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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호: (3)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제 3권 서문

필자 (匹子) 2024. 10. 22. 10:39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3

메르시에부터 마르크스까지 (프랑스 혁명 전후 - 19세기 말)

서문

 

유토피아는 위기의 상태에서 점화된다.” (Nipperdey)

산업혁명은 암울한 사탄의 방앗간이다.” (Blake)

현대 서양인의 유토피아는 여러 유형의 폭력, 화폐의 무한대의 증식 욕구 그리고 이기주의 등을 배격한다. 이에 대한 대안은 한 사상, 예컨대 두레 공동체의 사랑, 협동성 그리고 대아의 정신에서 발견될 수 있다.” (필자)

 

“기회Καιρός”는 의외로 어떤 끔찍한 위험을 수반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사는 언제나 위기와 기회의 연속적 변화과정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유토피아의 사고는 항상 위기 상태에서 점화됩니다. 왜냐하면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처한 사람은 자신의 난관을 극복하려는 가능성을 생각해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불행과 위기가 때로는 행복과 기회보다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불행한 사고는 대부분의 경우 내리막길에서 발생합니다. 주의력과 집중력을 상실하게 하는 것은 편안함, 자만 그리고 나태함일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안온한 삶, 나태한 삶이 오히려 역으로 우리의 영혼을 망치게 하는 계기일지 모릅니다. 등 따뜻하고 배가 부른 사람은 잠이라는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곤 합니다.

 

그래, 잠은 꿈을 망치게 합니다. 우리가 잠자는 동안에 교활하게 행동하는 자들은 위정자들입니다. (Günter Eich: Fünfzehn Hörspiele, Frankfurt a. Main, S. 88). 힘 있는 자와 돈 있는 자는 “현재 상태Status quo”가 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애타게 바라는 자들은 역사적으로 고찰할 때 항상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사제 계급과 상인 계급을 비교해보세요.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제 계급은 권력과 금력에 가까이 빌붙어서 사회의 변화를 차단시켜 왔습니다. 이에 비하면 상인 계급은 대체로 세상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곤 합니다. 물론 상인 계급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변화를 주도하지는 않지만, 전환의 시기에 신속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대체로 상인들입니다. 주어진 세계가 급속히 변화하면, 그럴수록 재화의 유동은 격렬하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간에 우리는 한 시대의 격랑 속에서 어디론가 항해하는 여행객입니다.

 

필자는 이미 간행된 제 1권과 제 2권에서 고대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유토피아의 사고를 천착하였습니다. 본서인 제 3권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이르는 시기의 유토피아의 문헌들 다룹니다. 공간으로서의 유토피아는 그 기능에 있어서 시간 유토피아, 즉 “우크로니아 Uchronia”로서의 어떤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루게 됩니다. 18세기 중엽부터 사람들은 “나중의 저기”가 아니라, “미래의 여기”에서 어떤 더 나은 사회를 건립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유토피아의 정태적 시스템으로서의 성격은 서서히 약화되고, 현실 변화를 역동적으로 이룩하리라는 사람들의 의향은 더욱더 강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에 영향을 끼친 것은 무엇보다도 계몽주의 사상이었습니다. 가령 루소의 사회계약설은 국가와 인민 사이의 동등한 계약관계가 성립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의 유토피아는 국가주의, 혹은 비국가주의의 유토피아로 나누어집니다. 전자는 생시몽과 카베의 유토피아와 같은 국가 중심적 대규모의 사회구조의 틀을 갖추고 있다면, 후자는 오언과 푸리에의 경우처럼 비국가중심의 소규모 공동체를 하나의 틀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생시몽과 카베는 중앙집권적인 거대한 공동체의 체제를 구상하면서, 정치적으로 평화롭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국가의 가능성을 타진한 데 비하면, 오언과 푸리에는 지방분권적 소규모의 공동체의 삶을 통해서 자생적이고 자치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와중에도 국가의 권력 체제를 처음부터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일련의 노력이 출현하였습니다. 가령 우리는 이러한 면모를 푸리에 그리고 데자크의 공동체 구상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나중에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에서 다시 한 번 비국가주의 공동체의 특성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즉 19세기의 대부분의 유토피아들은 산업 혁명 이후로 르네상스 시대에 하나의 미덕으로 간주되던 근검절약이라는 생활방식을 거의 파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생시몽과 카베의 경우 과학 기술의 도입으로 생산력 증가를 극대화시켜서, 중앙집권적 공동체 국가의 주민들로 하여금 심지어 어느 정도의 범위의 사치를 용인하고, 풍요로운 행복을 최대한 만끽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습니다.

