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서로박: 가족 중심에서 사회 중심으로

필자 (匹子) 2024. 11. 4. 10:38

나의 외국인 친구 K에게

 

1.

친애하는 K.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서로 만난 지 이미 몇 달이 흘렀지만, 가끔 형이 생각납니다. 형을 생각하며, 나는 그냥 평소 생각을 전하려고 합니다. 언젠가 당신은 지구상에서 한국인만큼 인정 많은 인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거의 타당한 말씀입니다. 한국의 부모 자식 사이의 정은 대체로 매우 두텁습니다. 한국인들은 노래 부르기를 즐기며, 특히 노인들을 공경할 줄 압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횃불을 피워놓고 들판에서 노래 부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늙은이들의 경우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유럽인들은 매사에 솔직하나, 인간미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냉정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당신은 한국의 삶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지요. 언젠가 공항에서 당신은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감정적으로 처신하고, 사실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분명하지 못하다고 말입니다. 사실 한국인들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우리의 눈에 서양 사람들의 삶이 솔직하지만 무미건조하게 비치듯이, 당신과 같은 서양인의 눈에는 한국인들의 삶은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처럼 비칠지 모릅니다.

 

친애하는 K, 나는 이 자리에서 특정한 민족의 특성을 일반화시킬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한국인은 어떠하고, 일본인은 어떠하다는 둥의 표현들은 십중팔구 농담 아니면, 모든 것을 싸잡아 표현하는 추상적 발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만 한 가지 사항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한국인들의 인정 어린 마음속에는 한 가지 근본적인 취약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가족 이기주의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족 이기주의란 국가, 개인, 사회 등의 이익보다도 가족의 이익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지칭합니다.

 

2.

맨 처음 당신이 휴가 여행 차 한국에 왔던 날을 기억합니다. 당신은 무언가를 목격하고 몹시 놀라워했습니다. 이에 대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어요. 한국 가옥의 담 위에 박혀 있는 철조망 그리고 유리 조각들이 바로 그 무엇이었습니다.

 

독일 가옥의 담 위에는 그런 물건들이 없으니까요. 독일에서는 담이라고 해봐야, 약 1미터 정도의 높이에 불과하며, 집과 마당의 경계를 알리는 그러한 소박한 기능을 담당할 뿐입니다. 이에 비하면 한국 가옥의 담은 마치 감옥처럼 높습니다. 게다가 그 위에는 (당신의 표현에 의하면) “온갖 고딕식 건물의 장신구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가난한 집의 담에는 화살촉, 유리 조각 등과 같은 물건이 전혀 부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국 그리고 콜롬비아에서는 대체로 무척 정이 깊은 자들이 많지만, 극소수가 도둑질을 행합니다. {이 말은 고위 공직자 내지는 정치가들의 합법적인 절도를 일컫는 게 아니라, 실제로 백주에 벌어지는 행각을 가리킵니다.} 가령 독일 사람들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은 냉담하지만, 거의 도둑질하지 않습니다. 도둑질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한국인들 그리고 콜럼비아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가족 중심으로 살아가고 외부의 도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합니다. 이에 반해서 독일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은 자신의 돈을 나라에 맡기고, 절도에 대한 두려움 없이 편안하게 살아갑니다. 이는 얼마나 엄청난 차이입니까? 혹자는 어렵게 벌어들인 재산을 국가에게 맡기지 못하겠다. 얼마나 많은 세금을 걷는데...하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설령 지금까지 그러했다고 하더라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요? 현재의 정부의 복지 정책이 잘못되었다면, 우리는 이를 시정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친애하는 K, 현재 남한에는 황금만능주의와 함께 가족 이기주의가 창궐해 있습니다. 이는 이조시대부터 내려온 씨족 이기주의의 연장이나 다름이 없어요. 가문 중심적 사고는 언제나 폐쇄적이고 위험합니다. 파시즘이 집단 우선주의의 표본이 아니었던가요? 한반도가 경제적으로 몰락하더라도, 그들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사회 정의에 위배됩니다.

 

문제는 한국인 전체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잘 사는 사람들이 선민의식 (選民 意識)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상류층은 결코 열심히 일한 다음에 부를 쟁취한 자들이 아니라, 대체로 부를 음성적으로 축적한 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유럽에서든 한국에서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부의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유럽에서는 대체로 현명하고 착한 사람들이 사회의 상류층 중산층을 구성하고 있지요. (물론 여기에는 얼마든지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한국 사회는 차제에 바뀌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족을 보장하는 생활 방식은 사회를 보장하는 그것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예나 지금에나 간에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아이들에게 대학 진학의 기회가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돈 많은 자녀들만 과외를 받고, 해외 유학을 떠납니다. 이러한 태도 속에는 과연 사회 정의 내지는 사회봉사 등에 대한 의식이 몇 퍼센트 담겨 있습니까?

 

그들은 어릴 때부터 “도둑이 들어오니 문을 꼭 잠그고 다녀라.”라는 말을 수없이 듣지 않았습니까? 어릴 때부터 가족 중심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나중에 얼마나 훌륭한 사회인이 될까요? 이들에 비하면 이름 모를 독지가로부터 장학금을 받는 가난한 학생들이 오히려 사회봉사에 대한 결심을 굳히지 않을까요? 무릇 가족 이기주의는 파벌주의를 낳고, 파벌은 다시금 씨족 이기주의를 창조하는 법입니다.

 

4.

확실히 한국인들은 인정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파탄을 바로 잡으려고 금 모으기에 동참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칠십 평생 길거리에서 김밥을 팔아 모은 재산을 대학의 장학금에 쓰라고 내놓은 할머니들의 갸륵한 정성은 연일 신문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벌들 가운데 전 재산을 대학 장학금으로, 아니면 (카네기처럼 재화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차원에서) 전 재산을 희사하는 어느 재벌의 이야기를 나는 한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재벌들 가운데 누군가 자신의 장기 (臓器)를 기증했다는 말을 나는 듣지 못했습니다.

 

과연 몇 명의 재벌이 어렵사리 벌어들인 수천억의 돈을 죽을 때 거리낌 없이 내놓을까요? 죽을 때 우리가 재산을 친자식에게 물려주는 것만이 능사일까요? 전 재산을 어느 고통으로 살아가는 어린 남들에게 전하는 것은 과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가요?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식을 생각하면, 한국의 부모들은 한결같이 호랑이 굴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 그리고 자식 교육은 서로 차원이 다릅니다. 천재 바둑 기사 조훈현은 자식의 재능이 박하다는 이유 때문에 일찍이 친자식의 바둑 수업을 포기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제 자식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식 교육입니다.

 

친애하는 K, 나는 한국의 가옥의 담에 붙어 있는 창살 그리고 유리 조각이 철거되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한국의 가난한 자와 부자 들 사이에 놓여진 철조망이 제거되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전 구성원들이 최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 보장이라는 필연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부디 한국의 위정자들이 "도둑질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면, 뭐 하러 도둑질하려 하겠는가?"하는 한국의 탈옥수, 신창원의 말에 귀 기울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