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는 유토피아의 효시가 아니다 (1):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플라톤의 『국가Πολιθεια』는 유토피아 연구에 있어서, 참고서적일 뿐, 유토피아의 모델로서 부적절한 문헌입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국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등 사회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국가』 속의 모든 인간은 지배계급, 군인계급 그리고 평민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계급은 천부적인 것으로 세습되고 있습니다. 평민으로 태어난 자는 군인 내지 지배자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둘째로 혹자는 플라톤의 『국가』가 당시의 도시 국가, 스파르타를 의식하고, 이와 반대되는 국가의 틀을 축조하였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스파르타는 플라톤의 눈에는 패배한 아테네가 본을 받아야 하는, 승리한 도시 국가로 비쳤을 뿐입니다. 플라톤은 『국가』를 집필할 당시에 대서양 아래로 가라앉은 아틀란티스만을 뇌리에 떠올렸습니다. 따라서 플라톤의 작품은 실제의 정황이 고려된, “우연에 좌우되는stochastisch” 모델이 아니라,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는” 규범적 모델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제자, 크세노폰의 경우와는 상반되는 것입니다. 크세노폰은 『퀴로스 전쟁사』(BC. 370)에서 자신의 실제 경험에 근거하여 퀴로스 왕이 약 28년에 걸쳐 추진한 역사를 생동감 넘치게 서술한 바 있습니다.
2. 『국가』는 유토피아의 효시가 아니다. (2): 셋째로 『국가』는 처음부터 어떤 바람직한 국가의 모델을 논리적 당위성에 근거하여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주어진 현실적 조건에서 파생될 수 있는 수많은 개연성들은 플라톤의 작품에서는 당위와 필연성의 논리에 의해서 처음부터 차단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모든 논의는 일반 사람들의 평범하고 단순한 시각이 아니라, 오로지 국가를 다스리는 철학자의 관점에 의해 개진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국가』는 시종일관 명령적이고, 위로부터 아래로, 즉 상명하달의 방식으로 규율과 법령을 강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플라톤의 문헌은 일반인으로서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모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상기한 세 가지 이유에서 플라톤의 작품은 문학 유토피아의 효시로서 적절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유토피아 연구가들은 유토피아의 효시가 되는 문헌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로 규정하는 데 동의합니다. (Doren: 165).
3. 플라톤의 문헌,『국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플라톤의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후세에 좋은 영향 그리고 나쁜 영향을 끼쳤지만, 유토피아의 시각을 발전시키는 데 일조했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기원전 380년에서 370년 사이에 집필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도서로 발표되어, 후세에 전해진 것은 르네상스 시대 (1482 - 1484)의 라틴어 판이었습니다. 이 두툼한 책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떠한 계기에 의해서 완성되었는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국가』가 플라톤의 장년기에 집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이 책은 교육적 효과를 고려하여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국가』는 도합 10 권으로 구분되는데, 첫째 권의 서술 형식은 플라톤의 초기 작품을 연상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첫째 권이 이후의 시점에 추가로 첨부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4. 제 1권, 정의란 무엇인가?: 첫째 권을 살펴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계기를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벤디스 축제의 기간에 자신의 제자이며, 플라톤의 동생인 글라우콘과 함께 아테네에서 피레우스로 여행을 떠났는데, 케팔로스라는 부자의 집에 거주하면서 여러 식객들과 정의에 관해서 토론하게 됩니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프로타고라스, 이온, 에우튀프론, 라헤스, 카르미데스 그리고 뤼시스 등입니다. 대화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이어지지만, 논객들은 제각기 자신의 관점에서 정의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그래서 참석자들은 서로 어긋나는 견해를 주고받다가, 결국에는 아무런 결론을 맺지 못합니다. 논의는 하나의 아포리아로 종결됩니다. 이를테면 정의는 사회의 보편적인 선의 개념으로 이해되지만, 급진적 소피스트로 알려진 트라시마코스의 견해에 의하면 강자의 힘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다수는 정의를 추상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반면, 트라시마코스는 마키아벨리 식의 권력론과 유사하게 정의의 개념을 피력합니다. 정의는 강자에게 이로운 것이며, 정의롭지 않은 삶이 개개인에게 이롭다는 것입니다. 실용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이러한 사고는 당시 도시국가에 살던 사람들의 외교의 정책으로 정착된 것입니다. (김남두A: 169쪽). 플라톤은 이러한 견해를 객관에 합당하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5. 정의로움에 관한 추상적 논증은 의미가 없다: 플라톤은 「메논Menon」과 「고르기아스 Gorgias」에서 정의를 다룰 때 사용한 바 있는 새로운 문학적 방식을 도입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과거에 언급했던 말을 재인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로써 플라톤은 정의에 관한 추상적 논증만으로는 정의를 명징하게 해명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 까닭은 정의로움은 플라톤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개개인들의 “행복감 Ευδεμονια”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플라톤은 미덕과 정의에 관한 소피스트들의 경박한 말장난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습니다. 정의에 관한 문제는 플라톤에 의하면 보다 높은 관점에서 실천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존재 지시적이고 통합적 가르침이라는 관점을 고려해 보세요. 언제나 그렇듯이 하나의 명제는 특정한 현실적 조건에 의해서 참과 거짓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주어진 장소와 시간이라는 구체적인 정황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정의의 개념은 얼마든지 추상성의 의미 영역 속에서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제 1권은 정의에 관한 아포리아를 교묘하게 반박하면서, 다른 문제를 도입하기 위한 서문과 같습니다.
6. 문제는 취향에 관한 지엽적 발언이 아니라, 제도에 있다.: 상기한 견해는 두 번째 권의 첫 부분, 글라우콘, 아다이만토스 그리고 소크라테스 사이의 대화에서 드러납니다. 그들의 대화는 단순히 정의로움이 불의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증명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대화자들은 오히려 인간의 행복 추구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려고 합니다. 그들은 우선 축복의 감정 내지 행복감의 본질을 확정지으려 하며, 그 작용 및 유용성을 개진하려고 합니다. 국가에 관한 논의는 바로 이러한 논증의 과정을 거쳐서 나타납니다. 축복과 행복감의 본질과 관련되는 이중적인 의향은 가령 『향연Symposion』에서의 소크라테스의 연설 그리고 『파이드로스Phaidros』에서 이미 출현한 바 있습니다.
어쩌면 행복감의 본질과 그 기능을 파악하는 작업은 어쩌면 인간의 능력으로 행해질 수 없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토론자들에게 어떤 사고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즉 사람들은 정의로움의 현상을 개별적 인간들의 심리적 영역 속에서 찾지 말고, 정의로움과 관련되는 모든 것이 담겨질 수 있는, 하나의 규범적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델이 이른바 도시 형태를 지닌 국가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등잘인물,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결코 역사적 현실에서 발견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상 속의 이상적 모델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경험적으로 주어진 게 아니라, 하나의 이상으로 결정되어 있는 모델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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