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a 문학 치료

서로박: (4) 문학 치료 강의 요약문

필자 (匹子) 2024. 2. 28. 14:31

 

1. 시/쓰기 문학치료의 이론

시/쓰기 치료는 부분적으로 이야기치료나 드라마 치료와 중첩될 수도 있다. 시/쓰기치료의 도입 단계는 대체로 직접적인 출발보다는 약간 우회로를 통한 방법이 좋다. 왜냐하면 그들이 치료를 받으러 여기까지 올 때 받았던 심리적 불안감을 좀 완화시켜줄 수 있고, 글쓰기에 대한 저항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1) 피드백과 셰어링

피드백은 참여자가 읽은 것을 듣고 나서 수동적 느낌을 전하는 것이고, 셰어링은 ‘네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이러한 생각이 났어’ 와 같이 자신의 기억들을 적극적으로 회상하는 경우이다. 피드백과 셰어링을 할 때에 가치판단은 하지 않고 느낌만 전해주는 것이 좋다. 어떤 참여자에게 칭찬을 해주는 것이 다른 참여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쓰기 또는 글쓰기 치료에서는 참여자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형태의 글쓰기이든 글을 쓸 때는 내면의 형상(게슈탈트)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불행을 다룬 내용은 치료 모임에서 다루지 말고, 치료사와 환자라는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따로 기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행한 일을 치료모임에서 활용함으로써 우울증에 깊이 빠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고, 제 3자가 배제되면 치료사는 일대일의 관계에서 환자의 불행을 스스로 언급하게 하여 해답에 이르게 까지 하는 과정이 수월하게 되기 때문이다.

 

(2) 시/쓰기 또는 글쓰기 치료를 위한 문학형식

그러면 문학형식을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문학의 형식은 개인의 특성과 성격에 따라 달라지고, 현재의 상황, 즉 문학치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치료 목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참여자는 끝없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 보면 아무런 목적도 내용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참여자에게는 자유연상 글쓰기나 쓴 글을 4행시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 참여자가 말이 없는 경우라면 참여자가 이야기 형식을 선택하도록 한다. 대화가 또 다른 대화를 낳는 것처럼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행동적인 문제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드라마의 형식이 유용하다. 상처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거리감을 가지고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어 봄으로써 그 상처를 잊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아예 글쓰기가 안 되는 경우, 시를 쓰기 싫어하고 논리적인 글만 좋아하여 그 글을 베껴 쓰는 사람들도 있다. 먼저, 글쓰기가 아예 안 되는 이유는 저항 때문이다. 사람마다 방어나 저항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치료사가 형식을 고르기 전에 환자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정보를 얻는 것이 최선이다. 다음으로 논리적인 글만 베껴 쓰는 경우에는 방향 바꾸기와 매체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그 예로 3년째 글을 쓰지 못하던 작가가 그림을 그리도록 하여 치유 받은 경우가 있다.

 

2. 그림과 언어의 중간단계

보통 poetry therapy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쓰기치료는 시의 발생 기원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포이에티케 (poietike)라는 말을 시작이란 뜻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만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며 정서를 동반한 포에지(poesie), 즉 시라는 말로 바뀐다. 근대 이후에는 이것이 감정이입의 상황을 표현한 시문학으로 이해된다. 시는 모든 사물에 대한 감성적 접근과 신화적〮〮·마법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드라마, 소설, 영화 같은 장르보다 정서를 표출하기 훨씬 좋은 장르다. 그러므로 치료에 더 도움이 된다. 이런 실습은 텍스트와 그림의 중간단계라고 볼 수 있으며, 침울했던 분위기가 이러한 실습을 통하여 밝게 바뀔 수 있다. 매우 능동적이고 감성적인 치료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3. 상징과 아우라의 공간

시에서의 언어 영역은‘사라진 기억’, ‘체험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을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공간에서 순간적으로 자신의 경험이 그림처럼 떠오르는 ‘아우라’를 경험할 수 있다. 여기서 아우라란 그 구절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자신의 경험이 그림처럼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의 엄마 걱정)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

 

첫 번째 기형도의 시에서 우리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를 생각할 수 있다. 아이는 시장에 열무를 팔러나간 어머니를 기다린다. 여기서 시인의 체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형도 시인은 1960년 연평도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자,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서 시장에 나가 열무를 팔았던 것 같다. 두 번째 시는 안도현의 시작품이다. 어미 꽃게의 입장을 통해서 자기의 알을 지키려는 어미 꽃게의 모성애를 담고 있다.

