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문학 이론

서로박: (5) 벤야민의 역사 철학 테제

필자 (匹子) 2024. 5. 7. 09:35

(앞에서 계속됩니다.)

 

5. “가능한 구원의 실험실”로서의 세계.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60년 초반에 벤야민의 역사적 진보에 대한 논평을 언급하면서, 블로흐가 진보적 낙관주의를 과도하게 맹신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역사에 대한 벤야민과 블로흐의 견해가 커다란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벤야민은 1940년 무렵에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진보라는 개념은 파국의 이념 속에 토대를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역사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파국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가 아니라, 그냥 우리 앞에 주어져 있을 뿐이다.” (Benjamin, GS. Bd. 1/2: 683). 아도르노는 벤야민의 발언을 염두에 두면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어떠한 우주적 역사도 야만으로부터 휴머니즘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암석의 파괴는 거대한 폭탄 투하로 전개되고 말았으니까.” (Adorno: 314).

 

여기서 블로흐의 진보적 낙관주의는 아도르노에 의하면 순진한 갈망의 견해로 곡해되고 있습니다. 왜냐면 블로흐는 미래의 삶을 염세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블로흐는 어떠한 이유에서 인류가 다시 야만으로 들어설 가능성을 발설하지 않을까요? 지나간 두 번의 세계대전은 인류의 삶이 얼마든지 야만이라는 끔찍한 형태로 변형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흔히 말하는 염세적 비관주의자들이 아닙니다. 물론 그들은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ärung』에서 간간이 재앙으로서의 끔찍한 숙명을 거론했지만, 역사적 진보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두 사람의 사고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계몽은 진실로 스스로 해명될 수 없는 무엇으로서, 그 속에는 도구적 이성에 엉켜서 도구적으로 지배당할 수 있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몽이 도구적 이성에 의해서 난관에 봉착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정을 통해서만 재앙으로 가득 찬 역사의 고리를 끊어내고, 종으로서의 파멸을 종식할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의 걸음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유럽의 역사는 다이너마이트의 암석 파괴로부터 거대한 폭탄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역사의 이러한 발전은 블로흐에 의하면 역사 속에 주어진 파국의 가능성이지, 그 자체 파국이 아닙니다, 그러한 변화 과정은 진보의 역사가 아닙니다. 휴머니즘으로 향하는 길로서 가능한 역사는 역사의 걸음걸이 속에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선하고 이성적으로 투쟁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이러한 길을 닦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인류의 노정에는 아도르노가 말한 바 있는 도구적 이성이라는 장애물이 서성거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구적 이성은 블로흐에 의하면 인간이 자연과 기술을 잘못 활용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벤야민이 말했듯이 이대로 암울하게 역사가 진행된다면, 끔찍한 파국은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과정은 어디서도 원래의 목표를 전적으로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가 그런 식으로 진척되지 않도록 인간은 역사적 동인으로 작용하면서, 변화의 물꼬를 터줄 수 있습니다. 블로흐는 역사적 목표를 인간 소외, 물화 현상의 극복으로 고찰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마르크스의 그것과 대동소이합니다. “역사적 목표는 내용상으로 확정된 게 아니라, 아직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인간적 특징, 즉 구체적 유토피아의 의향과 같다.” (Bloch, TE: 147). 인간의 특징은 블로흐에 의하면 그 내용이 아직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진보의 역사에서 드러난 부정적 특징에 관해서 분명하게 지적할 수는 있습니다. 역사에는 사악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단자에 대한 종교 재판소의 박해, 중세의 수구적 봉건주의, 낭만주의라는 정치적 보수주의 그리고 수사들이 동조한 파시즘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히틀러의 만행은 서구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퇴보를 안겨준 바 있습니다.

 

벤야민의 글과 관련하여 블로흐는 단호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진보는 천국에서 불어오는 폭풍이 아닙니다. 벤야민은 인간의 고유한 자발적인 능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용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향하는 걸음은 끈덕지고 완강한 저항을 통해서 쟁취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유토피아의 정신』에서 역사를 다음과 같이 확고하게 정의 내립니다. “역사는 여러 이질적 사항이 마구 뒤섞인, 완강한 운행의 과정이다.(Bloch, GdU 2: 301). 나아가 『혁명의 신학자, 토마스 뮌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발견됩니다. “역사는 갈기갈기 찢어진 그림의 모음집이 아니며, 진보의 확고한 서사시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강인하고 위험한 운행의 과정이다. 거기에는 괴로움, 방황, 혼란스러움과 오류, 감추어진 고향을 찾으려는 처절한 시도로 가득 차 있다. 역사 속에는 수많은 비극적 방해 공작이 있고, 무수한 사건들이 돌출하고 비약하며, 허공에는 기약 없는 전언들의 찢어진 부분들이 수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 어떤 찬란한 빛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역사 속에서 불연속적으로 이어진다.” (Bloch, TE: 14f.).

 

역사는 우리에게 진보를 보장해 주고 약속하는 어떠한 무엇도 하나의 담보물로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역사 속에는 뜻을 함께하는 수많은 동지가 집결하여서 연대하여 투쟁을 벌여 왔습니다. 역사는 라틴어권에서는 “histoire” 독일어로는 “die Geschichte”라는 여성 명사로 표현됩니다. 그렇기에 역사는 꿈꾸며 저항하는 우리를 돕는 “여성 동지”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역사적 과정에서 아직 무언가 완성된 세계를 제대로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최소한 구원 그리고 재앙이라는 양자택일의 갈림길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벤야민의 역사 철학 테제를 아무런 조건 없이 수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어진 파국은 인류 역사 전체를 전제로 하는 게 아니라, 1940년대 유럽이라는 극도의 비극과 절망으로 가득 찬 “현재 상태 Status quo” 속에서 감지한 착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계를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블로흐에 의하면 인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물음이며, 천박한 낙관론 내지는 무기력한 비관론으로 성급하게 규정될 수는 없습니다. 주어진 세계의 인식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결단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그렇기에 세계는 우리가 처해 있는 “가능한 구원의 실험 실Laboratorium possibilis salutis”일 수밖에 없습니다. (Bloch, LA: 391).

 

(6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