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문학 이론

서로박: 롱기노스의 장엄함에 관하여

필자 (匹子) 2023. 12. 1. 11:06

 

사칭 롱기노스 (Ps. Longinos, ? - ?)의 "장엄함에 관하여 (Peri hypsous)"는 기원후 40년 경에 씌어졌으며, 1554년 스위스 바젤에서 처음 간행되었다본 문헌은 호라티우스의 󰡔시 예술에 관하여 (De arte poetica)󰡕와 함께 고대 로마의 문학 이론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비록 가명이지만) 당시의 시학 및 수사학적 성찰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장엄함에 관하여󰡕는 수사학의 여러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수사학적 경향을 띄고 있다. 여기에는 수사학의 기능을 새롭게 규정해 보려는 롱기노스의 의도가 담겨 있다.

 

가령 롱기노스는 문학과 예술의 어떤 설득과 같은 기능에 이의를 제기한다. 예술가는 롱기노스에 의하면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예술 수용자를 정서적으로 감동시키는 주체이어야 한다. 이러한 견해속에는 당시에 통용되던 문학 예술에 관한 입장을 수정하려는 롱기노스의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당시에 통용되던 문학관에 의하면 훌륭한 문학은 유용성 (prodesse), 개연성 그리고 애호성 등에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작가는 이미 잘 알려진 친숙한 소재를 친근감 넘치게 독자에게 알림으로써, 그속에 담긴 계몽적 내용을 은근히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롱기노스는 이에 반해 문학은 비일상적인 것, 놀라움을 불러 일으키는 무엇, 한마디로 말해 장엄한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어떤 전제 조건이 선결되어야 한다. 즉 예술가는 ϕίσις (본성, 재능)Τεχνη (숙련된 기술)와 조화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표방함으로써 롱기노스는 어떤 순전히 비합리적인 예술관으로부터 거리감을 취한다. 장엄함은 롱기노스에 의하면 [문체 내지는 양식과 같은] 결코 단순하고도 피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시적 몽환적 언어 예술의 (독자를 압도하게 만드는) 최고조의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장엄함은 위대한 영혼의 메아리로서. 롱기노스가 말하는 장엄함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는 표현이다.

 

어떤 시적인 표현이 공허한 격정속에 나락되지 않으려면, 예술가는 창작속에서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하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ϕίσις (본성, 재능)가 중요하다. 작가는 신에 대한 경건한 감정과 접목되어 있는 장엄함을 자신의 작품속에 극대화시켜야 한다. 자신의 고유한 본성 내지 재능 없이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숭고함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장엄함은 롱기노스에 의하면 한마디로 신에 대한 열광의 경험 내지는 신들의 고결한 (혹은 고결한 것 같은) 세상 등과 결부되어야 한다. 그러면 위대한 예술은 갈구하는 신에 관한 도취적인 (엑스타시의) 경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위대한 예술은 롱기노스에 의하면 본질적으로 어떤 순화 (純化)의 기능을 지닐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메시스(사칭 롱기노스에 의하면) 다음의 사실을 의미한다. 즉 예술가가 자신의 고유한 본성에서 출발하여 호머와 같은 선구자를 답습하려고 애쓰는 일 말이다. 따라서 미메시스는 신적인 장엄함과는 무관한 인간의 제한된 노력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결코 장엄함에 비길 바 못된다고 한다.

 

롱기노스는 테오도르 학파 그리고 디오니시우스와 같은 의고전주의적 입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긴 하나,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고전주의자들은 롱기노스에 의하면 기교주의에 침잠해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숭고함 내지 장엄함은 매너리즘적 허장 성세 내지는 얄팍한 격정과는 구분될 수 밖에 없다. 위대하고도 숭고한 언어는 예술가가 지닌 내면적 본성의 표현이며, 결코 작위적이거나 기교적인 술수로 탄생될 수는 없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본성과 재능의 개념으로써 획득되는 옳고 적절한 표현 그 자체이다.

 

롱기노스의 입장은 나중에 니콜라스 브왈로-드스프로 (N. Boileau-Despreaux)에 의해 긍정적 평가를 획득하였다. 이로써 󰡔장엄함에 관하여󰡕17세기 프랑스에서 서서히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칸트 역시 자신의 예술적 저서 󰡔판단력 비판 (Kritik der Urteilskraft)󰡕에서 장엄함의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오늘날에도 포스트 모더니즘의 선두 주자인 장 프랑스와 리요따르 같은 학자는 롱기노스의 입장을 새롭게 거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