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박설호: (1)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제 1권, 서문

필자 (匹子) 2024. 10. 16. 09:15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1

플라톤에서 모어까지 (고대 - 르네상스 초기)

 

서문

 

“유토피아는 문학적 가상이라는 면사포를 쓰고 있다.” (Servier)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행위에 관한 말씀이다.” (Epiktet)

 

본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서양 유토피아를 개진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본고에 서술되는 학문적 영역은 서양 사상사에 속하지만, 필자는 학제적 차원에서 모든 것을 서술하려고 합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대표적 저작물 『자본』에서 19세기 독일에서 자본가들이 어떻게 잉여가치를 창출해내는가를 치밀하고도 세밀하게 구명하였습니다. 마르크스는 냉엄한 현실 분석에 방대한 페이지를 할애한 반면에, 미래 사회의 열광적 기대감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암시만을 던졌습니다. “자유의 나라는 궁핍함과 외부적 합목적성에 의해서 행해지는 노동이 중단되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Karl Marx: Das Kapital, MEW, Bd 25, Dietz 1962, S. 826).

 

여기서 자유의 나라에 관한 마르크스의 상은 “더 나은 삶에 관한 꿈”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속에 나타난 문학 유토피아의 서술 방식은 마르크스의 그것과는 정반대됩니다. 가령 문학 유토피아는 주로 어떤 이상적인 사회에 관한 세부적 사항을 치밀하고 상세하게 서술하지만, 주어진 현실 그리고 시대를 비판할 때에는 짤막한 함축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힘없는 지식인으로서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차제에 어떤 정치적 핍박을 감내해야 할지 모릅니다. 유토피아 서술자들은 은폐의 수단으로 문학적 가상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유토피아는 비유적으로 말해 문학적 가상이라는 면사포를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토피아를 연구할 때 우리는 일차적으로 겉으로 드러난, 가상적 현실이라는 면사포를 벗겨야 하며, 배후에 숨어 있는 시대 비판이라는 진면목을 통찰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유토피아의 사고는 직접적으로 행위를 추동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그것이 다만 행위를 촉발시키는 사고에 자극을 가한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 다시 말해 무언가 실천을 자극하는 사고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체주의의 폭력을 이유로 정치적 유토피아를 통째로 비난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토피아가 행위를 추동하는 사고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 이러한 비난의 옳고 그름의 여부는 일차적으로 유보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 1권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토머스 모어의 시대까지 유토피아의 문헌을 다루고 있습니다. 서양 유토피아의 역사에서 모어의 『유토피아』는 효시와 같은 작품입니다. 본서는 모어의 유토피아를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설정하면서도, 고대의 유토피아의 특징을 약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대 사람들과 중세 사람들의 사회적 갈망을 좌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축복의 섬 내지는 황금의 시대에 관한 고대인들의 갈망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억압과 강제노동이 없는 사회적 삶에 관한 수동적 갈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미리 말씀드리건대 플라톤의 문헌은 유토피아의 근원적 모델로서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그것은 지배 계급, 군인 계급 그리고 평민 계급이라는 계층 차이를 용인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평등의 개념은 특정 계급 내에서의 평등을 지칭할 뿐, 만인의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둘째로 플라톤은 처음부터 하나의 규범이 되는 당위성의 모델을 설계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이것은 주어진 현실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한 게 아니라, 당위성의 필연적 모델에 불과합니다. 셋째로 『국가』는 명령적이고 상명하달의 정신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실제 현실에서 바람직한 상을 도출해낸 게 아니라, 국가를 다스리는 철학자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사변적으로 구상하였습니다.

