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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하인리히 만의 '운라트 교수'

필자 (匹子) 2023. 11. 6. 08:54

하인리히 만 (Heinrich Mann, 1871 - 1950)의 소설, "운라트 교수"는 1905년에 간행되었습니다. 1900년부터 하인리히 만은 소설을 발표했는데, 과거의 소설에서 시민 사회의 미적 현상을 데카당스 (頹廢性)의 특성으로 해명하였고, 나아가 몰락으로 내몰린 후기 시민 사회를 예리하게 분석하였습니다. 또한 예술과 삶에 관한 문제는 그의 소설 "사랑의 사냥 (Die Jagd nach Liebe)" 1903년 이후에 일련의 중편 소설에서 다루어졌지요. 1904년부터 소설 "운라트 교수"가 집필되었습니다. 작가는 “불과 몇 개월만에” 탈고를 끝냈다고 합니다. 초기 작품에서 하인리히는 주로 대도시를 소재로 다루면서, 세계시민 내지 보헤미안의 폭넓은 시각으로 모든 것을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운라트 교수"에서 작가는 독일의 시골 내지 소도시의 분위기를 밀도 있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빌헬름 제국의 북부 소도시의 김나지움 교사로 일하는 라트 교수입니다. “교수”라는 칭호는 반드시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하인리히만은 아마도 고향, 뤼베크에서의 학교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했는지 모릅니다. 이를 고려할 때 그는 프랑크 베데킨트 (Fr. Wedekind), 루드비히 토마 (L. Thoma), 게어하르트 하우프트만 (G. Hauptmann), 헤르만 헤세 (H. Hesse) 등과 같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빌헬름 시대의 학교를 노골적으로 풍자한 셈입니다. 나중에 이 작품은 1931년에 칼 추크마이어 (Carl Zuckmayer)에 의해서 “푸른 천사 (Der blaue Engel)”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연출은 요제프 폰 스테른베르크가 맡았고, 주인공으로서 요제프 야닝스 그리고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활약했습니다.]

 

소설은 17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개별 장면은 평온하고도 흥미롭게 기술되고 있습니다. 라트 교수는 깡마른 권위주의적 선생인데, 학교에서 마치 폭군과 같이 학생들을 근엄하게 대합니다.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학생들을 선도하려는 의도에서, 밤에 어느 술집에 잠입하게 됩니다. 거기서 맨발로 춤추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 로자 프뢰리히를 만납니다. 불현듯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어떤 열정이 가슴속에서 솟아오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에로틱한 사랑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로자에 대해 연정을 품습니다. 로자와의 관계는 결국 그를 실업자로 추락하게 합니다.

 

라트 교수는 원래 삶을 즐기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여성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이 시민 사회에서 얼마나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살아왔는가를 처절히 깨닫습니다. 사회는 그를 사랑과 감정에 눈멀고, 귀 먹도록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마음속에는 처음으로 시민 사회에 대한 반항심이 솟아오릅니다. 이에 비하면 영화 속의 주인공은 이러한 반항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고, 기껏해야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가련한 인간으로 비칠 뿐입니다. 이로써 영화는 소설 속에 담긴 비판의 가시를 의도적으로 꺾어버렸던 것입니다.

 

하인리히 만은 이 작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운라트,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괴물은 어떤 면에서는 나와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다.” 만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하인리히 만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맨 처음 주인공이 견지했던 공격 성향, 뻣뻣한 국가 사회주의적 지조, 권위에 대한 맹신 등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어떤 맹목적인 체제 비판적인 아나키즘으로 돌변합니다. 즉 로자를 만나는 순간부터 주인공의 세계관은 급작스럽게 뒤바뀌게 되지요.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 주인공 운라트는 풍자의 유형적 대상일 뿐 아니라, 시민 사회에 주어진 모든 나쁜 것을 풍자하는 작가 자신의 어긋난 용모라는 점 말입니다. 소설은 지금까지 대중적인 측면에서 이해될 게 아니라, 개별적 인간이 어떻게 사랑으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이에 상응하게 행동하는가? 하는 심리학적 동기를 잘 보여줍니다. 특히 어느 개인이 자신이 처한 사회의 정치적 메커니즘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이에 대해 저항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바로 이때 상기한 심리학적 동기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나이든 라트는 지금까지 25년 이상 김나지움 선생으로 일하면서, 근엄하게 행동하여, 학생들로부터 “운라트”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운라트 (Unrat)”란 독일어로 쓰레기, 폐물, 오물 등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는 열렬한 국수주의자로서, 학생들로 하여금 “의무에 대한 복종, 학교생활의 축복 그리고 군복무에 대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합니다. 그는 폭군과 같은 지배적 욕망을 내면에 지니고 있습니다. 라트는 학생들을 엄벌에 처하고, 모든 행동을 철저히 검열하며, 무의미할 정도로 의무에 충실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그 자체 내적 무능력 그리고 충동의 억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현진건의 「B 사감과 러브레터」라는 소설과 비교해 보세요.]

