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1)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필자 (匹子) 2024. 11. 15. 10:01

1. 실제 삶은 무거움이요, 갈망의 삶은 가벼움이다: 오늘은 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 1929 - )의 베스트셀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Nesnesitelná Lehkost Bytí』(1984)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체코어로 집필되었지만, 1984년에 프랑스어로 간행되었습니다. 쿤데라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이론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체코 출신의 작가입니다. 쿤데라의 문학성이 상당 부분 음악과 결부되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예컨대 그의 작품들은 줄거리 그리고 문체에 있어서 마치 악보처럼 정교한 구도에 의해서 직조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는 항상 어떤 음악의 멜로디와 결부되어 있지요.

 

2. 아스팔트 카우보이: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사랑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방황을 치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은 체코라는 사회주의 현실입니다. 주인공 토마스는 이른바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외과의사입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의 세계관을 추종하며, 심리적으로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방랑아입니다. 그러한 한 토마스는 돈환 Don Juan이자 동시에 트리스탄 Tristan입니다.

 

주인공은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지만, 정작 어느 누구에게도 깊은 정을 나누지 않습니다. 젊은 여성들은 하룻밤의 정사를 나눌 수 있는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어느 날 토마스는 사비나라는 여류화가를 사귀게 됩니다. 주인공의 눈에 그미는 삶의 기쁨을 누릴 줄 아는 독립적인 여성입니다. 그래서 토마스는 아무런 부담감을 느끼지 않은 채, 사비나와 잠자리를 함께 하며 철학적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한마디로 두 사람은 인간의 삶 자체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부류입니다.

 

3. 테레사 그리고 사비나: 토마스는 우연히 어느 식당에서 일하는 접대부, 테레사를 사귀게 됩니다. 테레사는 배운 게 없는 평범한 여자이지만, 순정파입니다. 그미는 주인공과 살을 섞은 뒤에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토마스 역시 테레사에게서 다른 여자에게서 느낄 수 없는 어떤 인간적 온화함을 접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지금까지 어떠한 여자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적이 없는데, 두 사람은 토마스의 집에서 함께 잠듭니다. 그들은 상대방에 대해 애정을 느끼고 동거에 들어갑니다.

 

그런데도 토마스의 바람기는 종결되지 않습니다. 토마스는 자신이 수많은 여자들과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테레사에게 거리낌 없이 털어놓습니다. 이때 그미는 사랑과 성에 관해서 각자 서로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테레사는 질투심을 느꼈지만, 모든 것을 감내하기로 작심합니다. 토마스는 여러 여자들과 교우하면서도 사비나와의 관계 또한 청산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따금 사비나를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이때 사비나는 친절하게도 테레사에게 사진술을 가르쳐줍니다.

 

4. 사회주의 사회의 부자유: 1968년 프라하에서는 민주화의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테레사는 사진 기자로 일합니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데모대의 행렬과 소련군 탱크의 진압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을 무릅쓴 곡예였습니다. 결국 개혁을 추진하는 알렉산더 두브체크Alexander Dubček는 권좌에서 물러납니다.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대대적으로 체포되기 시작합니다. 사비나는 골치 아픈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기 싫어서 스위스로 망명해버립니다. 검거 열풍에 휘말린 자는 토마스와 테레사 두 사람이었습니다.

 

토마스는 몇 년 전에 스탈린주의에 관한 비판적인 기사를 집필하여 신문에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문 기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스탈린주의의 정책은 토마스에 의하면 오이디푸스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 그 까닭은 적이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이러한 반체제적인 표현으로 인하여 당국의 표적이 됩니다. 또한 테레사 역시 서방세계의 기자들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넘겨주었다는 이유로 체포 대상이 됩니다. 토마스와 테레사는 함께 체코의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도주합니다.

 

 

5. 사랑과 책임, 실망과 이별: 토마스는 스위스에서 외과의사로서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스위스의 처녀들과 바람을 피웁니다. 테레사는 그저 허드렛일로 생활비를 벌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미는 주인공의 엽색행각을 감내할 수 없었습니다. 토마스는 바쁜 와중에도 이따금 사비나를 만나, 성 도락을 즐깁니다. 토마스는 한국인의 시각으로 고찰하면 몹시 도덕적으로 문란한 한량인 셈입니다. 토마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가슴이 아파오지만, 테레사는 그와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가 반드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막연히 갈구합니다. 어느 날 사비나는 스위스의 기혼남, 프란츠와 사랑에 빠집니다.

 

프란츠는 제네바의 대학 강사로서 낭만적이면서도 진지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사회적 불의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이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사내가 바로 프란츠였습니다. 프란츠는 처음에는 가족을 버리고 사비나와 재혼하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사비나는 처음부터 사회적 윤리와 도덕에 관심을 두지 않는, 향유하는 예술가 한사람이었습니다. 이때 프란츠는 깊은 실망감에 빠집니다. 그래서 모든 인연을 끊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프란츠는 나중에 유럽 좌파 지식인으로서 아시아의 대장정에 가담하다가 돌연사하지요. 사비나 역시 프란츠의 이중적 태도에 환멸을 느낍니다. 대중과 지식인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그미는 모든 지인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체코로 되돌아갑니다.

 

6. 돈과 물질적 풍요로움이 모든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테레사가 서방세계에서 무엇을 느꼈을까요? 그것은 사랑과 우정 그리고 동류의식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테레사 역시 고향, 체코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비록 프라하에는 가난과 부자유가 도사리고 있지만, 풍요로우나 외로운 삶을 강요하는 서방세계보다는 낫다고 여겼습니다. 스위스에 혼자 남은 토마스 역시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체코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는 체코에서 더 이상 의사로 일할 수 없습니다. 당국이 1968년에 발표한 자신의 기사 내용을 번복하라고 명령했을 때, 토마스는 이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의 외과의사 자격은 일순간에 박탈당하게 됩니다. 토마스는 창문 닦는 청소부로 일하면서 살아갑니다. 주어진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바람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테레사는 토마스의 방탕한 생활방식 그리고 서로를 감시하는 프라하 사람들의 태도 등으로 인하여 오랜 시간 번민합니다. 결국 그미는 프라하를 떠나 보헤미안의 시골의 마을로 이주합니다. 토마스와 테레사는 그곳의 농업 공동체에서 마침내 평온을 얻게 되지만, 우연한 교통사고로 인하여 유명을 달리합니다.

 

7. 두 남녀의 사랑의 삶: 소설은 두 남녀의 사랑의 삶을 서로 교차시켜 서술하고 있습니다. 토마스와 테레사의 애정 관계 그리고 프란츠와 사비나의 애정관계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토마스와 사비나는 삶을 마음껏 향유하지만, 마치 나비처럼 가볍게 살아갑니다. 이들에 비해서 테레사와 프란츠는 완전무결한 사랑을 갈구하며 꿈속에서 살아가지만, 일상의 무거움 속에서 무겁게 생활합니다. 주인공, 토마스는 존재의 가벼움을 향유합니다. 의사인 그는 손을 내밀기만 하면, 얼마든지 여성의 가냘픈 허리를 낚아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열망하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는 현대의 오이디푸스라고 말할 수 있으며, 사랑으로 방황하다 고향을 찾는 오디세이와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순애보의 사랑을 베푸는 테레사가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