 

고대의 유토피아는 몇 가지 특징을 표방합니다. 가령 그것은 현세 중심적이며, 노예 경제 그리고 도시 국가의 구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가령 그 배경으로서 찬란한 남쪽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남쪽 열대지역은 노동 내지 생산양식에 대한 구체적 설계가 필요 없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삶은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과 상응하는 숙명론을 보여줍니다. 그밖에 도시 국가의 존립이야 말로 개개인의 삶의 행복보다도 중요한 관건이었습니다. 고대인들의 느슨한 일부일처제 내지 가족 제도의 폐지 등은 이와 관련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도래하면서 일부일처제의 금욕적 생활은 하나의 기준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고대에 나타난 남녀의 사랑은 점성술의 관점에서 해와 달의 만남, 즉 삭망으로 비유되는데, 이러한 “성스러운 결혼식”은 기독교 신앙이 정착된 이후에 “그리스도의 몸”과 “교회ἐκκλησία”의 조우라는 어떤 근본적인 의미 변화를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사항은 기독교 사상 속에 도사린 종말론적인 기대감입니다. 이는 그 의향에 있어서 “재 기억ἀνάμνησις”과는 근본적으로 반대되며, 지금 여기에 지상의 천국을 건설하려는 갈망의 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종말론적 기대감은 오랜 기간 동안 “마지막 사건 Eschton”으로서의 지상의 천국의 건설을 상정하도록 작용하였습니다. 유대주의 그리고 기독교의 메시아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조아키노의 역사철학에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기독교 사상 속에는 종말론 내지 오메가로서의 새로운 예루살렘의 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먼 훗날 핍박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혁명의 불씨를 지피게 하였습니다. 이는 가령 뮌처의 농민 혁명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종교인의 종말론적 기대감 속에는 모델로서의 유토피아 대신에, 유토피아의 성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1. 가상에서 비판으로, 비판에서 실천으로: 이 장은 본서의 전반적 특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러두기와 같습니다. 여기서는 네 사지 사항이 요약되고 있습니다. (1) 국가 소설에 반영된 사회 유토피아는 어떤 사회적 시스템과 관련되는 유토피아의 모델입니다. (2) 천년 왕국설 그리고 인간 주체의 갈망의 상은 유토피아의 의향으로 정의 내려질 수 있습니다. (3) 디스토피아는 19세기 말에 출현한 문학 유토피아로서 경고의 사회적 상으로 이해됩니다. (4) 생태주의 유토피아는 20세기 후반부에 출현한 유토피아로서 자치, 자활 그리고 자생을 추구합니다.

 

2. 신화와 유토피아, 그 일치성과 불일치성: 이 장에서 필자는 제반 신화들이 어째서 유토피아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가를 구명하였습니다. 신화는 문헌이 아니라, 구전 (口伝)되어온 것이기 때문에 초시대적인 우화 내지 알레고리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문헌이 충분하지 않는 관계로 우리는 신화를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이 누구인지, 어떠한 버전이 가장 정확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신화가 탄생할 시기의 발설자의 갈망의 상을 정확히 파악할 방도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신화 수용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신화를 수용한 사람들의 갈망을 부분적으로 도출해낼 수는 있습니다.

 

3. 국가주의와 비국가주의의 유토피아 모델: 국가주의의 유토피아 모델은 국가의 체제를 우선으로 중시합니다. 이에 반해 비-국가주의의 모델은 자연적 무위의 법칙을 강조하고, 국가 체제를 가급적이면 벗어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령 황금의 시대의 상이라든가 놀고먹는 사회에 관한 상상은 비-국가주의의 모델의 전형적인 특성으로 나타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유토피아 모델의 구분이 아나키즘 그리고 국가 중심주의의 정치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두 개의 서로 다른 모델은 세계관 내지 정치적 견해와는 무관하게 유토피아 연구에서 별도로 구명해야 할 사안입니다.