 

하인리히 만의 운라트 교수는 "푸른 천사"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거기세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명 연기를 펼쳤다.

 

라트는 “모든 저항 세력을 차단하고, 암살 계획들을 사전에 제거하며, 주위 사람들을 언제나 침묵하게 하여, 세상을 마치 교회 내부처럼 조용하게 만들려고” 온갖 애를 씁니다. 그는 어느 날 완강한 학생들을 통솔하기 위하여 “푸른 천사에게 (Zum blauen Engel)”라는 하급 술집을 찾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편안하고 가볍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납니다. 로자 프뢰리히의 춤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지요. 라트는 순식간에 술집의 단골손님이 됩니다.

 

처음에 라트 교수는 학생들을 체제 비판적 저항 세력으로부터 일탈시키려고 굳게 다짐합니다. 그러나 라트 교수는 낯설고도 혼란스러울 정도로 에로틱한 연기의 분위기로 인하여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그는 지금까지 권력을 “막강한 교회, 예리한 단검”이라고 생각하고, 경직된 도덕에 대해 엄격하게 복종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권력 체제는 충동적 관능 내지 인간의 감각적 성향의 억압을 통해서 비로소 영위될 수 있습니다. 로자 프뢰리히와 교우하는 동안, 라트는 자신의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약화되는 것을 감지합니다. 권위주의적 성향이 약화될수록, 주인공은 자신이 스스로 억압했던 무엇에 더욱더 근접하게 됩니다. 자신의 힘이 약화된 폭군 (선생)은 동일한 레벨에서 자신의 신하 (학생)를 바라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신하의 시각을 처음으로 의식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강렬한 사랑의 감정”이 억압과 인습을 무찌르게 되었을 때, 라트는 안정을 갈구하는 프뢰리히와 결혼합니다. 바로 이때 라트 교수는 자신의 직장을 잃게 됩니다. 세 학생들은 왕족의 무덤을 파괴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됩니다. 로만, 에르춤 그리고 키제라크 등이 바로 그 세 학생들입니다. 이때 운라트 교수는 재판의 증인으로 출두하여, 체제 옹호적인 태도로 국가의 재물을 옹호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그는 마음속에 누르고 있었던 시민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털어놓습니다. 운라트 교수는 신분 차이를 강화시킨 거대 부르주아 계급, 퇴폐적인 귀족 계급 그리고 부패한 소시민 계급 등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이들은 사춘기를 갓 넘은 자신의 세 제자들에게서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운라트는 호수에서 주말을 보낸 뒤에 도시로 돌아오는데, 이때부터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투쟁을 계속합니다. 말하자면 로자와의 정사 (情事)를 통해서 라트는 다음의 사실을 생생하게 깨닫습니다. 즉 시민들은 자신이 그러했듯이, 에로틱한 탐닉으로부터 부자유스럽게 됨으로써 신하근성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성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인간은 어떠한 권위적인 체제에 굴복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라트는 밤의 향락을 즐기고 금지된 행복의 유희를 즐기도록, 자신의 집을 꾸밉니다. 이로써 소도시에서는 놀라운 소문이 퍼져나갑니다. 즉 “사람들이 마구 퍼뜨린 것은 뇌 속의 공허한 내용이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자들이 지니고 있는 멍청한 의미였고, 어리석은 호기심이 부추긴 졸렬한 내용이었다. 그것은 도덕으로 은폐할 수 없는 음탕한 내용이었고, 소시민들의 탐욕, 열정, 허영심 그리고 이와 유사한 수백 가지의 관심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로써 학생들이 예전에 그에게 부여한 별명이 라트 교수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것은 바로 쓰레기 폐물 그리고 오물 등과 같은 더러운 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무정부주의적 소문이 소도시에 퍼져서, 도시의 도덕을 더럽힙니다. 운라트 교수는 자신의 복수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스스로 파멸되고 맙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후회하며, 속고 살아온 데 대해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조금도 이를 받아들이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입니다. 운라트는 손지갑을 훔쳤다는 혐의로 체포됩니다. 복지를 누리는 시민 사회의 겉모습은 얼마든지 그대로 치장될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 하인리히 만은 어떤 바람직한 인간형을 묘사합니다. 이 인간형은 다름이 아니라 로자 프뢰리히입니다. 그미는 민중 출신으로서 인간적 동정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여성입니다. 주변 인물 가운데에서 우리는 젊은 작가 지망생, 로만에 관해 거론할 수 있습니다. 로만은 자신의 선생, 라트에 관해서 자세히 묘사합니다. 우리는 주변 인물 로만에게서 뤼베크의 고등학생 시절의 작가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하인리히 만은 "신하 (Der Untertan)" (1916)이라는 작품에서 성의 억압 그리고 신하 근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예리하게 묘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