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K, 카를 슈테른하임 (1878 - 1942)의 5막 희극 작품, 「시민 십펠 Bürger Schippel」은 1911년에 탄생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1913년 3월 5일 베를린에서 처음 공연되었습니다. 이때 연출을 맡은 사람은 막스 라인하르트 (Max Reinhardt)입니다. 슈테른하임은 스스로 풍자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평자에 의하면 슈테른하임의 11편의 희극 작품 모음집 시민적 영웅의 삶으로부터는 프로이센 군국주의적 분위기를 예리하게 풍자하였습니다. 「시민 십펠」은 바로 이 작품집 속에 실려 있습니다.
60년대에 이르러 슈테른하임의 작품들은 서독에서 르네상스를 맞이하였습니다. 이때 빌헬름 엠리히 (W. Emlich) 그리고 벤들러 (Wendler) 등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즉 극작가 슈테른하임은 시대를 조소하고 비판하는 연대기 서술자가 아니라, 개인의 자기실현 및 개인의 발전을 강렬하게 추구하는 극작가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연구가들은 슈테른하임의 문학 에세이, 「구조된 시민주의 (Das gerettete Bürgertum)」 (1918)를 자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즉 극작품의 주인공은 슈테른하임에 의하면 “영웅적인 의지를 발휘하여 열정적으로 사회적 저항에 맞서는” 인간형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아이러니와 풍자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만 대중의 심리를 추적하는 “충실한 기록자의 의도”를 품었습니다. 슈테른하임은 「은유의 싸움을! (Kampf der Metapher)」 (1917)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천박한 현실을 시적 언어로 미화하거나, 현실을 이데올로기화하고 신화화하는 제반 문학적 작업을 거부합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작품 속에 형용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스타카토의 문장 등을 의도적으로 도입하였습니다.
이제 작품의 줄거리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금속 세공업자인, 틸만 히케티어는 시민적 명성에 골몰하는 뻔뻔스러운 인간입니다. 그는 자신의 중창단을 운영하면서, 두 번이나 음악상을 타기도 하였습니다. 중창단에서 테너를 맡은 사람은 다름 아니라 히케티어의 여동생, 테클라의 약혼자, 나우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불현듯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케티어는 긴급히 나우만을 대체할 수 있는 테너 가수를 구하려고 합니다. 도시에서 테너 가수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십펠이라는 남자인데, 거칠고 더러운 프롤레타리아 출신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사생아로 태어난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연대회가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에 히케티어는 어쩔 수 없이 십펠을 테너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시민이지만, 유독 십펠만이 저열한 출신이었습니다. 십펠은 어쩌면 이 기회에 자신이 시민으로 신분 상승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태도는 천박하고, 말투 역시 저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히케티어는 쉽펠의 거칠고 저질스러운 태도에 대해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냅니다. 이때 십펠은 자주 굴욕감을 느낍니다.
어느 날 그곳 지역의 권위 있는 후작은 낙마 (落馬)하여 치료차 우연히 히케티어의 집을 방문하여, 중창단의 음악을 감상하려고 합니다. 사실 군주는 음악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히케티어의 여동생 테클라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히케티어는 다시금 십펠과 화해합니다. 그로서는 합창단을 이끌어야 했습니다. 십펠이 자신의 태도를 수정하고 스스로 시민주의의 생활 방식에 순응하겠다고 약속한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오로지 테클라가 그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중창단의 멤버인 크라이 그리고 볼케 역시 그미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건은 테클라의 의지와는 전혀 달리 전개됩니다. 즉 집의 이층에서 합창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에, 후작은 비밀리에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서, 테클라를 만납니다. 테클라 역시 후작에 대해 호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헛간에서 살을 섞습니다.
히케티어의 합창단은 경연 대회에서 마침내 상을 타게 됩니다. 히케티어는 여동생을 십펠과 혼인시키려고 합니다. 십펠은 비록 시민 출신이 아니지만, 그의 놀라운 음악적 능력이 히디케어를 감복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그는 여동생이 후작에 의해 처녀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결혼의 선택권은 이제 오로지 십펠에게 주어집니다. 크라이는 스스로 속았다고 생각합니다. 자고로 연적은 가문의 전통에 의하면 결투하는 게 하나의 의무로 정해져 있습니다. 십펠과 크라이는 의무적인 권총 결투 때문에 경악에 사로잡힙니다. 특히 십펠은 도망쳐버릴까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약속 장소에 그냥 나타납니다. 결투를 통해 크라이는 상처입고, 십펠은 승리자가 됩니다. 이때 히케티어는 십펠이 “시민의 고귀한 축복에 동참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시민으로 인정합니다. 이때 십펠은 테클라와의 결혼을 거절합니다. 자신은 이제 시민이기 때문에, “몸 버린 처녀”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게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결국 테클라는 크라이와 결혼하게 됩니다. 연극은 다음과 같은 독백으로 끝납니다. “파울, 너는 이제 시민이야!” 십펠은 시민의 신분으로 상승하기 위해서 제반 사회적 수모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결국 그는 과거의 프롤레타리아 신분을 저버리고, 사회적 우월감을 맛보게 됩니다.
친애하는 K, 이 작품을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구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시민계급으로 상승하고자 애를 쓰는 십펠의 삶은 영웅적인 것인가요? 아니면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배반인가요? 물론 그는 시민 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분노를 이해하고, 그래서 시민 히케티어의 집을 올려다보며 “난 너희들을 증오한다!”고 소리칩니다. 그러나 혁명적 분노로 시작되는 이러한 독백은 “나는 이곳 아래에서 너를 애타게 그리워한다.”로 돌변합니다. 이는 전형적인 소시민의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십펠은 시민 계급의 전복을 통한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히려 시민계급의 삶에 대한 동경입니다. 권총 결투를 요구받자 일단 목숨을 구하기 위해 멀리 도망치는 태도에서 우리는 기회주의자의 이기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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