 

4. 플라톤의 『국가 Πολιτεία』: 플라톤의 『국가』는 향락과 즐거움을 배제한 이상 국가의 모델로서, 초시대적 범례를 지닌 국가의 상입니다. 나아가 권위주의의 계층적 질서를 고수한다는 점에서 국가주의에 근거하는 관료주의의 사상적 모델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사회 계층이 천부적으로 구분되고 있다는 점에서, 논의의 어조가 명령적이라는 이유에서, 『국가』는 유토피아 연구의 효시가 되는 작품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게 공동 소유다.Omnia sint communia”라는 플라톤의 말은 16세기에 뮌처에 의해서 놀랍게 왜곡되어 평등사상의 토대로 채택되었습니다.

 

5. 플루타르코스의 『리쿠르고스의 삶』: 플루타르코스의 문헌은 유토피아의 연구 내용과 부합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사실 뿐 아니라, 가설 내지는 추측 등이 첨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헌은 특히 스파르타의 사회상 내지 실제 역사에 있어서의 세부적 사항, 특히 고대인들의 갈망의 상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고대인의 구체적 삶의 방식을 세부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문헌을 통하여 고대인들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습니다.

 

6. 아리스토파네스의 『새들』: 아리스토파네스는 그리스인들이 시칠리아 섬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제국주의적 의도를 비난하기 위해서 극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천국의 도시에서는 적개심, 폭력 그리고 탐욕 등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새들』은 아리스토파네스의 관료주의의 입장 그리고 황금의 시대에 관한 일반 사람들의 허황된 갈망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플루타르코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고대인의 갈망의 상을 연구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7. 스토아사상과 세계국가 유토피아: 스토아 사상은 귀족 학자들에 의해서 진척된 것으로서 공유제, 노예제, 전통적 가족제도 등의 개혁을 직접적으로 꿈꾸지는 않았습니다. 대신에 스토아 사상은 개인의 내면적 자세에 관해 많은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가능한 세계 국가에 관한 그들의 기대감입니다. 초기 스토아 사상가들의 경우와는 달리 파나이티오스와 같은 중기 스토아학자들은 기원후의 시점부터 특히 거대 로마제국에 합당한 찬란한 세계국가의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점에서 소규모 도시 국가의 차원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8. 이암불로스의 『태양 섬』과 헬레니즘 유토피아: 이 장은 고대의 문헌, 에우헤메로스의 『성스러운 비문』과 이암불로스의 『태양 섬』을 다루고 있습니다. 에우헤메로스는 축복의 섬, “판차에아”에서 출현한 축제의 이상 국가를 묘사하였습니다. 이상국가의 주민들은 신들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암불로스는 찬란한 남쪽의 섬을 설정하여, 강제 노동이 필요없는, 평등한 사회적 삶을 형상화하였습니다. 『태양 섬』은 가족제도의 폐지의 측면에서 도니 그리고 캄파넬라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마지막 대목에서 필자는 고대 사회의 유토피아의 특성을 요약 정리해보았습니다.

 

9. 키케로의 『국가론』: 키케로의 국가론은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한 마지막 문헌입니다. 여기에는 군주제, 과두제 그리고 민주제의 장단점이 언급될 뿐 아니라, 고대인들의 정치사상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고대인들이 고찰한 여러 가지 정치 제도는 오늘날의 의미와는 조금씩 다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장 「스키피오의 꿈」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훌륭한 덕목을 지닌 지도자에 대한 키케로의 갈망입니다. 정치적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불세출의 영웅이 내려다보는 광대무변한 우주론적 시각이라고 합니다.

 

