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

필자 (匹子) 2023. 12. 18. 11:22

가스통 바슐라르 (Gaston Bachelard, 1884 - 1962)의 "공간의 시학 (La Poétique de l’Espace)"은 1957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불의 정신 분석 (Psychoanalyse du Feu)" (1938) 그리고 이후의 「몽상 (rêveries)」에서 바슐라르는 물, 불, 공기, 흙 등의 4원소에 예술적 상상의 특성을 찾으려고 한다. 여기서 그는 프로이트의 충동에 관한 정신 분석을 (영혼의 삶에 대한) 자연 원소의 결정주의의 영향과 접목시킨다. 󰡔공간의 시학󰡕은 예술적 상상력을 주어진 제반 종속적 요소들로부터 일탈시켜, “물질적 상상력 (imagination matérielle)”을 “창조적 상상력 (imagination créatrice)”으로 대치시키고 있다. 바슐라르는 더 이상 분석가로서가 아니라, (베르그송과 사르트르를 비판적으로 거론하면서) 현상학자로서 창조적 상상력에 접근한다.

 

물론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공간의 시학󰡕은 예술 작품 내에서의 이론적 제한성 내지 한계성을 분명하게 규정하지는 않는다. 바슐라르는 물질과는 무관한 고유한 상상력에 관심을 기울인다. 다시 말해 그는 물질적으로 조건화된 판타지에 하나의 고유한 독립적인 동력이 담겨 있지 않다고 단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현상학적 공간의 시학은 다른 한편으로 어떤 정신분석학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흔적들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흔적들은 칼 구스타프 융이 말하는 전체적 무의식에 근접한 것들이다. 실제로 융과 바슐라르 사이에는 상당히 많은 공통점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바슐라르가 융의 “원형 (Archetyp)”을 미적 구상 내지는 인지 형태에 관한 근본적 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바슐라르는 (행복한) 공간의 어떤 상징을 설계한다. 이러한 장소는 실제가 아니라, 가상적 유년 속에 아련히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가상적 유년은 어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공간이다. 바슐라르는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유년의 체험 공간을 포에지의 진정한 장소로 파악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정신분석학의 학문적 해명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상들이 발하는 꿈의 이미지이다. 즉 “집”, “궤짝”, “둥지”, “구석”, “미세화”, “무한성” 등과 같은 상을 생각해 보라. 이것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린, 표현되기 어려운 직관적 상이며, 독자에게 새로이 창조적인 형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유년의 상은 내밀한 영혼의 움직임을 다시금 메아리치게 한다.

 

영혼의 상의 이러한 반향은 지금까지 서구 문화에서 전혀 준비된 적이 없었다. 그러한 한 유년의 상은 “애호 받는 유형 (Topophilie)”으로서,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서양시의 소재로 많이 활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바슐라르에 의하면 이를 충분히 연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19세기, 20세기 서정시들은 절대적이고 순수하게 승화되어, (다시 말해 억압 메커니즘에서 축소화된 채) 유년 시절의 고삐 풀린 상들을 기술하고 있다.

 

시적인 거주 공간은 -헤겔이 생각한 “지양”의 방식에 의하면- 시인이 갈구하거나 기억해낸 축조물로서 표상되곤 하였다. 예컨대 그것은 아무런 강요 없이 때로는 “오두막”, “비둘기”, “둥지”, “나비 인형” 등으로 변형되기도 하고, 때로는 친밀한 사랑의 감정 속에서 수직적 동경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시적인 거주 공간은 현상학적 미학의 기초적 요구 사항에 불과하다. 이로써 무언가를 공동으로 체험하려는 독자들은 올바른 꿈 (몽상) 그리고 시인의 진정한 창조적 의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초현실주의자들은 -바슐라르가 표방한- 시적 상상력의 자율성 내지 “비현실적인 현실성”을 열광적으로 옹호하였다. 실제로 바슐라르는 “시적 발명을 자율적으로 완성하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모든 종래의 인습적 규범을 파괴하고 그것을 문학적 언어로 혁신하라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개별적 상들은 의미심장한 (미적 정치적) 맥락과는 독립된 별개로서 수용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바슐라르는 상기한 전통적 문학 연구 방법론을 비판하고, 예술가의 자율적 상상력을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작품 구조의 세밀한 분석 대신에 시적 상상력을 직관적으로 그리고 현상학적으로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렇기에 바슐라르의 입장은 어쩔 수 없이 프랑스 구조주의자들의 불만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