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1) 존재와 존재자, 혹은 수운과 화이트헤드

필자 (匹子) 2023. 10. 14. 10:48

- 동학은 “신 그리고 자연” (스피노자), “존재자 그리고 존재 자체” (하이데거), “신 그리고 창조성” (화이트헤드)의 모든 특징을 포괄하는 세계적인 사상이다. (김상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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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상일의 『수운과 화이트헤드』 (지식산업사 2001)는 수십 년 동안의 연구 결실로 탄생한 보기 드문 역작입니다. 이 책은 1년 전에 간행된 『동학과 신서학』의 보충 판인데, 논의를 개진하는 데 있어서 무리가 없고, 순서와 주제의 전개에서도 탁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 책은 동서양의 신학을 추적해온 도올 김용옥의 사상을 한 단계 발전시켰습니다. 김용옥은 『도올심득 東経大全』에서 최수운의 사상을 “후천 개벽을 위한 실천철학”으로 평가했습니다. 동학사상 속에는 이른바 민본(民本)이라는 의향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2. 민본(民本)아라는 개념은 도올에 의하면 맹자의 왕도정치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합니다. 김용옥은 이 개념을 “플레타르키아Plētharchia”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은 사전에 발견되는 단어가 아니라, 김용옥이 어처구니없이 작위적으로 끼워 맞춘 조어(造語)입니다. 만약 동학사상에 담긴 민본이 김용옥의 말대로 맹자의 유교 사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 이는 수운이 개별적인 측면에서 서양 사상과 동양 사상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수용하려고 의도했다는 점과는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무엇입니다. 물론 최근에 동경대전을 발표함으로써 그가 이번에는 민본의 핵심을 중국 사상이 아니라, 동학사상에서 찾으려고 한 것은 사실입니다.

 

3. 김용옥이 동학의 민본을 맹자에게서 연결하려고 했다면, 김상일은 동양의 유불선 그리고 서양의 유대교와 기독교 사상 모두를 고려하면서 이를 부분적으로 비판합니다. 서구의 신학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지전능한 인격 신을 바탕으로 하여 오랫동안 이어져 오다가 현대에 이르러 그 한계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동양에서는 유불선, 특히 불교를 중심의 무 내지는 도가 중심이 되어서 기(氣) 사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중동지역의 척박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여 초월적 인격 신관을 발전시켰다면, 동북아시아에는 수풀이 많아서 범신론적인 신관이 발달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77쪽)

 

4. 서양에서는 “신”, “소유권” 그리고 “존재자”가 활성화되었다면, 동양에서는 “자연”, “자체권” 그리고 “존재 자체”가 주도적으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 “소유권” 그리고 “존재자”는 전지전능한 인격 신을 가리킨다면, “자연”, “자체권” 그리고 “존재 자체” 신의 특성을 생동감 넘치게 받아들이는 에너지 내지는 기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물론 서구에서는 영지주의 내지 이른바 이단의 종파에서 인격 신과는 반대되는 종교적 사상적 조류가 은밀하게 명맥을 이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도 강력한 색신(色神) 내지는 상제(上帝)로서의 신적 존재에 관한 믿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간간히 출현해 왔습니다.

 

5. 중요한 것은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종교 철학에서의 두 가지 유형」 (1959)에서 언급되고 있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유형이 신앙과 철학의 영역에서 공통으로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전지전능한 힘을 지닌 인격 신의 존재를 지칭한다면, 후자는 무, 도 그리고 기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이른바 성스러운 영혼을 받아들이는 에너지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두 유형은 메타-종교에서 필요한 두 가지 기본적인 것들인데, 놀랍게도 수운 최제우 그리고 화이트헤드의 사상 속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특성이라고 합니다.

 

신 그리고 자연 (Spinoza), 존재자 그리고 존재 자체 (Heidegger), 신 그리고 창조성 (Whitehead), 틸리히의 존재 그리고 초월의 존재 (Tillich) 등은 서로 대립되는 두 개의 카테고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를 동질적으로 포함(包含)할 뿐 아니라, 서로를 이질적으로 포함(包涵)합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포함(包涵)은 타자 언급 뿐이지만 포함(包含)은 자기 언급적이며, 동시에 타자 언급적이다. 포함(包含)은 부류와 요원이 서로 함께 감싸고 있기 때문에 주객을 나눌 수 없다. 마치 염분과 물처럼 말니다. 그러나 그릇 속에 과일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그 관계는 포함(包涵)이다.” (51)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