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십펠은 어떻게 해서 시민계급으로 상승하는가요? 이 물음은 극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권총 결투의 승리는 다만 하나의 계기일 뿐입니다. 결투는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지요. 시민 계급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십펠의 노력은 처음에는 좌절됩니다. 히케티어 등 시민들은 같이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을 “순전히 사업상의 일”로 제한합니다. 그 이상을 기대했던 십펠은 이러한 제한에 대해 크게 실망합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다른 시민들 역시 합창 대회의 참가를 포기합니다. 말하자면 협상이 결렬된 것입니다. 어느 날 후작이 치료 차 히케티어의 집에 들르게 됩니다. 후작이 떠난 후 시민들은 합창대회 참가를 놓고 다시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이유인즉 후작이 합창대회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히케티어는 제 손으로 쫓아냈던 십펠을 부르러 몸소 찾아갑니다. 이때부터 십펠에게 계급 상승의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의 외적 줄거리는 십펠이 갖은 애를 써서 시민계급으로 상승한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에 상응하는 내적 줄거리는 십펠의 내면, 곧 의식의 성장으로서 그의 독백을 통해 간간이 드러납니다. 십펠의 가장 큰 변화는 자기의 주어진 현실을 보다 정확히 인식하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필요할 경우 주인공은 적당히 가면을 쓸 줄도 알게 됩니다. 교활할 정도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가능할 때 칼을 뽑고, 그렇지 않을 땐 비수를 가슴 깊숙이 간직합니다. 그는 심지어 시민으로서의 의식 그리고 명예심 모두를 내면에 받아들입니다. 그는 특히 히케티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테클라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시민들에게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최후에 다시 그미를 거절합니다. 이제 막 생겨난 시민으로서의 명예가 “처녀성을 잃은 테클라”를 받아들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어째서 십펠의 계급 상승을 처음부터 저지하지 못할까요? 히케티어는 어떠한 이유에서 그렇게 혐오하던 쉽펠에게 자신의 소중한 여동생을 바치려고 할까요? 그들이 먼저 십펠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물론 합창 대회 때문입니다. 합창 대회는 작품 속에서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합창대회는 시민들에게는 “어릴 적 즐거움”이요 조상들한테서 물려받은 전통이었습니다. 당시 시민이란 거친 일을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어 사회에서 물질적 주도권을 갖고 있던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합창대회와 같은 어색한 일을 추진합니다. 어릴 적 즐거움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통이라는 건 다만 변명 내지 핑계에 불과합니다. 민요란 시민들에게 경제적 주도권자로서 거칠고 비인간적인 자기들의 본 모습을 낭만적으로 미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낭만적 수단을 위해 시민들은 자신에게 걸맞지 않는 민요를 불러야 했고, 그것이 결국은 십펠에게 계급 상승의 기회를 부여한 것입니다.
시민들은 동료 시민 크라이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십펠에게 결투를 요구합니다. 권총 결투는 원래 귀족들의 관습이었습니다. 시민들이 명예를 내걸고 권총 결투를 한다는 것은 당시로선 우스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히케티어 등 시민들은 자기 것이 아닌 다른 계급의 관습을 모방합니다. 귀족처럼 행세하고 싶은 것입니다. 십펠의 계급 상승을 저지하려던 시민들의 시도는 바로 권총 결투라는 흉내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실패합니다. 결국 시민 계급의 실패 원인은 결국 시민답지 않은 두 가지 일, 즉 낭만적 민요 부르기 그리고 권총 결투라는 귀족 흉내 내기에 담겨 있습니다. 시민답게 충실히 살았다면 이러한 실패를 맛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두들 자기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흉내나 내려고 하는 세상에서 시민다운 삶을 사는 시민은 영웅이나 다름없고, 이에 따라 「시민 쉽펠」 역시 “시민의 영웅적 삶으로부터”라는 표제어의 강령과 일치합니다.
테클라는 철이 덜 든 처녀로서 낭만을 최고 가치로 믿고 있습니다. 그미는 낭만적 꿈을 성취하기 위해 후작과 사랑에 빠집니다. 낭만적 유희가 절정에 이르는 장면에서 낭만적 사랑은 단지 입에 발린 말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미는 자신의 마음속에 육체적 쾌락에 대한 욕구가 숨어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테클라는 어두운 밤 후작과 함께 헛간에 기어듭니다. 그 결과는 테클라의 “처녀성”의 상실입니다. 요즈음은 그렇지 않지만, 20세기 초 독일에서는 순결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히케티어가 테클라를 십펠에게 넘기고, 십펠이 다시 그미를 거절하는 것은 단지 이러한 사건 때문입니다. 결국 테클라는 멋없는 크라이를 남편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미가 결코 낭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후작과의 마지막 만남에서도 비극적 몰락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테클라는 어떻게 해서 낭만적 꿈을 꾸게 되었을까요? 테클라는 후작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멋진 젊은 영웅이세요. 저는 오빠랑 왕자님이 항상 나오는 민요를 하도 불러 이미 그 분이 오시기 전에 마음을 다 빼앗겼어요.” 여기에서 다시 “민요”가 등장합니다. 수없이 민요를 듣고 노래하는 동안 낭만적 귀족에 대한 사랑이 테클라의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입력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히케티어 등 시민들이 실내에서 “사냥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동안, 테클라는 후작의 “사냥”의 제물이 됩니다. 일견 거칠어 보이는 삶을 낭만적으로 위장하기 위해 민요에 지나친 집착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이로써 히케디어는 혐오스럽기 짝이 없던 십펠을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연극 평론가, 심재민 교수의 다음과 같은 문헌을 참고 바랍니다.
심재민: Werden und Freiheit. Carl Sternheims Distanzerfahrung in der Moderne und sein Bezug zu Nietzsche, Peter Lang Verlag,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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