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3) 플라톤의 국가

필자 (匹子) 2024. 9. 5. 11:04

(앞에서 계속됩니다.)

 

14.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플라톤은 여성의 능력을 남성의 그것과 동등하다고 생각했지만, 여성이 육체적으로 남성보다 유약하므로, 모든 직업에서 여성의 이행 능력은 남성의 그것보다 부족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남성과 여성은 플라톤에 의하면 생물학적으로 다른 기능을 지니고 있으므로, 남자와 여자가 제각기 다른 일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평민 계급에 속하는 남자는 재화를 창출하는 데 노력해야 하고, 평민 계급에 속하는 여자는 아이 낳고 키우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Berneri: 38). 플라톤은 이러한 입장은 오래 시간에 걸쳐, 즉 칸트와 헤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남성의 능동적 특성과 여성의 수동적 특성을 확정하도록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선입견이 전체에 대한 편견에 근거한 것이며, 모든 개별적 남성과 모든 개별적 여성에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은 여성 운동 이후에 서서히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15. 철학자가 다스리는 이상 국가, 동굴의 비유: 이상 국가의 실현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필요한 것은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배자 양성을 위한 교육으로서 플라톤은 변증법 (철학), 이념 이론 (윤리학), 체육 그리고 음악 등을 필수 과목으로 정해 놓습니다. 지배자는 “좋음”에 관한 지식을 소유해야 하는데, 이러한 지식은 “앎ἐπιστήμη” 그리고 “의견δόξα” 사이의 구분이 극복된 것입니다. (김남두B: 43).

 

주어진 사실에 대한 이해는 하나의 견해에 대한 전제조건입니다. 반대로 어떤 견해를 견지해야만 우리는 주어진 사실에 대해 더 큰 관심을 지닐 수 있습니다. 특히 일곱 번째 권에서는 유명한 국가 철학적인 비유로서 동굴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동굴 속의 노예는 자신이 처한 부자유를 인식하지 못하고, 노예의 삶을 천부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오래 그곳에서 머물렀으므로 과거의 동굴 밖의 삶을 기억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하 동굴에 수감된 죄수들은 사슬에 묶여 있어서 배후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등 뒤의 동굴 입구에는 횃불이 켜져 있고, 앞쪽에는 벽이 있습니다. 죄수들은 이 벽면을 통해서 그들의 그림자와 횃불 사이에 있는 사물들의 실루엣을 바라봅니다. 그 외의 어떠한 다른 사물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죄수들은 그림자를 마치 실재하는 사물로 착각합니다. 그들에게는 동굴이 자신의 현실이며, 우주의 전부에 해당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바깥의 밝은 자유의 공간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노예들이 어떻게 자신의 착각을 인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우매함을 극복하고 보다 지혜롭게 변하기 위해서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맹목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인간은 노예의 상태를 극복하고, 마침내 “순수한 ‘선의 형체’의 투시ίδεα τυ αγάθυ”의 단계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16. 네 가지 좋지 못한 정치 형태: 플라톤은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의 권에서 네 가지 국가의 정체를 언급합니다. 즉 “금권제Timokratie”, “과두제Oligarchie”, “민주제Demokratie”, “참주제Tyrannis” 등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금권제와 과두제는 모두 오늘날 관료주의의 특성으로 이해하면 족합니다. 금권 제도와 과두 제도는 재산의 평가에 근거해서 부유한 자들이 통치하고, 가난한 자들이 지배당하는 정치의 방식입니다. 이러한 정체가 존속되면, 사람들은 지혜와 정의를 저버리고, 오로지 재화의 획득에만 전념하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치권력의 시금석은 오로지 돈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무위도식에 대한 열망 그리고 악착스럽게 남의 재화를 강탈하려는 욕망이 될 것입니다. 뒤이어 나타나는 것은 “민주제”입니다. 민주제는 일반 사람들의 자유를 신뢰합니다.

 

나라 전체가 무제한의 언론의 자유로 채워지게 되면, 누구든 간에 자기의 뜻을 국가의 정책에 반영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로써 나타나는 것은 정부도 철칙도 기준도 없는 자유방임의 사회라고 합니다. (참고로 이러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군주제를 옹호한 사람은 역사가 헤로도토스였습니다. 『역사』 제 3권에 나타나는 헤로도토스의 과장된 주장은 당시 페르시아 왕궁의 정황 내지 시대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참주제의 가장 커다란 취약점은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참주가 권력의 맛을 아는 순간 마치 굶주린 동물처럼 피의 광란에 사로잡힌다고 합니다. 따라서 상기한 금권 내지 “과두제”, “민주제” 그리고 “참주제”는 플라톤의 견해에 의하면 모두 조화로운 도덕 국가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합니다.

