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폴 드 만의 "미학의 이데올로기"

필자 (匹子) 2023. 11. 22. 11:11

폴 드 만 (Paul de Man, 1919 - 1983)의 "미학의 이데올로기. 철학적 텍스트에 관한 엣세이와 논문 (Aesthetic ideology. Essays and papers on philosophical texts)"80년대 중엽에 유고집으로 간행되었다. 본서는 "독서의 알레고리 (Allegories of Reading)"의 출간 후에 마지막으로 시도한 작품이다.

 

하이데거는 횔덜린의 작품이 하나의 (철학적으로 왜곡된) 구원적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드 만은 이를 뒤집어 다음의 사항을 추론해낸다. 즉 낭만주의의 자기 성찰의 배후에는 수사학적인 자기 파괴의 동기가 내재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동기는 문학 텍스트 및 철학 텍스트를 동일하게 해체시킬 수 있는 무엇이다.

 

드 만은 1971년 데리다 이론에 대한 비판 작업으로 집필된 문헌, 몽매 (蒙昧)의 수사학 (The Rhetoric of blindness)에서 루소에 접목시킨 데리다의 해체 작업이 궁극적으로 동일한 텍스트의 자기 해체의 동기라는 점을 증명해낸다. 그는 본서의 첫 번째 장 은유의 인식론 (The Epistemology of Metaphor)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데리다의 자기 해체의 동기가 로크 (Locke), 콩디야크 (Condillac), 칸트 (Kant) 등의 메타퍼에 대한 거부감과 궁극적으로는 동일하다고 한다. 이론의 실제는 폴 드 만에 의하면 수사학적 근원에 대한 이론을 부정하게 만든다.

 

 

이와 관련하여 몇몇 사람들은 메를로 뽕티의 과잉 성찰의 이념이 철학적 해체의 실질적 근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니까 인간의 오관으로 인지될 수 없는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려면 정상을 뛰어넘는 비범한 인식론적 촉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폴 드 만이 메타퍼의 합리적 기준점 및 이와 관련되는 제한 사항을 추호도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드 만의 시도는 의도적으로 철학적 구분을 회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론의 실제 작업은 수사학적으로 영구한 해체 과정속의 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드 만이 이론에 대한 저항으로서 내세우는 것은 철학에 대한 탈 구분의 자세이다.

 

드 만에 의하면 문헌들은 [메타퍼의 사용으로 인해 영구한 장소 옮김 (displacement)”을 시도하고 있으므로] 수사학적 종속 구조로 축소화되어 있다고 한다. (인식과 언어에 대한 파스칼의 급진적 회의,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아이러니 등의 개념 역시 상기한 내용과 관련된다.) 따라서 폴 드 만은 수사학적 기능들의 어떤 부정적 은유 이론을 발전시킨다. (드 만에 의하면 텍스트내의 메타퍼들은 의미론적으로 그리고 구문론적으로 끝없이 변형되고 있으므로, 어떤 일관된 토대 내지는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수사학적 기능은 해체의 첫 번째 단계에서 알레고리의 비판적 개념과 일치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해체의 두 번째 단계에서) 󰡔미학의 이데올로기󰡕는 텍스트 구성의 수사학적 수단을 찾아 나선다. 이러한 수단 속에는 과잉 성찰이라는 자연 그대로의 효과들이 실제로 자리하고 있다. 이를테면 후기 낭만주의 작가들에서 드러난 환청 (Halluzination)”의 문학적 표현을 들 수 있는데, 자연이 신기하게 의인화되고, “주요 줄거리 (masterplot)”는 한결같이 자전적 면모를 띄고 있다. 따라서 폴 드 만의 본서는 낭만주의의 수사학에서 제기된 문제를 집중적으로 규명한다. 가령 셸리의 상 해체되다 (Shelly disfigured)같은 유명한 논문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말해 드 만은 메타퍼의 연결을 규정짓는 어떠한 기준도 인정하지 않는다. 독서 시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글의 흔적 밖에 없으며, 텍스트가 일컫는 내용에 대한 암시에 불과하다. 따라서 드 만의 이론은 메타퍼의 탈 이론에서 획득되는 반구성의 시학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폴 드 만의 󰡔미학의 이데올로기󰡕는 최근에 데리다와 롤랑 바르트 등에 의해서 새로운 텍스트 개념으로 비판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