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나라 속담 가운데에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라는 게 있습니다. 인간은 외부로부터 크고 작은 충격이나 자극에 직접적으로 대처하지 못합니다. 가족, 혹은 직장 동료들로부터 받은 크고 작은 상처는 다른 곳에서 폭발하지요. 이는 흔히 심리학에서 “투사Projektion”라는 심리적 방어기제로 설명됩니다. 우리 대부분이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인 까닭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비록 이성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독인다고 하더라도 외부로부터 감염된 심리는 다른 곳에서 앙갚음으로 튀어나오곤 합니다.
특히 소시민들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당한 방법을 찾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힘도 없고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사회적인 거대한 힘에 대해 직접적으로 저항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투쟁하고 반항해도 상처 입은 자신의 마음을 보상받을 수 없음을 미리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소시민들은 최소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상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기이한 행동을 저지르곤 합니다. 자신을 괴롭힌 상사의 자동차 바퀴에 몰래 구멍 뚫는다거나, 그가 다니는 길에 바나나껍질을 놓아두는 일 등을 생각해 보세요. 복수는 순간적으로 달콤하지만 조야한 것입니다. (Bellermann: 46)
2.
투사라는 심리적 방어기제에 관해서 좋은 범례를 보여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동독 출신의 작가 귄터 드 브륀 (Günter de Bruyn, 1926 – 2020)의 『문학상 수상Preisverleihung』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972년에 동베를린에서 간행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심리적 차원에서 투사에 관한 사항을 아이러니하게 전해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동독 관료주의의 폐쇄적이고 문화 정책을 은근히 비판하기도 합니다. 자고로 모든 심사는 공정해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입학시험과 채용 시험뿐만 아니라, 연구비라든가 문학상의 심사 과정에서도 어떠한 부정이나 인맥이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구동독은 모든 계획 그리고 판단이 상부로부터 획일적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특히 구동독은 -귄터 그라스의 표현에 의하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독서 국가der künstlich gemachte Lesestaat”였습니다. 사회와 국가의 모든 계획과 방향은 예술가 가운데에서 특히 작가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구동독은 예술가들 가운데 특히 시인과 작가들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만큼 간섭과 간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동독의 제반 심사의 과정에서는 부정이 난무했고, 파벌주의 내지는 집단 이기주의에 근거하는 잘못된 판정이 비일비재하게 속출했던 것입니다.
3.
드 브륀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1950년대 초 그리고 1970년 구동독의 현실을 접해야 할 것입니다. 전후에 구동독은 사회주의 재건에 몰두하면서, 노동자 농민의 창작 욕구를 적극적으로 권하였습니다. 동독 문화 관료들은 작가들에게 경제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사회주의 재건에 도움이 되는 작품만을 우수작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문학과 예술의 자발적 창의성은 약화되고, 작가들은 내외적으로 간섭을 당해야 했습니다. (Reich-Ranicki: 161). 문제는 애정 어린 비판의 풍토가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작가에 대한 동독 정부의 지원과 간섭은 많은 폐단을 낳게 되었습니다. 비판이 사라진 풍토는 사회적 변화를 차단합니다. 이로써 동독의 문화적 풍토는 “사회주의의 비더마이어”로 고착되기 시작합니다. (박설호: 137).
귄터 드 브륀은 『메르크 지방의 작가 정원Märkische Dichtergarten』이라는 작품집을 연속적으로 간행한 바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여기서 구동독의 폐쇄적인 현실 그리고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을 강요당하는 구동독 작가들의 고뇌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의 주시해야 하는 것은 1951년과 1970년의 동베를린의 변화된 정치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풍토입니다. 1950년대의 현실적 조건이 세계대전의 피해 복구 그리고 사회주의의 재건이라는 급박한 노력으로 설명된다면, 1970년의 그것은 어느 정도 안정화된 사회적 토대 그리고 엘리트에 의해 다져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지방 분권적 폐쇄주의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소설의 배경은 1970년 동베를린입니다. 주인공, 테오 오버벡은 독문학 박사로서 동베를린 대학교의 문학 연구소에서 일하는 중견 평론가입니다. 그의 주 전공은 독일 낭만주의입니다. 어느 날 저명한 소설가, 파울 슈스터가 최근작으로 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국은 테오 오버벡에게 문학상 수상을 위한 찬사의 글을 써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파울 슈트터는 주인공의 오래전 친구였습니다. 회고하니 약 18년 전에 테오는 파울 슈스터와 대판 싸운 다음에 절교를 선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공이 파울의 여자친구, 이레네를 사랑하게 되어, 그미와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앙금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터였습니다. 테오 오버벡은 찬사를 쓰는 데 매우 껄끄러움을 느낍니다. 부담스러움을 느끼면서 다시 한 번 슈스터의 소설을 끝까지 정독합니다. 슈스터의 소설은 근본적으로 삼류 소설에 불과하다고 느껴집니다. 특히 소설 속에 동독의 문화 정책을 옹호하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내용이 영 주인공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슈스터는 사회주의 통일당에 대한 어떠한 건전하고도 생산적인 비판을 드러내지 않았고, 작품의 인물들은 그저 기회주의적으로 순응하는 인간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5.
줄거리를 이어가기 전에 우리는 테오 오버벡과 파울 슈스터의 사랑의 삶에 관해서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알아야 우리는 두 남자의 현실적 정황과 그들의 행동 양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레네는 주인공의 부인입니다. 그미는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점원, 미용사, 청소부, 요리사, 간호사, 전화 교환수 등의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구동독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없습니다. 오히려 당국은 단순한 육체노동이야 말로 사회주의의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공언합니다. 그런데 이레네는 무척 허영심이 많은 여자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젊은 시절에 행한 남성 편력을 철저히 감춥니다. 심지어는 남편에게도 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레네는 거짓과 위선을 참으로 드러내는 표리부동한 여성이며, “모든 해방된 여성에게 치욕적인 존재”라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Melchert: 1313).
또 다른 여성은 소설가 파울 슈스터의 아내, 울라입니다. 울라는 어린 시절에 농장에서 일하면서 송아지들을 직접 키운 바 있는 억척스러운 여장부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는데, 울라는 슈스터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관여합니다. 그미가 과도할 정도로 청결에 신경 쓰는 것은 사랑 없는 가정생활의 반작용으로 이해됩니다. 울라는 자신의 남편을 마치 자식처럼 대하면서, 욕조에서 남편의 때를 밀어주기도 합니다. 슈스터는 집필 행위가 끝나면 술을 마시는 것으로 저녁시간을 보냅니다. 슈스터가 주인공의 딸, 코르넬리아에게 추파를 던지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아내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약하건대 주인공과 슈스터 모두 위태로운 사랑의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45 동독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박: (1) 보브롭스키의 '레빈의 방앗간'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유령 상 (像)에 관하여. (0) | 2024.12.18 |
---|---|
서로박: (2) 귄터 드 브륀의 '문학 상 수상' (0) | 2024.10.18 |
서로박: (2) 뮐러의 '몸젠 블록' (0) | 2024.09.19 |
서로박: (1) 뮐러의 '몸젠 블록' (0) | 2024.09.19 |
서로박: 슈트리트마터의 '기적을 행하는 자' (0) | 2024.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