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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1) 되블린의 'November 1918'

필자 (匹子) 2024. 11. 13. 10:51

 

1. 의사 그리고 장편 소설 작가, 알프레트 되블린: 의사이며 작가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힘든 역정입니다. 힘든 의학 연구와 환자 치료 외에도 방대한 소설을 집필하려면,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의사로 일하는 독일 작가들 가운데에는 유독 시인이 많았습니다. 시적인 착상을 글로 옮기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요구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 C. Williams,  한스 카로사Hans Carossa라든가, 되블린 등은 의사이면서도 소설, 그것도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장편 소설에 매진하였습니다. 특히 알프레트 되블린 (Alfred Döblin, 1878 – 1957)은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두툼한 장편 소설을 많이 남겼습니다. 게다가 유대인 출신이라 히틀러 치하에는 다른 나라로 도주하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여건은 그의 삶을 고통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했으며, 오로지 글쓰기에 매진할 여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2. 대표작을 논하고 싶다: 흔히 사람들은 되블린의 대표작으로서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Berlin Alexanderplatz』 (1929)을 꼽습니다. 작품은 주인공인 힘없는 소시민, 프란츠 비버코프가 대도시에서 온갖 범죄에 연루되다가 육체적으로, 도덕적으로 파멸하는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여성을 사랑하여, 그미와 함께 사악하고 반윤리적인 현실로부터 도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 폭력의 사건으로 팔 하나를 잃게 되고, 그의 연인 역시 자신의 친구에 의해 겁탈당한 다음에 목숨을 잃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가령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소설』에서 묘사된 바 있는-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부도덕성을 여지없이 까발리고 있습니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바이마르 시대의 독일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지만, 우리는 반유대주의, 히틀러 전체주의 그리고 전쟁이라는 폭력 등을 다룬 작품에 일차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선택된 작품은 4권으로 구성된 대표작, 『1918년 11월November 1918』입니다. 이 작품은 2,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장편 소설입니다. 소설은 되블린이 프랑스 그리고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보내던 1937년에서 1943년 사이에 집필되었습니다.

 

 

 

 

3. 3부작인가, 4부적인가? 되블린은 바이마르 시대에 간행된 작품에서 문체와 주제에 있어서 여러 유형의 실험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1918년 11월』에는 이러한 특징이 사라지고 모든 게 리얼리즘의 방법론에 근거하여 냉정하게 서술되고 있습니다. 소설은 출간하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처음에 되블린은 장편 소설을 삼부작으로 구상했습니다. 첫 번째 책은 되블린이 파리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인 1939년에 “시민과 군인들 1918”이라는 작품으로 간행될 수 있었습니다. 되블린은 미국에 도착하여, 1942년 가을에 두 번째 책에 해당하는 나머지 작품을 방대한 세 권 분량의 책으로 완성했습니다.

 

『배반당한 민족Verratenes Volk』, 『전선 부대의 귀환Heimkehr der Fronttruppen』, 『카를과 로자Karl und Rosa』가 바로 그 책이었습니다. 되블린은 이때 출판사를 찾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가 1945년에 프랑스의 검열 장교로서 독일로 귀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 출판은 검열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알자스 지방에 관한 문제가 그ㅜ의 소설 제1권에서 서술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제1권은 출판되지 못했으며, 나머지 2, 3, 4권만이 1948년에서 1950년 사이에 프라이부르크에서 간행되었습니다.

 

4. 작품의 완결 본은 뒤늦게 간행되었다: 『1918년 11월』은 -작가가 집필과 출간에 있어서 이중고를 겪었는데도- 독자들의 반응은 그다지 우호적이지는 않았습니다. 1960년에 이르러 완성된 작품이 발표되었는데, 독일의 문학계는 되블린의 대표작을 전폭적으로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평론가들이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실패작이라고 논평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사망한 지 20년 되는 해인 1978년에 작품의 완결 본이 간행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되블린의 장편은 바이마르 시대의 역사와 정치의 핵심 사항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폭발력을 담고 있습니다. 1918년 11월에 소련이 탄생할 무렵에 되블린은 알자스 그리고 베를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무렵 작가는 독일의 사회주의 혁명이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소설은 한마디로 “독일인들의 사회 정치적인 질병에 관한 정신병리학적 진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소설은 독일 군인들의 반-혁명적인 의식 구조,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독일 대중들의 정치의식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5. 혁명의 과정을 소설로 구체화하다.: 작가는 독일 시민들의 고루한 세계관을 단락별로 나누어 서술합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소련 혁명은 독일인들에게는 전혀 결정적인 시간이 아니었으며, 그 자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주어진 세계의 근본적 변화의 가능성을 그저 개별적으로 인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개혁 내지는 혁명의 사고는 사적인 삶에서 하나의 망상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되블린은 혁명의 과정을 역사적 사실로 재구성하면서도, 몇몇 인간들의 기회주의 내지는 이기적인 행동에 조소를 터뜨리고 있습니다.

 

되블린은 진정한 혁명이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잘못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의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작품은 여러 가지 다양한 줄거리를 지닙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거나 충동하지는 않지만, 혁명의 시간적 공간적 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중접하거나 서로 무관하게 이어지는데, 모든 것은 혁명의 사건이라는 얼개 속에서 진척되고 있습니다. 몇몇 이야기는 그 자체 독림적인 중편 소설로 수용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소설 내용에 관한 작가의 회고 내지는 전망을 제외한다면- 1918년 11월 10일부터 1919년 1월 15일 사이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