앗간"은 독일인,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그리고 그들 속에 섞인 유대인들이 겪게 되는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갈등의 양상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보브롭스키는 시를, 특히 산문을 쓰는 의도가 “동부 지역의 민족에 대한 독일 민족의 불행한 죄의식을 표현하는 데 있다”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이로써 그는 “민족 간의 상호 보복적 경향”을 지양하고, 공격 성향을 낳는 민족적 자의식을 극복하려고 의도했다.
그러나 이로써 민족 사이의 갈등은 보브롭스키의 견해에 의하면 전적으로 극복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문학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본질적으로 무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브롭스키는 자신의 유일한 문학적 소논문 「언급된 죄, 추방된 죄? (Benannte Schuld - gebannte Schuld?)」에서 프랑스 혁명, 『엉클 톰스 캐빈』 등을 예로 들면서, 소위 문학의 거대한 영향력을 부정하였다. 보브롭스키의 견해에 의하면 문학은 주어진 사회의 일면을 (혹은 전면을) 반영하나, 사회의 발전, 퇴보 그리고 변화를 주도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문학은 최소한 일반적으로 “극복되지 못한 것”이라고 표현되는 “모든 것을 새롭게 밝히”는 데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독일 작가가 자신의 가족의 어떤 죄과를 지적할 때, 이는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이를테면 보브롭스키는 할아버지의 예를 들어 동유럽 지역에 살던 민족들에 대한 “범행”을 지적하였다. “둥지를 더럽히는 nestbeschmutzende” 이러한 입장은 강자의 자기반성으로서의 휴머니즘 문학의 차원을 넘어서, 나아가 화해와 평화 공존을 지향하는 휴머니즘의 정신을 지향하고 있다.
본고는 "레빈의 방앗간" 및 작품의 에피소드라고 말할 수 있는 다섯 개의 유령의 상들을 분석함으로써, 사유 재산, 제국주의 그리고 인종 탄압 등의 상호 관련성 및 세부적 특성을 밝히려고 한다. 다섯 가지 상들은 주로 요한의 꿈속에 등장하는데, 작품의 주제와의 관련성을 고려할 때 결코 간과될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까지 유령의 상에 대해서 몇 편의 논문이 있으나, 보브롭스키 작품의 에피소드는 필자의 견해로는 무엇보다도 문학적 현실과의 맥락 하에서 그리고 주인공 ‘나’의 입장과 관련해서 보다 세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미리 말하자면 다섯 개의 상들은 제각기 공통성과 이질성을 지니고 있으며, 작품 내에서 요한의 심리 상황 및 내레이터 ‘나’의 입장에 대한 은유로서 이해될 수 있다.
2. 배경 및 소설의 형식
소설은 1874년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지역 근처 (바이히셀의 지류인 드레벤츠강의 줄기)에 있는 어느 마을인 노이뮐 (Neumühl)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론 제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보브롭스키는 이 근처의 지역, 크라코프, 레체스초프 등지에서 독일 군인으로 군무한 바 있었으므로, 이 지역의 현실에 친숙해 있었다. 그러나 작가가 1871년 독불 전쟁이 끝난 뒤의 프로이센 제국의 시대를,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있었던, 현재의 폴란드 지역을 설정한 것은 극히 의도적이다. 그 까닭은 시대와 장소가 독일 파시즘 침략사의 첫 시기 내지는 첫 공간으로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대적 배경은 “정치적 경제적 갈등이 이데올로기로 변하는 첫 번째 시기”에 해당된다. 보브롭스키는 독일 제국주의자들의 첫 번째 영토 확장 정책이 동쪽으로 향했음을 고려했던 것이다.
15장으로 나누어진 이 소설은 두 가지 이유에서 쉽게 요약되지 않는다. 첫째로 작가는 사건 전개 및 일직선상의 진행 과정에 커다란 비중을 두지 않고, 오히려 당시의 현실 상황 및 인물들의 관계를 -마치 그물이 엉켜 있는 듯하게-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문학적 묘사 방식은 보브롭스키가 산문적 모범으로 삼은 두 명의 작가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다. 즉 헤르만 주더만 Hermann Sudermann과 아르노 슈미트 Arno Schmidt가 바로 두 작가이다. 특히 헤르만 주더만은 보브롭스키와 동향의 작가로서 리타우의 이야기를 집필한 바 있으며, 이는 보브롭스키의 애독 서였다고 한다. 둘째로 주인공 ‘나’는 현대, 즉 60년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며, 소설 속의 현실상은 ‘나’의 추측, 친척으로부터 들은 정보, 전해 내려오는 자료 등에 의존해 있다. “바이히셀 강에는 몇 개의 작은 지류가 흐르고 있는데, 지난 세기의 60년대에는 이곳에 제법 많은 독일 사람들이 어떤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 뚱뚱한 농부들은 독일인이요, 마을에 살고 있는 폴란드 인들은 가난했다고 말하는 게 옳으리라 (...) 아니,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대신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독일인들은 카민스키, 토마세프스키, 코자코프스키라고 불렸고, 어느 폴란드인의 이름은 레브레히트 게르만이었다.” 그러니까 과거의 사건은 ‘나’의 기억에 의존할 뿐이다. 불명확한 과거 사실의 경우, 이는 주인공 ‘나’의 추측 내지는 상상에 의해서 여백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렇기에 레빈의 방앗간은 구동독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표방하는 명료하고 현실적인 자연 묘사, 긍정적 영웅상, 낙관적 미래주의와 같은 전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보브롭스키의 소설에 나타나는 유추와 추측 그리고 여백 등과 같은 특성은 -소설 기법적인 면에서 볼 때- 우베 욘존의 야콥에 관한 추측, 크리스타 볼프의 크리스타 T.를 생각하며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를테면 소설은 복합적인 두개의 다른 관점으로 전개된다. (그렇기에 레빈의 방앗간은 일인칭 소설 및 3인칭 소설의 요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 하나는 주인공 ‘나’의 서술이요, 다른 하나는 부지런한 유태인 레빈과 ‘나’의 할아버지 요한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에 관한 서술이다. 가상적 화자인 ‘나’는 소설 속에서 유머와 아이러니를 동원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 속에 묘사된 문제를 깊이 숙고하도록 촉구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라 내레이터 ‘나’는 등장인물 바이츠만텔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소설의 현실 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특히 인용 부호의 생략으로 소설내의 두개의 관점은 서로 관련을 맺는다. 두개의 현실적 차원이 내용상 상호 연관됨으로써, 역사적 사건은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보브롭스키의 “암시적인 suggestiv” 표현 방법 및 소설내의 이중 구조는 -안나 제거스가 게오르크 루카치와의 편지 교환에서 언급한 바 있는- 주관성과 객관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단일지 모른다. (안나 제거스는 톨스토이의 예를 들면서 진정한 리얼리즘은 자아의 입장을 반영한 주관성과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객관성을 종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보브롭스키가 전 산문 작품을 통해 60년대 경색된 동독 문학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다음의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즉 60년대 말에 구동독의 젊은 작가들은 현실적 삶의 문제를 형상화하는 데 있어서 보브롭스키의 창작 방식을 전형으로 삼았다는 사실 말이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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