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1915 - 1980)의 "문학의 영점에서 (Le Degré zéro de l’éc- riture)"는 1953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바르트의 초기 문학 이론서로서는 처음부터 여러 가지 중요한 테마를 내세우고 있다. 바르트는 이데올로기 비판의 분석으로써 맑스주의, 실존주의 그리고 구조주의 등을 다루며, “내용 저편에 도사린” 텍스트의 형식적 구조를 찾아내려고 한다. 바르트의 연구 대상은 동시대 아방가르트 예술이다. 이로써 바르트는 “서술 방식 (écriture)”이라는 핵심적 개념 하에서 불문학의 역사를 고찰한다. 서술 방식의 개념은 모더니즘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 어떤 현상을 지칭하는데, 전통적 문학 이론상의 카테고리는 이러한 현상을 파악할 수 없다. 모든 문학 작품의 형태 속에는 어떤 다음과 같은 자기 성찰적 동기가 존재한다. 이 동기는 언어 내지 문체와 동일한 게 아니라, “가치로서의 형태” 그 자체이다. 이러한 두 번째의 의미 형태는 문학 작품이 문학 제도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서술 방식”은 프랑스 고전주의에서 형성된다. 프랑스 고전주의가 전개되는 동안 서술 방식은 어떤 제식적 제도로 지양된 시민 문학의 제식화된 부호로 고착되었다고 한다. 바르트는 고전적 서술 방식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규정한다. 고전적 서술 방식은 적어도 (권력을 획득한) 부르주아의 가치를 우주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한 하나의 신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변형은 문화의 보편적 자연성에 입각한 것인데, 고전 문학의 자기 이해와 일치한다. 실제로 고전 문학은 관심 있는 가치와 규범의 특수한 표현 형태 내지 전달자로서 이해되지 않고, 순수한 “투영 (Transparenz)”으로서 오인되고 있지 않는가? 이에 비하면 서술 양식은 장편 소설의 언어, 과거의 서술을 3인칭으로써 제식화된 “부호” 들을 사용한다. 이러한 부호들을 통해 장편 소설의 “(구체적) 사실”은 실현되고, 동시에 무언가 암시를 던진다.
그럼에도 (바르트가 생각한) 고전적 서술 양식의 폐쇄성은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시각적으로 변하는 허구”로서의 서술 양식은 어떤 동질적 사회의 사용 가치일 뿐 아니라, 어떤 인간적 세계 질서의 “예찬”이기도 하다. 서술 양식은 1848년 이후의 계급투쟁으로써 시민적 이데올로기의 우주적 상과 함께 파괴된다. 현대 작가는 -플로베르 이후로 문학을 “생산 행위”로서 고찰하는데- “문학” 없는 어느 “작가”의 역설을 구현하고 있다. 서술 양식은 어떤 정치적 입장의 공간으로 원용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자신의 형태로써 참여하기 시작한다. 왜냐면 그는 언어적 표현 형태들의 많은 윤리적 입장 가운데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여기서 특히 사르트르의 영향을 다루면서, 정치적 서술 양식을 언어의 반동적 경직성으로서 거부하고 있다.
또한 모더니즘으로서의 서술 양식은 바르트에게는 사회적 참여의 공간으로서 극복될 수 없는 장애물인데, 작가를 사회적 현실로부터 분리시킨다. 왜냐면 문학적 소비의 주어진 양태에 작가가 내던져 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문학은 항상 (계급의 구분이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는) 제도화된 문학적 언어를 파괴시키려 한다. 그것은 (말라르메가 그러했듯이) 제도화된 문학적인 언어를 “살해”한 이후 -까뮈, 블랑쇼, 로브그리예, 퀘네 등의 문학에서- 마지막으로 어떤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니라 서술 양식 자체의 어떤 극복, 문학의 영점 등에 관한 노력이다.
이렇듯 작가들은 (전통과 무관한) 언어적 직접성을 추적하였지만, 이것은 지속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무엇이다. 언어적 직접성은 다만 부정의 언제나 새로운 움직임으로서만이 가능하다. 그것은 형식적 신화를 파괴하면서, 경직된 전통을 거부해 나간다. 한마디로 현대 문학은 사회적 현실로부터 소외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언어의 유토피아를 드러낸다. 언어 없이는 어떠한 사고도 표출될 수 없지 않는가? 바르트의 초기 논문은 비유적 언어로써 문학적 생산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본서는 나중에 나타난 바르트의 핵심적 테마를 선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구조주의적 그리고 후기 구조주의적 입장을 모조리 포괄하는, 이른바 바르트 특유의 응집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25 문학 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박: 바타이유의 '문학과 죄악' (0) | 2023.12.11 |
---|---|
서로박: 프로이트의 '시인과 상상행위' (0) | 2023.12.07 |
서로박: 롱기노스의 장엄함에 관하여 (0) | 2023.12.01 |
서로박: 베네데토 크로체의 미학 (0) | 2023.11.29 |
서로박: 디오니시오스의 모방에 관하여 (0) | 2023.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