 

시에 감정이입을 하기까지의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여 참여자가 시의 분위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이러한 시 치료는 우울증 치유에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당신이/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라는 긍정적 한 구절이 참여자에게 아우라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우라 속에서 시인과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치료사가 있다면 시를 선택한 이유를 제시하겠지만 자가 치유라면 시를 천천히, 그리고 내면으로 읽어 보도록 한다. 시의 상황, 즉 이미지, 리듬이나 음악성에 적응해 본다. 그러면 우리는 시에 적응하게 되고 산만한 생각을 버리고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 고요한 산 속에 서 있는 나무나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것 이다. 이것은 시를 통한 치유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불안하거나 우울한 기분은 차분하게 되고, 자신을 솔직하게 만들어 그 시각적 장면을 떠올리고 그것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어떤 한마디에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고 아무런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안 자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우리가 인용한 두 편의 시는 우울함, 고통, 스트레스, 거부감처럼 부정적인 감정들을 구조화하였다. 이러한 우울한 분위기의 시를 개인이나 집단이 반복하면서 그러한 감정의 긴장들을 완화하는 것은 치료의 좋은 방법이다. 시를 낭독하며 리듬으로 느껴지는 악센트, 박자, 셈, 여림, 흐름 등은 때로는 최면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반복 효과는 프로이트의 연상 치료 수단에서도 활용된 바 있다. 프로이트는 분석치료에서 참여자가 동시대의 경험을 반복한다는 것을 예리하게 발견하였다. 참여자가 특정 리듬에 대한 상처의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우리는 시를 통해 참여자의 내면으로 들어가는데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것이 무의식으로 연결된 다리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로써 영혼이 감지되고 시적 정서가 벌컥 솟아난다.

 

4. 통찰

지금까지의 과정이 동일시의 과정이었다면, 이제 통합 단계로 넘어간다. 통합 단계에서 우리는 앞에서의 시들에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고요한 산 속’, ‘나뭇가지 하나가 흔들린다’ 이 두 명제를 두고 “왜일까요?”라는 묻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이에 대한 답은 ‘그 위에 새가 앉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나뭇가지를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가정하면 ‘내 마음이 흔들린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런데 나뭇가지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새가 나뭇가지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계속 흔들리는 것은 어떠한 까닭에서일까? 이처럼 연상적인 반복구조는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방식은 참여자의 혼돈을 정리하고, 부조화를 조화로, 무질서를 질서 있게 도와준다. 어떠한 격렬한 감정의 참여자도 이런 방식 안에선 그 감정이 누그러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참여자는 자신의 아픈 감정을 인지하게 되고, 시인과 동감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의 공감은 우리를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참여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정서적 균형감각을 찾게 된다.

 

치료사는 집단치료에서 ‘흔들린다’란 말로 시를 쓰도록 한다. ‘나는 당신을 생각하면 흔들린다’ 그러면 옆의 사람 또한 ‘나는 당신의 말을 들으면 흔들린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치료사는 ‘나는 당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당신의 마음에 집을 짓겠다.’고 한다면, 누군가 ‘집을 허물어 다시 흔들리면?’이라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럼 누군가‘다시 흔들린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어.’,‘새로 집을 지으려면 흔들어서 집을 무너뜨려야겠지?’처럼 자연스럽게 새로운 인식과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자신의 아픈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어떤 무엇을 새롭게 통찰하게 된다.

시의 분위기 자체는 우울하지만 이처럼 시를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참여자는 새로운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얻는다. 정호승의 시는 더 은유적이므로 괄호 안에 등가물 넣기 방식으로 세팅해 볼 수 있다.

 

울지마라/ ( )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 )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 )을/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 )을 걷고/ 비가 오면 ( )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 )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 )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 )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 )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 )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시 치료의 참여자는 시를 읽은 후 자신의 기억에 남는 무엇을 괄호에 채울 수 있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아무 단어나 넣도록 한다. 이를 통해 참여자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우울한지에 대한 원인을 구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괄호 속 단어들 중 외롭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이를 통해 참여자는 자신 외에도 모두가 외롭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인식하게 된다.

