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1. 로자 룩셈부르크의 기이한 망상: 제4권 『카를과 로자』는 소설의 범위 그리고 내용을 고려할 때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가는 일차적으로 로자 룩셈부르크가 수감된 장면을 세밀하게 서술해 나갑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감옥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정신 착란의 상태에서 연인이었던 하네스 뒤스터베르크와 만납니다. [그미의 실제 연인은 한스 디펜바흐 (Hans Diefenbach, 1884 – 1917)였습니다.] 이때 로자 룩셈부르크는 비몽사몽 간에 어떤 기이한 망상에 사로잡힙니다. 자신의 연인 하네스는 악마의 모습으로 그미의 자궁 속에 자라난다는 망상이었습니다.
작가 되블린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보낸 마지막 혁명의 나날을 이러한 방식으로 서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미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언급하는 자료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역사적으로 드러난 사건 그대로 카를 리프크네히트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오만무도한 의용군들의 암살로 끝이 납니다. 천사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영혼을 그미가 죽기 전에 악마로부터 빼내어 사라집니다. 악마는 진보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지만, 로자는 이를 있는 그대로 신봉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많은 문장을 밀턴의 『실낙원Paradise Lost』 (1667)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12. 다시 프리드리히 베커의 이야기: 프리드리히 베커는 병에서 회복한 다음에 고대 문헌학자로서 김나지움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그가 주로 다루는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인데, 이 작품은 소설 『1918년 11월』의 전체적 주제와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일치합니다. 베커는 이 작품을 통해서 국가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국가 내에서의 실천적인 도덕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고 질문합니다. 인간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파시즘을 실천하는 국가사회주의에서 아무런 가르침을 발견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베커는 반동적인 프로이센 사회에 몹시 실망합니다. 학교 구성원들은 김나지움의 교장이 동성연애자라는 이유로 비난합니다. 교장은 결국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게 되는데, 주인공 베커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베커는 경찰국을 방문합니다. 경찰관들은 스파르타쿠스 그룹에 우호적으로 발언하는 주인공에게 마구잡이로 폭력을 가합니다. 그 후에 베커는 3년 구금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출옥한 다음에 베커는 사랑하는 연인, 힐데를 수소문합니다. 그러나 힐데는 종적을 감춘 지 오래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미는 주인공에게 한편으로는 구원의 여성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욕정과 탐욕으로 빠지게 하는 인물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에 베커는 종교적인 광증에 시달리면서, 설교자로서 이곳저곳을 방랑하면서 살아갑니다.
13. 베커와 룩셈부르크의 갈망: 베커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끝없이 대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러한 갈등을 집요하게 추적함으로써 사악한 영혼의 감정을 떨치고,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 정신을 되찾으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베커의 내면적 광기는 더욱 첨예하게 변하게 됩니다. 그는 무의식 속에서 마치 악마와 내기를 벌이는 상을 떠올리면서 방황합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베커는 어느 강도 사건에 연루되어서 사살당하고 맙니다. 그의 영혼은 최후의 순간에 신의 구체적 형상을 바라봅니다.
작가 되블린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주제를 고려하면서, 두 인물 프리드리히 베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으며, 자신에게 가장 합법적인 방도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려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내면에는 근본적으로 자기애(自己愛)에 대한 확신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프리드리히 베커가 신앙에 침잠하면서, 신의 사랑을 찾으려는 우회로를 걸어간 반면에,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목표를 대중과 함께 발견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입니다.
14. 프리드리히 베커와 로자 룩셈부르크의 비극적인 삶: 자신이 뜻하던 바를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베커는 대인 기피증으로 인하여 자기 고립의 길로 나아갔다면, 로자 룩셈부르크는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합법성을 연속적으로 의심함으로써 패배하고 맙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실제 인물 로자 룩셈부르크와는 약간 다릅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6년 7월부터 1918년 10월까지 감옥 생활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이에 관한 책: 로자 룩셈부르크의 옥중 서신, 김선형 역, 세창출판사 2019). 그미는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1918년 1월 15일 데모하다가, 정규군 의용단Freicorps에 의해서 박주 대로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알프레트 되블린 문학 전체를 고려할 때 소설 『1918년 11월』은 하나의 전환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작가 스스로가 심한 우울의 증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에서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 과거의 개인적 역사적 슬픔에 구속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역사적 사건과 함께 진행되는 개개인의 삶의 정황 속에서 뒤엉켜 있습니다. 1941년을 기점으로 되블린은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유대인의 정체성을 저버리고, 가톨릭교로 개종했습니다.
15. 소설의 구조적 특징 (1): 소설은 그 구조에서도 놀라운 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과 함께 이어지고 있으며, 관점 역시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현대 소설이 지닌 기본적 경향으로서 “대중으로서의 공동성 그리고 개인적 자의식의 혼재 현상”을 가리킵니다. 되블린은 에밀 졸라Emile Zola, 도스토옙스키, 도스 파소스Dos Passos 등이 시도한 사회 비판의 전통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프루스트Proust, 조이스Joyce, 헤르만 브로흐Hermanm Broch 그리고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 등이 시도한 의식의 흐름 기법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되블린은 여러 가지 서사적 기법을 동시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되블린 소설에서 대화, 체험 화법, 내적 독백, 몽타주 기법, 원래 문서의 과감한 인용 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6. 소설의 구조적 특징 (2): 작가가 사용하는 아이러니, 풍자, 소극적 요소, 기괴함 그리고 비난의 뇌까림 등은 우리에게 희극적 요소와 비극적 요소를 동시에 느끼게 해줍니다. 등장인물이 역사적 사건에 대해 개인적 입장을 제시하는 것 역시 작가가 역사성 그리고 가상 사이에 가교를 드리우려고 한다는 점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로써 역시적 사건은 개개인의 구체적인 경험과 논평과 함께 복합적으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는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인물 묘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어쩌면 되블린은 로자 룩셈부르크에게서 현대적인 안티고네를 발견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야만의 시대가 저지르는 폭력에 대해 페이소스로 답하려는 여주인공을 생각해 보세요. 어쩌면 우리는 소설 속의 여주인공에게서 슬픔을 정신병리학적으로 극복하려는 작가의 의향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어판 되블린 소설 목록
1. 되블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안인희 역, 시공사 2010.
2. 되블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김재혁 역, 민음사 2011.
3. 되블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권혁준 역, 을유문화사 2012.
4. 되블린: 무용수의 몸, 신동화 역, 민음사 2019.
되블린 논문
오동식: 저항하는 여성: 여성 해방과 여성 연대, 알프레트 되블린의 소설 "두 여자 친구의 독살 사건"과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중심으로, in: 헤세연구, 38권, 2017, 145 - 163.
조향: 알프레드 되블린의 '유물론에 관한 동화'에 나타난 자연과 인간, in: 독어독문학, 58권 3호, 2017, 59 - 87.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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