 

17. “시인과 예술가는 국가의 규율을 어지럽히는 방해꾼들이다,”: 플라톤은 민주적인 정치 제제 속에서 결코 정의가 자리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Jens P: 402). 심지어는 민주주의의 형태라 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민의 사고는 현자의 그것에 비해서 천하고 저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반 대중은 플라톤에 의하면 진리보다는 개연성을, 합리적 결정보다는 감정적 결정을 추종한다는 것입니다. 국가는 인민을 더욱 훌륭하게 교육시켜야 하기 때문에, 『국가』그리고 『법Nomoi』은 교육을 위한 세부적 구상을 담고 있습니다. (Pauly 9: 1104). 마지막 열 번째 장에서 플라톤은 시인과 예술가를 비판합니다. 이들은 국가의 규율을 어지럽히는 체제 파괴적인 방해꾼들이므로 국가로부터 배제되어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플라톤: 607b – 608b). 플라톤의 이러한 주장은 나중에 시인과 예술가에 대한 탄압의 논거로 활용되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플라톤의 『국가』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예술이론가들에 의해서 비판당했습니다. 플라톤은 마지막으로 정의를 찬양하고, 죽음 이후의 영혼의 삶에 관한 신화에 관한 언급으로 자신의 대화를 끝맺습니다.

 

18. 신화를 다루는 작가는 저열하고 체제 파괴적인가?: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합니다. “예술과 포에지는 어떤 저열한 존재론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념들이 모사된 상 (구체적인 세계)에 대한 모사 상만을 표출시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예술은 플라톤에 의하면 오로지 간접적으로 아름다움의 이념에 참여할 뿐입니다. 오로지 현실의 현상을 모방하는 “미메시스Μιμησις”로서의 예술은 궁극적으로 저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플라톤의 모방은 제 3장에서는 배우들의 “대역” 내지 “흉내”의 의미로 사용되지만, 제 10장에서는 모방의 예술은 포괄적으로 실체성 내지 진실이 결여된 예술 전체를 지칭합니다. (서승원: 66).

 

예술은 열정을 표현함으로써 오로지 예술 수용자의 마음속에 어떤 열정만을 끓어오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호메로스는 현혹과 기만으로 가득 찬 신의 이야기를 남발함으로써 부정하고 탐욕적인 행동 양상을 부추긴다고 합니다. 상기한 두 가지 예술적 특성으로써 플라톤은 “작가는 인간을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기만하게 하는 자”라고 규정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예술적 입장이 문학의 기능 가운데 하나인 향유가 아니라, 문학의 도덕성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문학 작품이란 플라톤에 의하면 국가의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주게 할 때에 한해서만 존속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인은 국가에서 모조리 추방되어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19. 계층을 전제로 한 평등사상: 플라톤의 작품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등한 국가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제시했던 평등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구분되는 세 개의 계층을 전제로 한 사상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계층 내에서 평등할 수 있을 뿐, 다른 계층과는 결코 평등하지 않는, 이른바 상하 구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계급은 세습되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신분 상승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노예 제도 또한 천부적인 것이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계층 그리고 신분의 차이는 고대에서 천부적인 것으로 이해되었지만, 플라톤이 계층사회를 처음부터 용인하고 이를 구상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노동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지 아니하고, 상부지향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 사회적 생산력은 극대화될 수 없다는 게 플라톤의 생각이었습니다. 비록 플라톤은 『국가』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형제자매로 여기면서 생활할 것을 강조하지만 (플라톤: 415a),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층을 용인하는 사회는 인간의 불평등을 당연시한다는 점에서 정의로운 제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플라톤은 처음부터 계층 차이에 입각한 사고를 고수하였습니다. 마치 송충이가 솔잎을 뜯으며 살아가듯이 개개인이 각자 주어진 본분에 맞게 살아가듯이, 개개인이 “자신에게 속하는 예속물 suum cuique”로 살아가게 되면 정의로움은 저절로 실천된다고 플라톤은 확신하였습니다.

 

20. 고대에서는 계층과 신분이 천부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다른 계층 사람들 사이의 평등을 처음부터 무시하였습니다. 이는 플라톤의 계층 간의 불평등에 관한 사고에서 유래하는 게 아니라,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세계관 자체에서 비롯하는 보편적 사항이라고 말하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나아가 플라톤은 신체가 튼튼하지 못한 영아를 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견해 역시 고대인들의 국가 중심적인 보편적 사고와 관련됩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사랑과 성에 대해서 관대했습니다. 그들은 이를테면 결혼 제도를 수정하거나 파기하는 일 그리고 동성연애의 합법화 등에 대해서도 유연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계층과 신분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어떠한 사항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인들에게 신분이란 하늘로부터 점지된 확고부동한 철칙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가령 아리스토파네스는 「여성 인민 의회 Ekklēsiázusai」라는 작품에서 남녀가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설파했지만, 그 역시 유독 노예계급과 신분제도에 관해서는 용납하지 않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그리스의 유토피아에서는 결혼제도, 사유재산제도의 폐지가 노예제도와 신분제도의 폐지보다 훨씬 용이했다.”라는 멈퍼드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을 지닙니다. (Mumford: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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