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3. 말로 선장, 오지에서 커츠와 만나다. 항해의 마지막에 이르러 말로 선장은 기이한 사내, 커츠와 만나게 됩니다. 커츠는 지금까지 아프리카 대륙에서 코끼리의 상아를 구매하여, 이를 비싼 가격으로 유럽 상인에게 넘기는 중개상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미치기 전까지 부하들은 순진하고 착한 코끼리 가족을 몰살시키고, 거대한 동물의 사체에서 상아를 찢어냅니다. 상아는 유럽으로 건너가서 비싼 가격에 팔려나갑니다. 커츠는 처음에는 콘래드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범법자의 전형처럼 보입입니다. 암흑 속에서 백인과 흑인들을 고용하여, 경제적 이득을 뜯어내는 잔악한 인간이 바로 커츠였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아프리카의 원자재를 약탈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는 강도, 살인을 일삼고, 흑인 여성들을 성적 방종의 대상으로 삼아서 짜릿한 밤을 보내기도 합니다. 커츠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심지어는 동료를 배반하고, 인접 회사 사람들을 속이며 살해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14. 커츠 마지막에 이르러 죽음을 선택하다.: 커츠는 마지막에 이르러 변신합니다. 자신이 문명의 노예였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검은 대륙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아프리카 땅에 음험하고 사악한 기운을 퍼뜨려 나가는 악령 가운데 한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말로 선장은 그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병들어서 죽어가는 그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버림받은 오지에서 백인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노력하지만,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가고 맙니다. 커츠는 가상적으로 명멸하는 잿빛 하늘을 바라보면서 절망적으로 소리칩니다. “그건 끔찍한 경악, 바로 그 경악이야!”하고 외친 다음에 그는 죽음을 선택합니다. 커츠의 외침은 마치 스스로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포기하고 어둠 속의 악령 속으로 잠입하려는 단말마와 다름이 없습니다. 마지막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가장 머나먼 곳으로 항해할 때 발견하게 된 지점이었다. 동시에 체험의 정점이기도 했다. 그것은 내 주위의 모든 사물을 비추고, 내 생각 속으로 파고드는 가장 찬란한 빛이었다.”
15. 과학과 진보의 전령사, 식민주의자: 커츠는 지금까지 과학과 진보의 전령사로 생활했습니다. 그는 국제 야만 억제 협회의 부탁으로 아프리카에 거주하게 된 식민주의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커츠는 어떠한 이유에서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이룩하고자 하는 꿈을 저버리고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요? 커츠가 목격하고 체험했던 공간은 서구가 오랫동안 축조한 이념과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침투할 수 없는 암흑의 공간입니다. 커츠는 말로 선장과 마찬가지로 열대 야생의 공간에 스스로 포위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커츠는 죽기 전에 “경악이야, 경악이야!”라고 외쳤는데, 이는 놀라움과 두려움의 표현이었습니다. 말로 선장은 커츠가 게걸스럽게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죽은 모습을 바라봅니다. 커츠의 환영은 “들것, 들것을 운반하는 유령과 같은 사람들, 숲의 어두움, 꾸불꾸불 뻗어 있는 번쩍이는 강줄기, 마치 심장의 고동처럼 연이어 울려 퍼지는 북소리”와 함께 혼연일체가 되고 있었습니다. 콩고강 유역의 어떤 암흑의 심장이 죽은 커츠의 시신 그리고 울창한 숲과 강물 그리고 주위의 모든 것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요약하건대 야생은 커츠의 제국주의의 욕망을 무너뜨리고, 나아가 그를 저승의 세계로 몰아가게 한 결정적인 힘과 다를 바 없습니다.
16. 조셉 콘래드는 인간이 아니라, 열대 야생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얼핏 보면 작가는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어투를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말로 선장을 통해서 주어진 낯선 영역과 하나가 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원시림의 정글은 그 자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태초의 물질 내지는 여성의 모태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핵심부를 탐험하는 모험은 그 자체 우의적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17. 말로 선장과 커츠 사이의 작은 차이점: 커츠가 소설 속에서 열대 야생의 힘 앞에서 자신의 모든 임무를 포기하는 서구 문명인이라면, 말로 선장은 모든 것을 회의적으로 고찰하는 관찰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말로 선장은 최소한 자신의 항해를 성공리에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방불케 합니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항해할 때 돛에 묶인 채 세이렌의 달콤한 죽음의 노랫소리를 들었듯이, 말로 선장 역시 야생의 온갖 위험과 절망적 한계 상황 속에서 끝내 살아남습니다.
커츠는 말로에 비해서 서구 문명의 전파자로서 비인간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악마와 계약을 맺은 다음에 낯선 지역에서 거침없이 살다가, 결국에는 어떤 무엇과도 대적할 수 없는 열대 야생의 엄청난 세력을 인지하면서 죽어갑니다. 두 사람은 어떤 한계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극단적 인물의 전형입니다. 말로 선장이 모든 것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조심스러운 도덕주의자라면, 커츠는 거침없이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행동주의자라고나 할까요? 어쩌면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들이닥칠 파멸의 틈바구니에서 싸우는 인간들입니다. 이 와중에서 그들이 모색하는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변증법적인 해결책이지만, 그들은 이를 과감하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중앙아프리카 콩고 지역은 결코 서구의 폭력에 의해 약탈당할 수도, 패망할 수도 없는 야생의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18. 작품의 주제는 서구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제한될 수는 없다.: 어쩌면 『암흑의 심장』은 다음과 같은 가설을 독자에게 전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즉 서구 문명은 낯선 지역에 도착하여 많은 일을 수행했습니다. 가령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파했고, 흑인들의 원시적 생활을 개선해주었으며, 병을 고쳐주고 위생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문명 전파 사업은 따지고 보면 무엇보다도 재화를 창출하여 이익을 얻기 위한 목표 때문이었습니다. 식민지 개척 그리고 원자재의 착취 등을 위해서 서구인들은 야생을 장악하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열대 지역은 서구에 의해 부분적으로 파괴되고 교란당하게 되었지만, 결국에는 본연의 고유한 상태로 회귀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면 열대 우림지역은 자신을 보존하는 거대한 잠재적인 에너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암흑의 심장』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어떤 긴장 관계를 알려줍니다. 즉 서구인이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열대 지역의 어두운 심장 그리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려는 노력 사이의 숨 막히는 긴장 관계 말입니다.
참고 문헌
- 굴드, 스티븐 제이: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 지질학적 시간의 발견에서 신화와 은유, 아카넷, 2012.
- 이종찬: 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 서강대학교 출판부 2016.
- 콘래드, 조셉: 암흑의 핵심, 이상욱 역, 민음사 1998.
- 콘래드, 조셉: 어둠의 심연, 이석구 역, 을유문화사 2008.
- 천경자: 아프리카 기행 화보집, 일지사 1974
- Conrad, Joseph: Das Herz der Finsternis. Erzählung. S. Fischer, Berlin 1933.
- Conrad, Joseph: Lord Jim, Penguin Books: London 2007.
- Jens, Walter (hrsg.) Neues kritisches Literatur-lexikon 22. Bände, Müchen 2001.
- Wallace, Alfred Russel: The Malay Archipelago; The Land of the Orang-Utan and the Bird of Paradise; A Narrative of Travel With Studies of Man and Nature. Macmillan & Co, London 1869/ 200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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