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박설호: (4) 블로흐의 물질 이론

필자 (匹子) 2024. 9. 13. 10:15

(앞에서 계속됩니다.)

 

16. 물질 이론과 변증법적 물질 이론: 블로흐가 물질 개념에서 찾아내는 두 번째 사항은 근본적으로 변증법적 물질 이론과의 관련성을 가리킵니다. 블로흐는 여러 문헌을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의 사상을 연결하고, 헤겔의 사상과 토머스 홉스의 사상적 토대를 과감하게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Bloch, LdM: 168f). 헤겔은 질적 차원의 변증법을 수미일관 추적한 데 비하면, 홉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세계 자체를 구명하려고 시도한 바 있습니다. 이로써 논의되는 것은 “변증법 그리고 물질 사이의 결혼” 내지는 합금입니다. 블로흐는 헤겔이 추적한 “과정의 논리학”으로서의 변증법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과정의 논리학이란 -『주체와 객체. 헤겔에 대한 주해』에서 언급된 바 있는- “유동하는 물질의 운동 법칙”을 가리킵니다. (Bloch, SO: 131).

 

물론 헤겔은 물질 개념을 오로지 “이념이 지나치는 단계“로 이해하고, 그것을 정신의 “외자 존재Außersichsein”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물질의 유일한 진리는 헤겔의 발언에 의하면 그것이 아무런 진리를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Hegel: 44.) 이 문제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매우 중요하게 판단합니다. 즉 헤겔은 양적 특성이 질적 특성으로 전복되는 시점을 논의하는데, 이때 내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게 바로 물질의 변증법적 관여라고 합니다. (Bloch, MA: 206). (헤겔이 논한 바 있는) “개념의 자기 운동” (Bloch, SO: 388)으로 진척되는 변증법은 블로흐에 의하면 변증법 그리고 물질 사이의 혼인을 통해서 물질의 변증법으로 변화되는데, 이때 도움을 주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라고 합니다. 이로써 물질은 무기질로 시작되어, 질적 비약을 거쳐서 인간 정신으로 이르기까지 드높이 연속적으로 발전해 나간다고 합니다.

 

17,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물질 개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지엽적인 개별 사안의 차원에서 물질에 관해서 언급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령 『신성 가족Die heilige Familie』에서 위대한 경험주의자, 프랜시스 베이컨을 찬양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습니다, “물질에서 유래한 특성 가운데에는 움직임이라는 운동성이 있다. 이것은 첫 번째 탁월한 운동성을 가리키는데, 기계적이고 수학적인 운동뿐 아니라, 충동, 생명의 정신 그리고 팽창력, 다시 말해서 –야콥 뵈메의 표현을 빌면- (고통을 뜻하는) 물질의 질적 특성이다.” (MEW 2: 135).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베이컨의 순진한 물질 이론 대신에 변모를 촉구하는 힘으로서의 물질을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말하자면 물질은 마치 인류의 시적이고 감각적인 광채를 비아냥거리듯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러한 놀라운 표현은 후세의 물질 이론의 논의에 더 이상 직접적 영향력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마르크스는 물질에 관해서 세부적으로 추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물질이라는 개념은 자연 내지는 자연 소재라는 의미로 활용되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엥겔스는 『반-뒤링론Anti-Dühring』 그리고 『자연의 변증법』에서 물질에 관한 사항을 연구하였습니다. 물질은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 자신의 고유한 운동 에너지를 통해서 자신을 벗어나서, 항상 질적으로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의식으로 얼마든지 더 낫게 향상할 수 있습니다. 엥겔스는 스스로 더 높은 형태로 발전되는 것이 물질이라고 선언합니다. (Engels: 479). 블로흐는 이 점을 지적하면서, 자연 속에는 변증법적 운동이 존재하며, 이로써 물질은 변증법적으로 활동한다는 게 사실로 확인된다고 말했습니다. (Bloch, SO: 211).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고 합니다. 만약 물질이 어떤 법칙으로 발전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인간은 이러한 변화 과정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보조를 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주체와 객체의 노동의 분할 작업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물질은 주체와 객체의 작업을 서로 나눔으로써 공통의 실체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실체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행동하고 대상으로 파악하는 변증법을 통해서 결코 차단되거나 갇히지 않는 가능성,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능한 현실로 발전될 수 있다.” (Bloch, SO: 438). 인간 역시 가장 대담한 조직체로서의 물질입니다. 프로메테우스 인간은 세계 과정의 기계를 놀라울 정도로 잘 작동시키는 기술자로 활약하게 될 것입니다.