10. 기독교 사상 속에 도사린 유토피아: 이 장은 에른스트 블로흐가 파악한 기독교 속에 도사린 사랑의 공산주의를 요약한 것입니다. 블로흐는 예수의 종말론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기독교 사상 속에 도사리고 있는 역동적 특성과 오메가로서의 묵시록을 강조하였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회적 제반 관련성 속에 은폐되어 있습니다. 지상의 천국으로서의 “하늘나라”의 방향은 갈망의 의향을 고려할 때. “한울나라” (윤노빈)의 방향과 거의 일치하는데,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유의 나라”의 방향과 거의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11.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른바 마니교에서 언급되는 선악의 이원론의 사상을 발전시켜서, 이른바 악마의 국가를 극복한 신의 국가를 설계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로마 제국은 이른바 중간 단계에 위치한 국가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파악한 국가의 이상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도 바울과는 달리 지상에 신의 국가를 탄생시키는 과업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파악하였습니다. 7이라는 숫자에 의미대로 해방의 일요일에 변화 내지 전복은 실제 현실에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2. 조아키노의 제 3의 제국에 대한 갈망: 조아키노는 오리게네스의 성서의 독해의 세 가지 방법을 발전시켜서, 기독교 사상 속의 역사철학적 의미를 도출해내었습니다. 그것은 성부, 성자 그리고 성신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역사의 세 번째 단계인 성신,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면, 계급이 필요 없는 평등한 사회가 도래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시아사상과 천년왕국설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평등한 “제 3 제국”에 대한 갈망은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자들에게 굶주림을 떨칠 수 있는 찬란한 나라를 갈구하도록 작용했습니다.

 

13. 천년왕국의 사고와 유토피아: 천년왕국의 사고는 현대적 유토피아의 갈망의 상을 미리 선취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장소는 수동적이며 불변하는 상인데 반해, 유토피아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성취되는 결과로 이해됩니다. 천년왕국의 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사고의 과정 내지 분석이 아니라, 비논리적으로 출현하는 상의 결합입니다. 더 나은 삶을 갈구하는 인간이 의식하는 “지금 시간” 속에는 모든 기대감과 혁명적 의식이 응집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유토피아는 합리적 설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주어진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의 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4. 뮌처가 실천한 천년왕국의 혁명: 이 장에서 필자는 독일에서 농민혁명을 주도한 토마스 뮌처의 삶과 사상을 조명했습니다. 뮌처는 신의 과업과 인간의 과업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신의 과업에 동참하는 일이 아니라, 오로지 사회정치적인 측면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밖에 없다고 천명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뮌처가 무조건 자신의 과업이 신의 뜻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믿지는 않았습니다. 뮌처는 실제 현실에서 신의 뜻을 외면하는 사악한 인간들에 대항하여 투쟁하려고 하였습니다.

 

15. 모어의 자유 유토피아: 『유토피아』는 주지하다시피 유토피아 문헌의 효시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모어는 인간의 세 가지 악덕인 나태, 탐욕 그리고 자만을 극복하고, 핍박당하는 인민의 행복을 극대화한, 찬란한 섬을 묘사하였습니다. 사유재산제도는 철폐되어 있습니다. 하루 6시간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자유의 실천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비록 노예제도가 존속되고 있지만, 만인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갑니다. 캄파넬라의 유토피아가 점성술에 입각한 질서의 유토피아라면, 모어의 유토피아는 연금술에 근거한 자유의 정신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끝으로 사족의 말씀을 첨부합니다.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는 나의 정신적 자식입니다. 자식을 출산하기 위해서 꼬박 13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38 권의 저역서를 간행했지만, 출간할 때마다 마치 “병자가 밤중에 아이를 낳은 뒤에 황급히 불을 들어 살펴보는厲之人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것처럼 부끄러움이 앞섰던 게 사실입니다. 일천한 지식에서 비롯한 오류가 행여나 자식의 얼굴에 새겨져 있을까 꺼림칙했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출산일 하루만큼은 커다란 기쁨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집필 과정에서 국내외의 많은 분들로부터 커다란 도움을 받았습니다. 베풀어주신 그들의 은혜를 이 책으로써 결초보은하려고 합니다. 뮌헨의 독일문화원,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Friedrich Naumann Stiftung, 한국연구재단, 한신대학교 측의 도움이 컸습니다. 나의 책에 관심을 기울여준 도서출판 울력 측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이 앞으로의 유토피아 연구에 하나의 초석으로 작용하기를 바랍니다.

 

안산의 우거에서

필자 박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