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

필자 (匹子) 2024. 1. 29. 09:23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1900 -2002)의 "진리와 방법"은 1960년 튀빙엔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가다머는 세가지 방법론 -지적 방법 (ars intelligendi), 해명의 방법 (ars explicandi), 결합의 방법 (ars applicandi)-을 바탕으로 하여 해석학을 새롭게 그리고 포괄적으로 발전시킨다. 이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적이며 법률적인 방법을 함께 고려하고 있으며, 철학에서 논의되는 해석학적 순환 및 (키르케고르의 “동시성”의 개념과 같은) 신학적 사고 유형 등을 이전, 확장 그리고 우주화시키고 있다.

 

가다머는 고전적 미학 용어인 “카타르시스”, “유희적 구상안” 등의 가치를 복원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에 충실한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태도는 미학적 모더니즘이 간과한 것들이며, “미학은 해석학에서 출발해야 한다.”라는 요구 사항을 드러낸다.

 

60년대의 지적 상황 속에서 아도르노는 어떤 절대화된 현대성의 토대 하에서 가다머의 이론을 반박하면서, 해석학에 급진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제기하였다. “예술 작품은 해석학적 대상으로서의 미학에 의해 파악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명확히 파악되어야 할 것은 예술의 파악될 수 없는 특성이다.” 이러한 극단적 입장은 어떤 현대적 의미의 미학적 해석학 (혹은 해석학적 미학)의 탄생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가다머는 해석학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1800년 전후의 시기를 가장 중요한 시기로 설정하고 있다. 이때 그는 (어떤 시대의, 다양한 시각에서의 성찰 유형, 즉 전통에 입각하여)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상호 비판한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해의 선구조 (Vorstruktur des Verstehens)를 실존 철학적으로 규명한 바 있는데, 가다머는 이를 토대로 하여 “이해의 조건으로서의 우선 판단 (Vorurteile als Bedingungen des Verstehens)”을 용인한다. 물론 가다머는 여기서 이해에 관한 지식 사회학과 사회 심리학적인 연구 결과 및 의미 파악의 관행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기에 실존 철학의 현대성 결핍 현상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다.

 

 

가다머는 성찰 철학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하며, 이에 대해 경험의 개념을 재도입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찰 철학이란 현실을 연역의 관점에서 이해하며, 현실의 경험적 영역을 부차적으로 간주하는 사고의 방식이다.) 동시에 그는 정신과학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역사적 객관주의의 진리에 대한 요구를 부정하며, 아울러 방법론에 맹신한다는 게 얼마나 순진한가를 증명해 보인다.

 

가령 가다머는 (입법적 방식과 개념 부호적 방식을 학문 이론적으로 구분한) 빌헬름 딜타이의 입장을 거론한다. 여기서도 가다머는 경험 사회학의 영역에서 방법론적 제한과 같은 유보설 (설문과 평가시의 해석학적 모호성) 카테고리를 학제적으로 이전시키기 어려움 등을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의 “영향사적 뒤엉킴”과 같은 유형학은 계속 연구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일직상으로 이어온 그리고 관철된 유형학은 영향사적으로 은폐되고 차단된 그것으로부터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가다머는 이해에 관한 현재에 고착된 입장을 “해석학적 상황의 의식”으로 확장시킨다. 이때 칼 야스퍼스 그리고 로타커 (Rothaker)의 사상을 끌어들이면서, 이를 에드문트 훗설의 지평의 이론과 결합시킨다. 이해하는 자는 자신의 실제 직접적인 삶과 자신의 역사에 모든 것을 관련시켜 이해하려고 한다. 이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대상적 지식을 허용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불완전한 영향사적 성찰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밝혀냄 (Erhellung)”을 허용한다. 해석하는 자가 어떤 고립된 역사적 시기 혹은 자신과 무관한 텍스트를 다루는 한 “하나의 역사적 지평의 설계”가 형성된다. 비록 자신의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해석하는 자는 하나의 “지평의 용해”를 완성시킨다.

 

역사적 지평의 설계는 가다머에 의하면 결코 고착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해의 완성 단계의 순간으로 드러나야 한다. 어떤 현대적 방법론을 제기하는 대신에 가다머는 해석학을 기껏해야 그러한 용해의 조절된 완성으로서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완전에 가까운 설계와 이해된 개별적 대상에 대한 현실을 고려할 때 다시금 요청되는 것은 해석학적 순환의 이전 및 역사화 작업일 것이다.

 

(가다머가 시도한) 시간 지평에 관한 구분 내지는 용해는 과거의 예술 작품에 대한 예견적 기능을 위한 공간을 전혀 마련해주지 않는다. 과거의 탁월한 예술 작품은 오직 시대적 맥락에서 해명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고 새롭게 부각될 수 있지 않겠는가? 가다머에게서 나타나는 시간 모델의 아포리아는 내적인 비동시성 및 과거의 변형된 구조의 고착화 등과 같은 모든 형태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은 임홍배 교수에 의해 번역되어 2012년 문학동네에서 간행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