 

18. 세계영혼으로서의 셸링의 물질: 블로흐가 물질 개념에서 찾으려는 세 번째 사항은 셸링의 자연 철학과 관련됩니다. 셸링은 모든 물질의 가능한 형태를 추적하면서, 어떤 보다 숭고한 생명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미래에 완성될 수 있는데, 아직은 물질이 이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물질은 셸링에 의하면 외부로 자신을 드러나려는 욕구 내지는 동경을 품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내부에 이미 하나의 싹으로 발화되어 있는 더 나은 생명을 동경한다.” (Schelling A: 54). 셸링의 역동적 물질 개념은 세계의 유기체에 관한 통상적인 견해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기체라는 대리석 위에 유기체라는 흉상을 세우고 있는데, 이는 셸링에 의하면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시각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토대 내부에는 세계영혼으로서의 유기체의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Bloch, MA: 221).

 

무기질의 형태 속에 어떤 미완의 생명의 형체가 숨어 있다면, 유기체 속에도 얼마든지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구체적 영혼이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Schelling C: 377). 셸링에 의하면 유기체로서의 물질에는 어떤 우선적 권리, 즉 인간 정신이 자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유기체 속에는 인간 정신의 변형된 모습이 은폐되어 있는데, 이는 차제에는 찬란한 꽃이라는 최상의 면모로 만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Schelling A: 211). 이와 관련하여 셸링은 물질이 대체로 사멸한 존재로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부활하여 생명력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19. 물질과 유토피아의 상호 관련성: 셸링의 세계영혼과 관련하여 블로흐는 물질과 유토피아의 근본적 토대가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물질은 블로흐에 의하면 고착되고 불변한 무엇이 아닙니다. 물질의 변모 가능성은 외부에 주어진 형태의 에너지의 도움을 받습니다. 가령 인간은 기술과 수작업으로 물질의 형태를 얼마든지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물질은 수미일관 개방적 태도로 처신하지만, 변화의 과정에서는 여전히 완전한 무엇으로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Bloch, SO: 429). 물질은 과정에 머물고 있으므로, 여전히 어떤 완성된 무엇으로서 세계에 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에 합당한 무엇이 아니라, 가능성을 안고 있는 무엇이므로, 가능성의 현존 형태만 보여줄 뿐입니다. (Bloch, LdM: 119).

 

하나의 과정이 온존한다는 사실은 물질이 아직 완전한 존재로 드러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때 물질은 완결된 완성 형체를 향해 추동하며, 가능성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즉 “이러한 특징은 변증법의 물질 이론이 품고 있는 가능성과 다를 바 없다.” (Bloch, PH: 237). “만약 물질이 그런 식의 유토피아의 특징을 지니지 않는다면, 과정은 결코 주어질 수 없으며,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Bloch, TE: 209). 물질이 “아직 아님”을 구명하려는 존재론의 핵심 개념이라면, 유토피아는 “새로운 무엇Novum”을 찾으려는 인식론적 의향을 지닌 핵심 개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토피아와 물질 사이의 거리감은 과정의 가능성을 통해서 서로 가까운 관련성으로 근친하게 될 것입니다. 요약하건대 블로흐는 물질 이론을 “아직 아님Noch-Nicht”을 추동하는 존재론으로 밝히려고 하고, 유토피아의 사상을 “새로운 무엇Novum”을 찾으려는 인식론으로 정립하려고 했습니다.

 

20. 가능성의 실체로서의 물질: 물질은 에너지를 장착하고, 힘을 응축하기 때문에 역동적 변화를 하나의 특징으로 견지합니다. 만약 물질 속에 원자가 있다고 가정하면, 그것들은 유클리드의 경직된 공간 속에서 딱딱한 건축재의 프레임으로 기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원자는 마치 자기장의 움직임처럼 어떤 사건을 발생시키는데, 이 경우 그것들은 에너지의 매듭 내지는 핵으로 작동될 수 있습니다. 그래, 물질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는 자신과 타자를 자극하는 핵심 공간일 수 있습니다. 이로써 물질은 하나의 자기장으로 마치 빛의 속도로 신속하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질의 확장은 무기물, 유기물 그리고 인간 전체의 영역에서 행해지는 무엇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모든 작동되는 가능성을 활용하기 때문에 어떠한 한계라든가 차단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물질의 모태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형체들이 출현하고 형성됩니다. (Bloch, PH: 232). 여기서 말하는 물질의 모태는 항상 조건화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제한되지 않고, 소진되지 않은 가능성의 실체를 가리킵니다. 중세의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철학자들은 비록 수동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물질 속에서 유토피아의 특징을, 유토피아 속에서 물질의 특징을 도출해내려고 노력한 바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