 

1. 루소와 볼테르 그리고 시간 유토피아: 맨 처음 다루는 문학 유토피아는 루소의 서간체 소설 『쥘리, 혹은 새로운 엘로이즈』(1761) 그리고 볼테르의 『캉디드』(1759)입니다. 전자는 클라랑 공동체의 자율적인 생활방식을 강조하는 반면에, 후자는 라이프니츠의 낙관적 이상주의를 희화화하고 있습니다. “우크로니아Uchronia”는 “시간 유토피아”라는 의미를 담은 용어인데, 유토피아의 역사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시민 주체의 사회 계약에 근거한 공동체 건설의 의향을 반영하면서, 현실 개혁의 능동적 의지를 명징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로써 완전성의 개념은 시민 주체들의 역동적 의지를 추구해 나갔습니다.

 

2. 메르시에의 시간 유토피아 『2440년』 (1771): 이 문헌은 우크로니아의 면모, 다시 말해 “미래 그리고 여기”, 즉 서기 2440년의 파리의 모습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메르시에의 작품은 장소 유토피아에서 시간 유토피아에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확고한 증거로 채택될 수 있습니다. 이 장은 메르시에의 유토피아와 계몽주의 사상의 연관성을 천착하고, 뒤이어 미래의 파리에 관한 메르시에의 유토피아의 구상을 서술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작품 내의 취약점 (과학 기술의 소극적 도입, 예술의 국가적 통제 등)을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차원에서 지적할 수 있습니다.

 

3. 홍산 문화 그리고 빌란트의 『황금의 지침서 (1772/ 1774):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의 사고 속에는 엄청난 오류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고대 문화의 토대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민족에 의해서 다져진 것입니다. 이는 홍산 문화에 관한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로 인해 드러난 학문적 결실입니다. 동양 유토피아에 관한 후속 연구 역시 바로 이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뒤이어 빌란트의 작품 분석이 이어집니다. 바람직한 군주라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를 동방의 신화적인 세시안 왕국을 예로 들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빌란트는 세시안 왕국의 삶 그리고 왕국의 구조적 틀 등을 동시에 묘파하였습니다.

 

4. 레티프의 『남쪽 지역의 발견』(1781): 니콜라스-에듬 레티프 드라 브르톤Nicolas Edme Restif de la Bretonne의 소설은 두 가지의 유토피아 모델을 보여줍니다. 그 하나는 “고결한 야생”이라는 자연친화적 요소를 가리킨다면, 다른 하나는 고전적 유토피아에서 나타나는 기하학적 요소를 지칭합니다. 전자는 인위적 요소를 배격하는 비-국가주의의 체제라면, 후자는 바람직한 국가구도를 처음부터 인정하는 체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레티프는 고대의 아르카디아의 상 그리고 모어 이후에 계승된 바람직한 이상 국가의 상을 동시에 서술하였습니다. 이러한 상들은 도피네 섬, 크리스틴 섬 그리고 “메가파타곤”이라는 세 가지 모델 속에 묘사되고 있습니다.

 

5. 피히테의 「폐쇄적인 상업 국가」 (1800): 이 문헌은 마치 제임스 해링턴James Harrington의 「오세아나 공화국」처럼 소논문 형식으로 집필된 짤막한 글입니다. 피히테는 이성이 다스리는 고귀한 국가로서 폐쇄적인 상업 국가를 서술합니다. 여기에는 시장과 무역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습니다. 물론 피히테의 상업국가가 19세기 초에 만개한 사회주의 사상의 편린을 선취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몇 가지 취약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하나는 주어진 현실과의 괴리감을 가리킨다면, 다른 하나는 경제적 교환 행위, 실물 경제의 구체적 체계 등의 결여 등을 지칭합니다.

