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문학 이론

서로박: 베네데토 크로체의 미학

필자 (匹子) 2023. 11. 29. 11:24

베네디토 크로체 (Benedetto Croce, 1866 - 1952)의 "표출과 보편 언어학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미학 (Estetica come scienza dell’espressione e linguistica generale)"1902년 이태리의 바리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본서는 예술 철학에 관한, 크로체의 포괄적이고도 방대한 작업이며, 어떤 정신의 철학에 관한 시스템 구상의 일환으로 발표된 주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크로체의 "미학"19세기 말까지 진척된 문예 미학적 성과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을 정도로 전통적 학문에 충실하고 있다. 가령 그의 입장은 이상주의, 낭만주의의 미학 그리고 다음과 같은 전통적 학술 서적들에 실린 입장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즉 잠바티스타 비코 (G. Vico, 1668 - 1744)의 이태리 언어 예술 이론, "국가의 공동적 본성에 관한 새로운 학문의 원칙들" 그리고 프란체스코 드 상티스 (Fr. de Sanctis, 1817 - 1883)의 "이태리 문학사" 등이 바로 그 학술 서적들이다. 바로 그러한 까닭에 혹자는 크로체의 이론이 독창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절충주의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크로체에 의하면 예술은 어떤 특수한 인식 작업으로 인한 성과라고 한다. 크로체는 임마누엘 칸트의 관조 (Anschauung)”의 개념을 추적해 나간다. 이로써 그는 직관 (Intuition)”의 개념을 도출해내어,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미적 인지 행위는 크로체에 의하면 직관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어떤 구상적이고 개인화되는 형태에 관한 인지의 내용은 바로 직관속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는 어떤 가능한 지각 (知覚) 뿐 아니라, 어떤 실질적인 지각에 의해서 증명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의 이러한 변형 내지는 전달 유형의 특성 때문에 직관 역시 언제나 표출과 다름이 없다.

 

 

직관 내지 표출은 지적 인식에 비해 독립적이고 자생적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적 인식이 지향하는) 실제의 합목적적 행위의 모든 형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컨대 예술은 기본적 직관 내지 표출과는 약간 다르다. 가령 우리는 어떤 하늘 색깔을 직접적으로 관조함으로써 하늘에 대한 아름다움을 인지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 예술적 소재는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에 대한 기본적 직관 내지 표출은 예술적으로 여과되어야 한다. 기본적 직관 내지 표출이 예술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예술가가 몇몇 복잡하고도 어려운 표현들을 특수하게 예술적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상기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즉 지적 인식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본적 직관 내지 표출과는 철저히 구분된다. 그렇지만 기본적 직관 내지 표출 자체가 미학의 토대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본적 직관 내지 표출과 어긋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본적 직관 내지 표출 그리고 예술 사이의 정확한 구분 내지 제한은 -크로체에 의하면- 불가능하다.

 

"미학"에서 발전된 예술의 개념은 크로체에게는 문학 비평의 토대이다. 이는 작품의 조직적 일원성에 방향 설정되어 있는데, 크로체는 미적 수용을 독자와 작품 사이의 어떤 직접적인 이전으로 파악한다. 크로체는 완전히 작품 내재적 분석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 비평가는 소재, 출전, 동기 등을 규명해야 할 뿐 아니라, 미학의 외부적 요소와 장르의 역사 등을 아울러 차근차근히 체계화해야 한다고 한다.

 

크로체는 "표출과 보편 언어학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미학"의 기본적 입장들을 확정시키고 있으나, 이후의 작업에서 이를 약간 수정하였다. 특히 그의 후기 작품 "문학 작품 (La Poesia)" (1936)에서 크로체는 순수 미학적 표현으로서의 문학 작품그리고 미적인 (혹은) 미적이 아닌 표현 형태로서의 문학을 구분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크로체의 "미학"이 끼친 영향은 20세기 초반부에 정점에 달했다. 이 시기에는 특히 이태리에서 문학 이론적 논의가 활성화되었던 것이다. 크로체의 미학은 독일어권에서 보슬러 (K. Voßler)에 의해, 영어권에서는 콜링우드 (R. G. Collingwood)에 의해 강화되었으며, 특히 미국의 뉴 크리티시즘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