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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1) 호프만슈탈의 '소베이데의 결혼'

필자 (匹子) 2024. 6. 2. 10:51

(1) 결혼과 후회: 친애하는 K, 오늘 말씀드릴 주제는 결혼에 관한 것입니다. 속담에 의하면 “인간은 결혼해도 후회하고, 결혼하지 않아도 후회한다.”고 합니다. 자고로 결혼은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오랜 기다림의 성취, 바로 그것이지요. 물론 결혼의 의미 자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경제 문제, 가족 구성원의 사회적 삶, 성도덕 등을 고려하면, 당신은 나의 말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결혼”의 보편적 기능을 추상적으로 정의 내린다는 자체가 무리일 것입니다. 나는 결혼의 사회적 심리적 의미에 관해서 여기서 일장 연설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결혼의 이상이란 사랑의 완성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어째서 결혼은 항상 “후회”라는 묘한 감정을 동반하는 것일까요? 

 

(2) 실현의 아포리아: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오래 갈구하던 무엇이 실현되는 순간 인간은 누구든 간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그리고 동시에 어떤 허망함을 느낍니다. 사랑이 실현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열정은 그렇게도 격렬한 감정을 동반하던 밀물이었다면, 결혼 이후의 느낌은 성취된 사랑이 마치 썰물처럼 허망하게 그냥 사라지는 데 대한 “썰렁함”과 아쉬움일 것입니다. 결혼 전에 고수했던 순결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고, 매일 대하는 남편의 얼굴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합니다. ^^ 이러한 허망함과 아쉬움을 에른스트 블로흐는 “실현의 아포리아 (Die Aporie der Verwirklichung)”, 성취의 우울 (Melancholie des Erfüllens) 등의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아포리아란 “출구 없음” 내지 “막다른 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허망함과 아쉬움은 결혼 이후에 때로는 후회의 마음과 병행해서 나타나곤 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분은 이와는 달리 느낍니다. 가령 나이든 미혼녀는 기회의 상실을 마냥 아쉬워하면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갈망을 계속 고수합니다. 이렇든 저렇든 간에 누구나 후회막급이지요.

 

  (3) 결혼, 천개의 고원: 친애하는 K, 결혼이란 그 자체 사랑의 완성을 갈망하는 상입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찬란한 웨딩마치를 꿈꾸지 않습니까? 따라서 결혼식은 인간 삶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도 고매한 순간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쁨의 깊이이지, 기쁨의 양이 아닙니다. 따라서 단 한 번 결혼이냐, 리즈 테일러처럼 열 번 결혼이냐? 등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든가 “결혼은 인생의 죽음이다.”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견해는 부분적으로 타당할지 모릅니다. 그것은 장님 코끼리 더듬는 데에서 비롯한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삶이 고통스러우면, 그것은 “자신이 처한” 사랑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지, 사랑의 삶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사랑의 삶을 개척해야 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능동적으로 추구해나가는 자가 인간이니까요. 

 

 

(4) 나의 충고 하나: 친애하는 K,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사항을 충고하고 싶습니다. “일상 삶에서 가급적이면 이타주의자로 살아가되, 사랑의 삶에서 가급적이면 이기주의자로 살아가라.”는 게 나의 충고입니다. 주위의 어렵고도 불행한 사람을 돕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 삶의 미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일상 삶에서 이타주의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약화시키고,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삶에 대해서만은 (설령 남들이 얄밉다고 손가락질하더라도) 이기주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감정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사항입니다. (그렇지만 인간 삶은 수많은 색깔로 이루어진 팔레트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뜻과는 달리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데 할 수 없도록 강요하는 현실적 정황 - 이것이 인간을 비극적으로 몰아갑니다. ㅠㅠ) 

 

(5) 사랑이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결혼을 택할 때 자신의 내적 감정을 가장 중시해야 합니다. 당신은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결혼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중매를 통해서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내 감정의 솔직한 자세야 말로 결혼 선택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a) 사랑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b) 부모가 원하기 때문에, (c) 혼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d)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결혼을 택하는 자는 불행하게 살거나,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친애하는 K, 결혼 전에 당신은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없습니다. 가령 마음에 드는 모든 사람들과 동침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문학 서적 등을 통한 간접 경험 등을 통해서 어떠한 타입이 자신과 맞는지 미리 파악할 줄 알아야 합니다.

 

  (6) 호프만슈탈의 극시: 오늘은 당신에게 부모의 뜻대로 결혼했다가 비극을 맞이하는 문학 작품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신낭만주의 작가에 해당하는 후고 폰 호프만슈탈 (Hugo von Hoffmannstahl, 1874 - 1929)의 극시, “소베이데의 결혼 (Die Hochzeit der Sobeide)”이 바로 그 작품입니다. 호프만슈탈처럼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멋지게 문학적 현실을 형상화시킨 작가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호프만슈탈이 1899년에 베를린과 빈 극장에서 초연하게 한 작품으로서 남한에서 아직 번역 소개된 바 없습니다. 작가는 이미 2년 전에 “젊은 여인 (Die junge Frau)”라는 제목으로 극작품을 구상한 바 있었습니다.

 

 후고 폰 호프만슈탈 (1874 - 1929)

 

 (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