 

5. 반복

반복적으로 울려퍼지는 시는 큰 파문 없이 나지막한 소리로 우리의 정서를 흔들고 우리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다. 황병승의 「녹색 바다 고무공 침팬치와 놀기」 ⁴⁾라는 시가 그렇다.

 

“녹색 녹색 초록이 아니라 이 여름이 아니라 녹색 녹색 기운이 쭉 빠지도록 녹색 바다 고무공 침팬지와 놀기 바지가 축 처지도록 녹색녹색 진창을 온종일 뛰어다니기 녹색 녹색 바지 꼴이 뭐냐고 녹색 몽둥이를 든 여자는 녹색 포말을 일으키며 펄쩍 뛰겠지 아무렴 녹색 녹색을 나는 손에 넣었다 네 녹색을 보고 싶어 먹고 싶어 녹색 녹색 기분이 좋아 녹색 휘파람 불었네 하지만 여자는 녹색 때문에 실망하겠지 녹색 때문에 여자는 나를 비난하겠지 녹색 녹색 빈 항아리를 집어던지며 녹색 따귀를 갈기며 녹색 녹색 너는 녹색!이니 집 안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라 당장 빨가벗고 나가라 녹색 녹색 그녀는 그렇게 말해놓고 녹색 나를 방 안에 꼭꼭 가두어둘 테이지 밤마다 녹색 자물통을 확인하며 그녀는 녹색 녹색 소리칠 거야 너는 왜 녹색 집 밖으로 한 뼘도 뛰어오르지 못하니! 녹색 녹색 긴 팔을 하고 너는 왜 다른 색이니!” (황병승, 『여장남자 시코쿠』,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2012)

 

황병승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예술대학교 추계 에술대학교 문예 창작과 출신의 시인이다. 시는 주어진 일상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훈계하고 명령하는 사회적 강령을 패러디하고 있다. 모든 것은 아이의 시각에서 서술되고 있다. 여기서 녹색은 사회적 강령의 요구사항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이다. 시에서 리듬은 반복에서 시작되고, 반복은 경우에 따라서는 노이로제 환자의 강박적 반복 충동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렇기에 시치료의 참여자가 이 시에 공감하고 동일화하기란 매우 쉽다. 나아가 단어와 리듬의 반복은 환자의 마음속에서 고착화된 언어와 감정을 풀어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쉽게 친근해지고 문학치료를 위한 “라포 Rapport”, 즉 치료자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기가 쉽다. 라포의 형성은 모든 문학 치료의 전제조건과 같다.

 

시에 담겨 있는 반복은 바로 인간의 무의식 깊숙이 박혀 있는 원초적 상흔을 반복적으로 인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특히 신경증 환자는) 아버지의 금지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받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거의 강박적으로 무언가 반복하고 싶은 충동을 지닌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반복 된다면 지겨운 게임이 되거나 어린아이 수준의 게임으로 변질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6. 은유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 1930년 1월에 『조선지광』 89호에 발표. 1935년 10월에 간행된 『정지용시집』에 재수록 됨.)

 

시는 이미 고인이 된 “늬”를 그리워하는 시적 자아의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시적 슬픔의 감정은 유리창을 바라보는 상으로 객관화되고 있다. 은유는 그리스 말로 메타페레인 μεταΦήρειν, 즉 ‘다른 곳으로 전이하다’, ‘이리 가져오다’는 뜻이다. 이런 은유의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은유의 생산 능력이 없는 정신병자가 아니면 누구나 은유를 만들고 사용한다. 은유는 동서양 공히 중세에는 수사학의 일부분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계몽과 더불어 ‘장식적이고 근본적으로 지나친, 비실제적인, 본질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허위적인 언어 형식’이라고 비판받게 되었다.

 

그러나 은유는 우리 삶에서, 특히 정신치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은유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표현한다. ‘기다리다가 죽어 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처럼 모가지가 떨어지도록 기다린 심정을 모가지 떨어진 아미타물로 은유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헤겔에 따르면 은유는 ‘직접적으로 사물이나 의미에 속하지 않은 이미지를 생성하기 때문에 마음을 분석해야 할 문학치료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은유는 억압된 감정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게 하여 그것을 보게 한다. 말하기 곤란한 내용은 은유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달리 표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