 

6. 오언의 연방주의의 유토피아 (1816): 오언은 초기 자본주의시기에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노동자의 힘든 삶을 해결하고 그들로 하여금 노동과 삶의 조화로움을 실천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과 관계됩니다. 오언은 푸리에와 함께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인지하고, 이를 소규모의 노동 공동체를 통해서 극복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이 장은 오언의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토대에 관한 이론을 천착하고, 뉴 라나크 공동체의 실천적 실험 그리고 그 결과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7. (요약) 횔덜린의 문학 속의 유토피아: 서양의 사상사의 흐름에 하나의 획을 그을 수 있는 시점은 19세기 초 산업 혁명 이후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고대와 중세의 시대에 인정받던 질적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점이 수학적 질량에 대한 추상적 관점으로 변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횔덜린은 자본주의 초기에 “계산 법칙” 내지 “도구적으로 기능으로 기능하는 이성”이 승리를 구가하는 전환점을 극명하게 인지하면서, 자신의 놀라운 미적 프로그램을 개진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포에지인데, 자연과학과 합리성Ratio가 활개를 치는 현대 사회의 소외, 냉혹함 그리고 망각의 신드롬을 치유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합니다.

 

8.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1818): 이 작품은 유토피아의 역사의 역사 서술에서 나타나는 문학 유토피아와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생략될 수 없는 명작입니다. 작품은 20세기 이후의 사이언스 픽션에 가미된 페미니즘을 거의 예언적으로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작품의 주제는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1) 인조인간, 즉 사이보그의 사회적 동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2) 작품은 법과 정의 그리고 조화로운 사회적 삶의 덕목 등을 등한시한 과학 기술의 일방통행적인 연구를 구명합니다. (3)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상호부조와 인간 삶과 과학 기술 사이의 평화 공존에 관한 문제를 암시해줍니다.

 

9. 생시몽의 중앙집권적 유토피아 사상 (1821): 생시몽은 자본가 그리고 무산계급 사이의 갈등을 면밀하게 고찰하지 않고, 그저 국가 내지 상류층의 시각에서 하나의 바람직한 사회를 거시적으로 광활하게 설계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세부적 사항에서 여러 가지 하자를 드러내는 것은 필연적이 귀결일 것입니다. 이 장은 생시몽의 중앙집권적 시스템의 특성 그리고 산업의 발달을 위한 국가의 중앙집권적인 설계 등을 구명하고 있습니다. 생시몽의 취약점으로 우리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추상적 관계 설정, 엘리트 관료주의의 횡포 및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통찰력 부족, 여성문제에 대한 외면 등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10. 푸리에의 공동체, 팔랑스테르 (1829): 푸리에의 팔랑스테르는 비국가주의의 모델로서, 총 1620명 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노동과 향유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자생의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푸리에는 상인 계급을 혐오하였으며, 시민 사회의 일부일처제의 체제 또한 부자유와 착취의 온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본 장은 노동과 향유의 접목 가능성 그리고 1부1처제의 장단점 그리고 가족 파기로 인한 강등 등에 관한 문제를 추적합니다. 특히 푸리에는 노동과 향유의 일원화 그리고 성 해방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랑의 삶의 가능성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11. 카베의 유토피아, 『이카리 여행』 (1840): 카베의 유토피아는 생시몽의 그것과 함께 중앙집권적 사회 유토피아에 편입될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카베에 이르러 르네상스 시대의 유토피아에서 공통적으로 출현한 근검과 절제의 미덕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고도의 생산력을 통한 높은 수준의 삶이 바람직한 삶의 목표로 출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장은 보다 발전된 과학 기술을 통한 향유의 삶, 가부장제, 사회주의 계획 경제 등에 관한 이카리 국가의 특성을 개관하고, 국가의 과도한 통제, 우상 숭배 그리고 분서갱유의 정책 등과 같은 취약점을 구명하고 있습니다.

 

