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7. 제목의 의미: 사실 제목은 소설의 내용과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작가는 카이사르 롬멜리니라는 인물을 로마의 정치가, 카이사르와 연관 지으려고 했습니다. 카이사르 롬멜리니는 인민의 편에서 싸우면서도 폭동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이끌려고 하다가,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러한 행동은 카이사르를 방불케 합니다. 실제로 브루투스는 인민들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 카이사르를 살해해야 했습니다. 만약 카이사르가 생존해 있으면, 로마 사람들은 모조리 노예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물론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개인적으로 애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 브루투스는 대장군의 가슴에 단도를 찔러야 했습니다.
도널리의 작품에서 카이사르 롬멜리니는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의 의향을 저버리고, 무조건 과두정치 권력자에게 복수의 칼을 들이대었습니다. 강격책 일변도의 그의 투쟁은 무산계급의 안녕을 도모하지 못해게 했고, 그들의 목숨을 저버리게 했던 것입니다. 카이사르의 기둥이 25만 명의 시체를 바탕으로 건립된 사실은 독자에게 어떤 상징적 의미를 전해줍니다. 롬멜리니는 과두 정치의 독재자들을 무력으로 실각시키는 일이 하나의 방법론이며, 무산계급의 안녕과 평화를 도모하는 일이 하나의 목표라는 사실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8. 도널리의 시대 비판, 부자가 권력을 장악하면, 사회는 패망한다.: 도널리의 시대비판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작가가 살았던 19세기 말의 미국 사회를 예의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 버틀러의 작품 『에레혼Erewhon』(1872)은 과학 기술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데 비해, 도널리의 작품은 자연과학 그리고 기술집약적인 문명을 직접적 비판의 대상으로 겨냥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부유한 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과학 기술이 이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일반 노동자들에게 첨단 과학 기술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자가 권력마저 장악하면, 세상이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작가, 도널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부자가 권력을 장악하면, 사회적 폭동이 일어난다고 경고했습니다. 세상은 과두 정치를 행하는 부자 권력 집단 그리고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체자르 롬멜리니의 비밀결사집단으로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과두 체제의 권력자들은 모조리 야수들로 전락하고, 롬멜리니 역시 막강한 권력을 쥔 야수로 돌변하게 됩니다. 전자가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고상한 야수들이라면, 후자는 자연 상태의 야수입니다. 카이사르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 그리고 현대 문명의 몰락을 기념하기 위한 동상을 설치합니다. 동상을 설치하는 데 사용되는 기둥 아래에는 25만 명의 시신이 매몰되어 있습니다.
9. 묵시록의 전언.: 기실 19세기 말의 유럽에는 가난과 기아가 온존하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참담한 현실이 존재하는 근본적 이유를 상류층의 권력 장악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작가는 주인공 가브리엘의 입을 빌어서 신의 법정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눈이 멀고, 귀를 막고 있다. 너희는 이웃들의 고통에 냉담할 뿐이다. 가난한 자들의 피맺힌 외침은 너희들의 마음을 건드리지 못한다. 인간 영혼이 표출하는 연민의 외침, 모든 탄식, 굶주리는 남녀의 눈물, 기아 현상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빵 달라는 외침은 하늘 위로 올라가서 왕관을 쓴 지고의 존재 주위를 구름으로 맴돌고 있다. 이제 시대가 충만하게 되면, 폭풍과 번개로 지상으로 뻗어, 너희의 죄 많은 머리를 내리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피로 물들게 될 것이다.” (Donnelly: 293).
그렇다고 해서 작가는 무조건 무산계급의 편을 들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가브리엘은 대립하는 두 세력을 중재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미래를 위한 그의 긍정적 대안을 실현하기에는 그는 무력할 뿐입니다. 가브리엘은 뉴욕에 머물고 있는 낯선 이방인이므로 충분한 에너지도, 독창적 추진력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10. 인구 폭발에 대한 경고: 도널리는 19세기 말 미국의 시대적 현실을 작품 속에 반영하였습니다. 가난과 폭정은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시로 몰려들게 하였고, 이로 인하여 거대한 도시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유럽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문제는 수많은 도시의 빈민들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 못해서 가난에 허덕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몇몇 엘리트는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는 동안, 수많은 민초들은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해 나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도널리는 대도시의 인구 증가 및 인민의 기아 현상에 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습니다.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은 가난 그리고 식량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과히 놀라울 뿐입니다. “만약 세계에서 약 천만 명이 몰살당한다고 가정한다면, 인간 삶은 더 나아질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충분한 공간이 확보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은 약 몇 세기 동안 평화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Donnelly: 152).
11. 유토피아 성분 (1) 이윤 추구 비판: 마지막으로 작가가 내세우는 몇 가지 부분적인 요구 사항을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도널리는 생산수단 그리고 노동 수단에 있어서 사유재산을 용인하며, 재화의 분배에 있어서의 차등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사회적 힘은 다양하게 분산되어 있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개개인은 사회의 발전 상태에 따라 갈등 없는 쪽으로 통합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불평등을 과도기적으로 조금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입장과 그의 한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도널리는 사회적 갈등을 차단시키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이윤 내지 이자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간에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는 세상의 모든 악덕을 조장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Donnelly: 111). 도널리는 개개인의 이윤추구를 비판했을 뿐, 전체주의 국가의 이윤 추구의 워험성을 사전에 알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가 부분적으로 폐쇄적 사회주의 국가 체제에 동의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비판의 메스를 가하지는 않았습니다.
12. 유토피아 성분 (2) 최대한의 재화의 액수는 정해져야 한다: 셋째로 도널리는 한 인간이 지녀야 할 최대한의 재산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컨대 어느 누구도 법적으로 정해진 최대한의 재화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의 영역에서 거대한 무역이 사라져야 하며, 모든 사업은 개인에 의해서 적정 규모로 행해져야 한다고 도널리는 주장하였습니다. 나아가 모든 사업가는 무한정의 이윤을 획득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사업을 추진하면, 원래의 이윤 그 이상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자본가는 잉여 이윤을 노동자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복지 자금으로 쾌척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학교, 고아원, 병원, 노동자의 주거지역, 공원, 도서관, 휴양지 등이 설치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도널리가 거대한 산업 체제를 부정하고, 자생적 개인 사업만을 용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작가는 유럽 국가들이 국가 독점 자본주의라는 전체주의의 방식으로 거대하게 확장되리라는 점을 미리 예견하지는 못했습니다.
13. 유토피아 성분 (3) 소작농을 위한 세법의 개혁: 넷째로 대지주의 넓은 땅은 2년에 한 번씩 소작농에게 이양되어 그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해야 합니다. 대지주는 소작인의 이득을 턱없이 높은 가격으로 빼앗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는 이를 어길 시에 대지주의 부동산을 몰수하는 세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도널리의 이러한 제안은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피히테가 주장한 바 있는 폐쇄된 국가 체제 속에서는 실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국가의 기능이 개별적 인간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회단체의 기능으로 변화되면, 도널 리가 내세운 개혁 프로그램은 부분적으로 실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널리의 작품은 고전적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주제를 고려할 때 우리는 도널리의 작품을 역사적 진보 그리고 전체주의의 폭력 사이의 반환점에 위치한 문헌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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