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a 문학 치료

문학 치료 강의 요약문 2

필자 (匹子) 2024. 2. 15. 08:58

‘독서 치료’

 

독서 치료란, 우선 문학을 ‘수사학적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문학을 읽고, 쓰고, 수용하는 행위가 ‘우리 삶에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기서 다룰 ‘수용적 문학치료’ 역시 하나의 텍스트가 왜 사람들마다 각기 다르게 느끼며 해석하게 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텍스트를 읽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병든 영혼과 만나기도 하고,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즉, 문학과 예술은 개인의 기억을 떠올리고 이미지를 환기하도록 만듦으로써 자신의 잊어버린 과거와 잃어버린 추억을 다시 찾게끔 도와준다. 모든 문제는 “누군가 자신 앞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행위이다. Pro + Blamage. 독서 치료는 과거의 치유되지 않은 기억, 죄의식, 수치스러움, 이루지 못한 행복 등을 건드림으로써 시작된다.

 

-세부적인 문학치료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와 내러티브에 의한 치료의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우선 ‘상징화 과정’과 ‘탈-상징화 과정’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상징화 과정이란 주어진 문학 텍스트를 대하거나, 자신의 글 (일기, 문학 작품 등)을 대하면서 기억을 떠올리고 어떤 상징적 이미지를 찾는 과정이다. 어렴풋한 전의식, 의식의 경계, 지금-여기에서의 정서를 어떤 상징적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고 몸동작으로 표현하거나 시를 듣고 그림 그리기, 이야기를 듣고 생각나는 말 한마디 쓰기 등이 이런 과정에 속한다. 이와는 반대로 탈-상징화 과정이란 어떤 이미지에서 상기되는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상징화된 어떠한 것에 얽힌 기억과 이미지를 풀어서 구체적으로 그리고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상징화된 그림이나 한 마디의 말, 몸의 표현 등에 얽힌 기억과 이미지를 풀어서 묘사한다.

 

상징에 얽힌 자신의 못 다한 이야기 (이를테면 상처, 외상, 갈등, 결핍, 장애 등)를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상처를 인식한다고 해서 당사자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처는 말과 글의 표현을 통해 비로소 분명하게 드러나고 의식될 수 있다. 따라서 스스로 읽고, 쓰고, 듣고, 말한 문학은 삶을 치료할 수 있는 힘을 지니는 것이다. 인간은 표현된 문장을 통해서 자신의 내적인 고통과 상처를 분명하게 인지하게 되고, 깊고 넓은 독서를 통해서 더 완전하게 자신과 세계를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 시와 수용적 문학치료

다음은 내가 직접 읽고 나의 상황을 대입하여 느끼며 위로를 받았던 사례를 시와 함께 소개하겠다.

 

꽃이 진다고 아예 다 지나

꽃이 진다고 전화도 없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이가

꽃이 진다고 저만 외롭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정호승 「꽃 지는 저녁」

 

여기에서 ‘꽃’은 나 자신일 수도 있고, 나에게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타인일 수도 있다. 지고 있는 꽃은 아마 더 이상 사람들의 눈에 띄지도 않고,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관심을 받아 본 꽃은 점점 초라해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를 의식하면 마음속에서 더욱 외롭고 슬픈 감정이 솟아오른다. 이러한 외로움 그리고 비애의 감정은 때로는 자신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아껴준 대상에게서 더 이상 그때만큼의 애정이 느껴지지 않을 경우 출현할 수 있다. 이 경우 그러한 감정은 당사자에 대한 원망으로 향하기도 한다.

 

우리는 또 다른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지는 꽃’이 ‘타인’이 되었을 때, 타인이 느끼는 그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은 옆에 있는 나를 보고도 홀로 철저히 외로워하며 끝내 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결국 나는 타인이 두는 거리감에 절망감에 빠진다. 나는 여기서 꽃이 지는 것을 ‘초라함의 감정’에, 그리고 그 대상을 ‘나’ 또는 ‘타인’으로 설정하여 부분적으로 읽어보겠다.

 

- 나를 이입했을 때,

1. 나는 절망적으로 초라해져가는 중에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 너는 이러한 내 마음을 잘 알면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내가 초라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외로워하고 있는가?

- 혹은 내게 의미 있는 누군가를 꽃이라 생각하고 이입한다면,

2. 네가 초라해져가고 있어도 나는 너를 결코 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는 나에게 몹시 귀중한 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극도의 절망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너 자신의 참혹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너 혼자만 외롭다고 믿고 있는가? 나는 네가 초라해질 때도 너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밖에 우리는 대상을 이입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 지는 저녁’이란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시를 읽을 수도 있다. 이 경우 그 시간만이 주는 특유의 쓸쓸함이나 그리움을 상기시키는 정서와 함께 누군가를 향한 순애보적인 마음을 함께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은 류시화 시인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그런 길은 없다”이다.

 

아무리 (어둔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나의 (어두운 시기가)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이런 식으로 우리는 시를 통해 그와 유사하게 자신이 겪었던 일이나 감정을 환기하게 되고 그것에 감동하고 공감하다보면 자신의 상처나 아픈 기억들을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게 된다.) 명시적으로 밝혀낼 수 있게 된다.

 

2. 내러티브와 수용적 문학치료

수용적 문학치료는 적극적 지각이라는 전 단계를 거쳐 수용적 지각의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적극적 지각이란 제시된 것을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에는 시적 상징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산문작품을 통해 어떻게 적극적 지각을 거쳐 수용적 지각을 할 수 있게 되는지 살펴보자.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인용 내용>

‘전봇대처럼 서 있는 것’은 ‘창처럼 꽂혀 있는 것’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마리오는 얼마나 네루다를 좋아했으면 그의 메타포를 다 외우고 있었을까?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집중에서 해방되어 무언가 자유롭게 연상해 나갈 수 있다. 즉, 우리는 외적인 눈과 내적인 눈이라는 감각을 가지고 과거의 기억을 도출해내어서 텍스트보다 더 많은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저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저자는 마리오가 곧 헤어질 네루다에게 편지를 전달한 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잔칫집을 떠올린다. 그는 잔칫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수줍어서 음식을 달라는 말도 못하면서 마치 마리오처럼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었던 것이다. 잔칫집의 잡채를 너무나 먹고 싶었지만, 누군가 자신을 불러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 느낌의 반향,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세계로 향하게 함으로써 과거의 슬픈 상처를 일깨우고 과거의 삶 속에 도사리고 있던 엉클린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게 된다.

 

시와 내러티브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문학은 감동과 미학이라는 무기로 이런 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문학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감을 넘나드는 장르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거나 직접 창작하면서 과거의 상처를 간파하게 되고, 미래의 찬란한 기대감 내지 끔찍한 재앙을 느끼고 전할 수 있다. 지식을 위한 독서로서가 아닌 수용적인 방법으로 읽었을 때 우리는 이를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다. 여기서 수용적 방법이란 적극적으로 파악한 것들이 내게 의미를 던지는 과정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적극적 지각으로 느낀 감각들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기억의 세계를 재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때는 심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이제 우리는 과거의 갈등과 화해할 수 있다. 이러한 해결을 통하여 우리는 이전의 삶의 해결되지 않은 심리적 갈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