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2) 존재와 존재자, 혹은 수운과 화이트헤드

필자 (匹子) 2023. 10. 14. 10:51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신 그리고 자연 (Spinoza), 존재자 그리고 존재 자체 (Heidegger), 신 그리고 창조성 (Whitehead), 존재 그리고 초월의 존재 (Tillich)는 서로 포함(包含)하는 관계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들은 단순히 이원론의 관계로 고착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서로 이질적인 내용을 지닌 채 양단적(両断的)으로 배척하는 게 아니라, 상호 조화롭게 영향을 끼쳐서 제각기 변해나가는 양단적(両端的)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양단(両端), 다시 말해서 서로 이어질 수 있는 두 개의 끝을 가리킵니다.

 

7. 이러한 방식으로 서로를 포함(包含)하며 양단적(両端的)으로 작용하는 상제로서의 신과 지기로서의 기운은 서로 통합하고 조우하며 아우르는 무엇입니다. 이를 정확하게 이해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수운 최제우였습니다. 말하자면 수운은 서양의 신관과 동양의 신관을 서로 아우르게 하여 세계에서 가장 유연하면서도 가장 단단한 “범-재신론 panentheism”을 21자의 주문으로 완성했습니다. 범-재신론은 과정 신학의 입장으로서, 초월적 신관의 “유신론Theism”과 “범신론”을 결합한 것입니다. 신의 존재는 가장 강력한 인격 신이면서도 동시에 자연 속의 모든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김경재는 동학의 신관을 범-재신론이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

 

8.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至気今至 願為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万事知)의 의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사상적 종교적 갈망을 담고 있습니다. “우주에 가득 찬 하늘님의 지극한 기운이 내리기를 청하여 빕니다. 하늘님을 모셨으니, 내 마음 정해지고 언제나 잊지 않으니, 만사가 형통하네.” (정지창: 동학과 개벽 운동) 김용옥은 이와는 약간 다르게 해석합니다. “지극한 하느님의 기운이 지금 나에게 이르렀나이다. 원컨대 그 기운이 크게 내려 나의 기운이 하느님의 기운이 되게 하소서. 하느님을 내 안에 모시었으니, 나의 삶과 이 세계의 조화가 스스로 바른 자리를 갖게 하소서. 일평생 잊지 않겠나이다. 하느님의 지혜에 따라 만사를 깨닫게 하소서.” (김용옥의 동경대전) 왜냐면 동학의 주문은 화이트헤드의 신과 창조성에 관한 유연한 이론과 마찬가지로 동서양의 신관을 절충시키고 통합시킨 전언이기 때문입니다. 『동경대전』 「논학문」 13장에는 천주의 내유신령(内有神霊)과 외유기화(外有気化)이 동시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내유신령”이 상제로서의 인격 신이 위에서 아래로 영향을 끼친다면, “외유기화”는 자기를 받아들인 영혼이 아래에서 위로 향해 영향을 끼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415).

 

9. 놀라운 것은 김상일의 주장이 동학 측의 이세권의 주장과 천도교 측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언급하면서 각자의 장단점에 가교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서 김상일은 화이트헤드Whitehead에 대한 로버트 C. 네빌Robert C. Neville의 비판이 그 의향에 있어서 손병희를 비난하는 이세권의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고 지적합니다. 구체적으로 부언하건대 이세권 그리고 네빌은 각자의 종교적 논리를 통해서 무엇보다도 내유신령 내지는 인격 신의 면모를 강조하는 반면, 화이트헤드와 손병희는 믿음에 있어서 외유기화 내지 창조성을 부각시키는 셈입니다.

 

10. 물론 동학 사상의 논의 과정에서 식민지 사관 내지는 파시즘 등과 관련되는 정치적 입장이 개입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화이트헤드와 손병희의 신학적 입장이 “지금 여기”의 현실에 더욱더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자체적으로 단면적 일시적 측면을 지닐 수도 있습니다. 수운은 동양에서의 종교적 경향이 인격 신, 소유권, 존재자의 측면을 좌시해왔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측면 강화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면, 화이트헤드는 이와는 역으로 서양에서 인격 신, 소유권 그리고 존재자의 측면이 너무 강력하게 인정받았으므로, 신서학에 이르러 지기, 자체권 무(無), 도(道), 기(気)로 표현되는 창조성의 원리를 보다 중시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들의 이론적 의향은 서로 어긋나 있지만, 논의의 본질을 직시하려는 목표의 관점에서는 거의 같습니다,

 

11. 수운과 화이트헤드는 김상일의 견해에 의하면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제각기 서양에서 활성화된 신, 소유권 그리고 존재자 그리고 동양에서 활성화된 자연, 자체 권 그리고 존재 자체를 서로 소통하고 아우르는 두 개의 근본적 종교 사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운과 화이트헤드』는 기 사상의 근본적 뿌리로서 한국의 전통적 문화에서 발견하려고 합니다. 가령 수운의 지기(至気)는 한국 불교로부터 율곡 이이 (李珥)를 거쳐, 녹문 임성주(任聖周)의 기 철학 그리고 혜강 최한기(崔漢綺)의 신기 사상을 자양으로 하여 계승되고 토대가 닦인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자신의 고유한 개혁적 사고에도 불구하고 유학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창조성 개념, 다시 말해서 기의 개념을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조선 후기의 실학은 실용(実用)의 학이 아닌, 실심(実心)의 학에 불과했다.”라는 김용옥의 주장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12. 그런데 다른 한편 임성주와 최한기와 같은 기 철학자들은 서양에서 오랫동안 철칙으로 이해되었던 인격 신의 존재를 자신의 기 철학에서 거의 배제하다시피 하였습니다. 이들에 반해 수운은 천주와 지기를 동시에 비판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최제우는 「포덕문」에서는 상제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나중에 「동학론」 이후부터는 천주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당시에 수운은 당국의 탄압을 피하려고 천주를 “상제”라고 완곡하게 표현한 셈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천주와 지기를 결코 어떤 서로 합치될 수 없는 이원론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주와 지기는 음과 양이 서로 아우르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해명되는데, 이는 김상일에 의하면 화이트헤드의 창조성 개념과 전적으로 접목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저자는 한반도에서 완성된 동학사상과 천도교의 정신이 담긴 세계 사상적 의미를 다시 한번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동학이 세계 사상적 의미를 지닌 까닭은 -윤노빈이 「동학의 세계 사상적 의미」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수운의 시천(侍天), 해월의 양천(養天) 그리고 해몽의 체천(体天)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기운에 의해서 역동적으로 변화되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늘을 키우는 과업 그리고 한울을 실천하는 과업에 대한 의미론적 비교 작업은 차제에 연속적으로 개진되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내유신령 그리고 외유기화의 근본적 종합을 이루려고 하는 동학의 정신에서 모든 종교의 본질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