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당에서 활동한 유명한 정치가, 아우구스트 베벨 (1840 - 1913)의 문화 비평적 연구서인 "여성과 사회주의"는 1879년 라이프치히에서 불법으로 간행하였다. 그런데 책에는 간행 장소로서 “취리히”라고 씌어져 있다. 이른바 1878년에 공표된 “사회주의자 법”에 의하면 사회주의 노동자가 독일 내에서 어떠한 책도 출판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벨의 책은 역사학 그리고 사회학의 연구서로 간행된 게 아니다. 그것은 나아가 정치적 투쟁을 위한 서적으로 집필된 것이다. 베벨은 처음에는 단순 노동자로 출발하여, 나중에는 놀라운 사민당 지도자로 일하다가 제국 의회 국회의원으로 경력을 쌓은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학문적 연구 방법과 실천적 의지를 가미시켜서, 가장 첨예한 여성 문제를 파헤쳤던 것이다. 베벨의 책은 예상과는 달리 마르크스주의 서적 가운데 가장 환영받는 책으로 이해되어, 1895년까지 무려 60판이나 계속 간행되었고, 13개의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베벨은 “사회 체제란 결코 절대적이고 변화불측한 게 아니라, 사회적 조건하에서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라는 마르크주의적 입장에서 출발한다. 여성과 사회주의는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1장에서 그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역사적으로 설명한다. 말하자면 전역사적인 원시시대부터 근대의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는 다른 사회 체제에서 여성이 과연 어떻게 대우받았는가? 하는 물음이 중요하다. 초기 역사의 경우 베벨은 바흐오펜 (Bachofen), 모간 (Morgan), 쿠노 (Cunow), 엘리스 (Ellis) 등의 연구 결과를 도입하였으며, 후기 역사에서는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모든 사항을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다.
제 2장은 현대 여성의 지위, 19세기 말의 결혼 제도, 결혼의 사회적 기능 그리고 매춘 등에 관해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베벨의 책에 의하면 결국 자본주의 사회 질서를 파기하는 과업이 필연적이다. 여성은 수천 년 동안 성적 관계, 결혼과 도덕의 영역, 직업과 권리 등에 있어서 억압당해 왔다. 베벨은 여성이 처음부터 선천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견해를 신랄하게 반박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에게 예속되고 있는 사회적 기능을 밝히기 위해서, 작가는 매춘이라든가 도덕적 선입견 그리고 종교적 선입견을 거론하고 있다. 여성은 자본주의 경제 구도 하에서 여전히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비참상은 베벨에 의하면 결국 자본주의를 스스로 파괴시키게 만들 것이라고 한다. 제 3장은 계급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자본주의 공업의 집중화 과정, 농업 혁명 등을 상세히 거론하고 있다.
결국 여성과 노동자는 미래에 반드시 모든 질곡을 벗어던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베벨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여성 해방의 문제를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운명과 결합시키고 있다. 노동자 문제 그리고 여성 문제는 베벨에 의하면 이성적이고 조직적인 사회주의 사회가 건립된 이후에는 반드시 해결될 것이라고 한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베벨은 책의 사분의 일 이상을 이러한 사회주의 운동의 실천 (예컨대 계급적 대립의 철폐, 이익의 균등 작업, 노동의 이성적 조직화, 이로써 조건화되는 생산성과 소비성의 증가)에 할애하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이 제대로 실천되면, 결국 기존하는 국가 체계가 사멸되고, 종교가 사라지며, 물질적 근심이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기존하는 체제를 극복되고 변화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변화의 길을 모색하는 한, 베벨은 이에 동의하면서, 진보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렇지만 작가는 제 4장에서 어떤 조화로운 궁극적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 순수한 낙관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마지막 평등 사회는 무엇보다도 투쟁 및 투쟁하는 발전의 흔적을 통해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기본적 강령과 이상적 기대감을 일치시키고 있다. 이로써 나타나는 것은 사회주의의 폐쇄적인 세계관이다. 특히 노동자와 여성의 지위는 1917년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의 조직적 운동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베벨의 책은 무엇보다도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읽혀지고 있다. 몇몇 사회학자는 여성과 사회주의를 비학문적인 책으로 매도하곤 하였다. 그렇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약자가 걸어야 하는 평등의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정치성을 띌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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