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바흐오펜의 '모권'

필자 (匹子) 2023. 12. 26. 11:53

요한 야콥 바흐오펜 (1815 - 1887)의 "모권 Das Materiarchat"은 철학 내지 종교사를 다룬 작품으로서 1861년에 발표되었다. 바흐오펜은 고대 그리스 이전의 선사 시대 및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로마 역사 연구가 테오도르 몸젠 (Th. Mommsen)의 이른바 직관적인 것을 중시하는 문헌학 역사 연구 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다. 몸젠에 의하면 서양 역사는 가부장적 수직 구조의 연속선상에서 파악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바흐오펜은 이러한 견해를 반박하고, 가부장주의의 사회 구조 이전에 이미 모권 사회가 존재했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로써 나중에 이어지는 역사적 발전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부권주의의 구도로부터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바흐오펜은 이러한 견해에 바탕을 두어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즉 “모권은 결코 어떤 특정한 종족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모권 세계의 구조적 요소로서 그는 낮보다 밤을 중시하는 원칙을 지적하고 있다. 가령 “달은 해보다 중요하고, 결실을 맺게 하는 대양보다도 대지를 중시하며, 자연적 삶의 어두운 죽음의 세계를 변화를 촉진하는 밝은 세계보다 우위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지구 중심적인 종교가 행해지는데, 이는 모든 삶에 모권적 법칙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남성적 원칙은 추상적, 합리적, 정신적 특성을 지니는데, 모권 법칙 아래에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문제는 바흐오펜이 모든 것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모권의 원칙이 부권적 원칙으로 이행된 과정은 오로지 신화를 통해 설명되고 있을 뿐이다. 예컨대 아이스킬로스는 「복수의 여신 Eumeniden」에서 아폴론은 여신들을 물리치는 사건을 자세히 묘사한다. “디오니소스가 부권주의를 오로지 모권주의를 위해 파기시켰다면, 아폴로는 여성과의 모든 힘의 결합을 차단시켜버렸다.” 결국 부권주의는 바흐오펜에 의하면 나중에 로마인들에 의해서 국가적 이념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한다.

여성으로 소재하는 특성은 결국 남성적 정신적 요소로 전환되는데, 이는 개개인에게 그리고 모든 구체적인 성적 요소에서 그대로 진척되었다.

 

결혼은 가부장적인 질서 속에서 관습화된 것인데, 원래는 모권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종교적 계명에 위배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데메터 여신에 대해 죄를 저지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일부일처제 결혼식은 신에게 사죄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한 남자에게 종속되는 것은 데메터 여신의 뜻을 거슬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여자는 어느 개별적 남성의 품속에서 시들어버릴 게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매력을 자연스럽게 가꾸”며, 나아가 여러 명의 남편들에게 사랑의 즐거움을 베풀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모권 세계의 생활 방식은 바흐오펜에 의하면 오늘날 창녀들에 의해서 남아 있는데, 오래 전에 이미 더 이상 고수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보이믈러 (Baeumler)는 바흐오펜의 사고 속에 담긴 낭만주의의 신화학적 요소를 지적한 바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타당하다. 왜냐하면 낭만주의 철학자 셸링 Schelling의 밤의 철학은 모권 세계에 대한 동경을 그대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간과할 수 없다. 즉 바흐오펜은 누구보다도 먼저 신화학, 인류학 그리고 종교학에서 요구되던 고대 사회의 모권의 특성을 거론했다는 사항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오폴트 치글러 (L. Ziegler)는 “신화란 상징의 해석이다”라는 바흐오펜의 문장을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미래 철학의 중요한 모토로 설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