12. 바이틀링의 기독교 공산주의 (1843): 바이틀링은 기독교 공산주의를 표방했는데, 그의 사고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사회주의 이론이 태동할 시기에 동시적으로 출현한 것입니다. 이 장은 기독교 공산주의의 특성, 이를테면 (생시몽의 전체주의 구도, 사회주의 조함공동체) 그리고 한계점 (비국가주의의 자율성 배제, 남녀평등에 대한 편견 등)을 체계적으로 지적하는 데 주안점을 둡니다. 특히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은 바이틀링의 혁명 운동의 실패 원인을 구명하는 일입니다. 이는 외적으로는 생시몽주의를 수용하고, 내적으로는 푸리에의 이론을 도입한 데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13. 데자크의 급진적 아나키즘 유토피아 (1858): 데자크가 설계하는 비국가주의의 유토피아는 한마디로 자치, 자활 자생을 투구하는 소규모 공동체로 설계되고 있습니다. 푸리에의 팔랑스테르와는 달리, 데자크는 위마니스페르 L‘Humanisphère 공동체를 통하여 체제의 규모, 일감 그리고 노동 시간 등에 어떠한 규정을 처음부터 인위적으로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데자크의 공동체는 푸리에의 그것에 비해 더 많은 자율성 그리고 공동체 실현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소규모 공동체가 국가 자본주의가 확장되어나가는 주위 여건과 마찰을 빚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4. 마르크스의 자유의 나라에 관한 유토피아 (1867): 마르크스의 자유의 나라에 관한 분석 그리고 마르크스 사상의 긍정적 유토피아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완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유토피아의 개념은 마르크스 사상에서 첨부되어 있는 19세기 초기 자본주의의 시대에 일회적으로 나타난 추상적 사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발전을 도모하려는 사회적 의향을 담은 역사철학적 갈망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것은 마르크스 사상이 추구하는 긍정적 의향 내지 전망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 사상은 가까운 목표와 먼 목표를 동시에 지향하는데, 이루는 이 두 가지 사항을 긍정적 의미의 구체적 유토피아로 이해하려 합니다.

 

15. 아나키즘과 비국가주의 유토피아 (1880년 이후): 본 장은 한편으로는 아나키즘의 사상적 맥락을 약술하며, 이에 근거하여 국가주의와 비-국가주의의 유토피아 모델을 해명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의 과업은 한편으로는 정치적 토대를 구명하는 세계관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토피아 모델에 관한 학문적인 물음을 통해서 밝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나키즘 운동은 체제로서의 국가가 개인에게 자행하는 횡포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국가주의”의 모델과 “비-국가주의”의 모델은 아나키즘의 사상적 단초와는 다른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유럽 전역에 사회적 경제적 측면의 변모를 추동하였습니다. 초기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은 유럽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켜나갔습니다. 고대에 널리 퍼졌던 질적 가치로서의 자연, 영혼적인 것 그리고 여성적인 것은 퇴보를 거듭하고, 그 대신에 합리성Ratio 그리고 수학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자본주의는 고대적 가치를 포함시키지 못하고, 철저히 배제했던 것입니다. 시장이 작동되었지만, 경제적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전환에 의해 전혀 바람직하지 않는 의미로 변화됩니다. 다시 말해서 시장은 물물 교환을 활성화시켜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대지주의 자본가의 이익 추구를 위해 작동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시장은 더 이상 자기 치유의 능력을 지닌, 사용 윤리를 실천하는 토대가 아니라, 마치 “암울한 악마의 방앗간dark Satanic mills”과 다름이 없습니다. 시장은 인간과 환경을 지속적으로 파괴하기 때문에 개개인의 자유는 모조리 박살나기 시작합니다. (Karl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Boston 1944, 33쪽). 여기서 말하는 “악마의 방앗간”이라는 표현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블레이크는 「예루살렘」이라는 시에서 산업혁명을 “암울한 사탄의 방앗간”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카를 폴라니는 블레이크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시장의 자유방임주의가 개별 인간의 경제적 삶에 얼마나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는가를 지적하였습니다. 국가와 정부 그리고 발전된 과학 기술은 이러한 전환을 작동시키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상기한 변화 과정은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을 고찰할 때 자본주의의 가장 끔찍한 영향으로 각인될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에 관한 서양인들의 사고는 궁극적으로 세 가지 모티프에서 태동하였습니다. 돈의 무한대의 증식과 이로 인한 폐해, 갈등과 전쟁이라는 여러 유형의 폭력 그리고 이기주의의 생활관 등에 대한 비판이 그것들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서양의 유토피아는 -국가주의, 혹은 비-국가주의든 간에- 어떤 새로운 인간형을 추구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랑, 협동성 그리고 대아의 정신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서양인의 삶은 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개인을 넘어서는, “우리”의 안녕을 두레 공동체의 생활방식은 서양인에게 결여된 무엇을 부분적으로 채워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큰 자아를 도모하는 한국인들의 이타주의의 생활방식은 구분과 차단이라는 서양의 사고에서 파생되는 제반 유형의 갈등, 미움, 질투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생태 공동체의 실천이야 말로 미래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제 4권 그리고 제 5권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질 것입니다. 울력의 강동호 사장님에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