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통은 순간적이다. 그러나 심리적 상흔은 끔찍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군 복무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하사는 나의 어설픈 태도를 질타하면서, 일갈했습니다. “이 자식, 오늘 저녁 점호 시간에 줄초상 날 줄 알아.” 일순간 어제의 끔찍한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동료가 하사가 휘두른 야구방망이에 맞아서 피 흘린 사건이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당하면 어떻게 하지? 점호를 기다리는 시간 내내 끔찍한 두려움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인간의 심리가 이런 식으로 두려움으로 고통당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점호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하사가 나에게 가하는 구타의 순간은 기이하게도 순간적으로 지나쳤습니다. 아 육체적 통증은 이런 식으로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구나. 폭력의 고통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폭력을 당하는 고통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폭력에 대한 기억 내지는 이에 관한 기다림이 당사자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습니다. 가령 누군가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에게 사형 집행의 날짜가 전달됩니다. 일주일만 지나면, 나의 목숨은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진다고 간수가 말합니다.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그의 심경은 얼마나 절박할까요?
2. 레오니드 안드레예프의 문학: 오늘은 러시아 출신의 잘알려지지 않은 작가, 레오니드 니콜라에비피 안드레예프 (Leonid N. Andreev, 1871 – 1919)의 소설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7인의 사형수Рассказ о семи повешенных』 (1908)입니다. 그는 러시아의 표현주의 문학의 선구자로서 25편의 극작품 등 많은 산문작품을 남겼습니다. 이 가운데 소설 「뺨 때리는 자Тот, кто получает пощечины」는 오늘날 명작으로 손꼽히며 여러 나라에서 극작품으로 공연되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탁월한 단편 소설을 많이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단편 소설은 예기치 않은 변전을 다루어 독자들을 혼란스러운 경악 속에 빠뜨림으로써 예술적으로 충격을 가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그를 “러시아의 에드거 앨런 포”라고 칭하는 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레오니드 안드레예프는 생전에 일류 작가의 반열에 들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세상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소련 혁명이 발발하기 직전에 그는 핀란드로 이주했는데, 극심한 고독과 가난 속에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3. 사형수의 심리적 고통을 서술하기. 오늘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작품은 소설 『7인의 사형수рассказ о семи повесте』입니다. 이 작품은 1908년 모스크바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레오 톨스토이에게 헌정하면서 1905년의 혁명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1905년에 러시아 전역에서는 폭군 차르에게 저항하는 폭동이 발발했습니다. 러시아 전역의 노동자와 농민은 사회의 다양한 부문에서 개혁의 필요성을 점점 더 깨닫게 되었는데, 이러한 필요성이 무력의 폭동으로 점화되었던 것입니다. 군인과 데모대의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자, 러시아의 황제는 더욱 철저하게 군대와 경찰의 위계질서를 공고히 하며, 일반 사람들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사람들의 불만은 고조되었습니다. 레닌은 1905년의 혁명이 1917년의 위대한 소련 혁명의 리허설공연이라고 말했는데, 10월 혁명을 성공리에 완수하는 자극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4. 일곱 명의 사형수: 소설은 일곱 명의 사형수의 마지막 삶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두 명은 일반 범죄자이며, 다섯 명은 정치범입니다. 두 명의 중범죄자는 시가노크와 이스트 얀손이라는 험상궂은 사내들입니다. 시가노크는 타타르 출신의 끔짝한 강도 살인범이며, 이스트 얀손은 은행에 무장으로 침입하여 돈을 훔치려고 총을 난사한 강도였습니다. 정치범들은 세르게이 골로빈, 베르너 그리고 바샤아는 이름의 세 남자 그리고 무샤, 타냐라는 이름의 두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골로빈은 몹시 활동적이고 힘이 세지만 낙천적인 성향을 지닌 천진난만한 사내입니다. 그에 비해 베르너는 과묵한 편입니다. 그는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무샤는 근엄하고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강인한 여성입니다. 바샤와 타냐는 남매지간입니다. 바샤는 언제 처형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다가, 정신 착란으로 쓰러지곤 합니다. 여동생 타냐는 오빠를 정성껏 돌보아줍니다. 그미는 교도소의 독방에 갇힌 동료들을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려고 에를 씁니다. 다섯 명의 정치범들은 폭군 차르 밑에서 범법행위를 저지른 어느 고위 관리를 암살하려고 계획했지만, 안타깝게도 범행 직전에 모두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당국의 기술적 조처로 인해서 한날한시에 처형당하기로 정해져 있습니다.
5.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은 죽임 행위보다도 더 잔인한 심리적 고통을 안겨준다. 소설은 처형당하게 된 인간의 심리적인 변화 과정을 그야말로 세밀하게 추적하면서 이를 냉정하고도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스트 얀손은 모든 것을 체념합니다. 어차피 죽을 것이므로, 처형의 순간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마음속에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망각의 무기력증에 침잠해 있는 게 낫다고 판단합니다. 한마디로 이스트 얀손은 과거의 안온한 순간을 떠올리면서, 현실을 부정하는 게 낫다고 여깁니다.
타타르 출신의 시가노크는 불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의 가슴을 쥐어 뜯기도 합니다. 그의 근육질의 육체는 강인하지만, 그의 심리구조는 마치 어린이처럼 유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느 날 관리가 찾아와서 시가노크에게 하나의 일감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망나니가 되어, 나머지 여섯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처형하는 일감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처형이라는 끔찍한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면, 자유의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관리가 말합니다. 그러나 시가노크는 이러한 제안을 단칼에 거절합니다. 처형을 당하는 일이든, 누군가를 처형하는 일이든 간에 자신은 이러한 살육을 직접 목격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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