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리하르트 피츠라스의 '아버지에게'

필자 (匹子) 2023. 9. 18. 11:46

아버지, 당신의 커다란 두 손

무엇을 위해 아껴 두셨나요?

그걸로 여러 자루를 짊어지고

방앗간으로 수레 끌곤 했지요.

오한을 느끼며 전선으로 달려도

총알 하나 잃은 적이 없어요.

아, 당신은 어떻게 돌아왔나요?

눈멀고 머리카락 박박 깎인 채.

당신의 두 손을 기억했나요?

두 손이 멀쩡해 있었다는 걸.

아침에 탄광으로 차타고 가서

저녁에는 녹초가 되어 왔어요.

아침에 당신은 당을 찾았지만,

저녁에는 탈당하려고 했지요.

당신은 항상 뼈 빠지게 일했고,

허름한 뒷집에서 거주했어요.

우라늄과 다듬은 목재를 끌고,

상자, 끈 묶은 다발을 날랐지요.

어느새 두 다리가 노화되어,

어느 순간 당신은 쓰러져야 했어요.

이제 병원 문 앞에서 깨어나,

천국의 교통정리 애쓰는군요.

당신 소원은 훨훨 날아보는 것,

당신의 두 손 왜 그리 무거운가요?

 

An den Vater von Richard Pietrass: Vater, deine großen Hände/ was haben sie dir erspart?/ Mit ihnen hast du Säcke gehuckt/ und in die Mühle gekarrt./ Bist fröstelnd an die Fronten gelaufen/ hast keine Kugel verloren./ Ach, wie bist du wiedergekehrt/ geblendet, scheitelhoch geschoren./ Hast dich deiner Hände erinnert/ die waren dir beide geblieben./ Morgens fuhrst du in die Grube/ am Abend warst du zerrieben./ Morgens fandest du deine Partei/ am Abend wolltest du raus./ Wie immer du geschuftet hast/ du wohnst im hinteren Haus./ Schlepptest Uran, dann Schnittholz/ Kisten, bald wollene Ballen./ Das Alter stieg eilig die Beine empor/ nicht lange, mußtest du fallen./ Nun wachst du am Tor zum Krankenhaus/ und regelst den Himmelsverkehr./ Vater, dein Wunsch: einmal fliegen/ was sind dir die Hände so schwer?

 

(질문)

1. 상기한 시에서 “아버지”의 직업은?

2. 6행에서 “총알 하나 잃지 않았”다는 말을 설명해 보세요.

3. 어떠한 이유에서 사람들은 “훨훨 날아보는” 꿈을 꾸는가요?

 

리하르트 피트라스 (1946 - )는 브란덴부르크 호수가 근처에 사는 “작센의 청 고래”라고 자신을 묘사하였다. 그는 1946년 리히텐슈타인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나다. 60년대에 베를린에서 임상 심리학을 공부한 뒤에 여러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살다가, 1979년 자유 작가가 되다. “파스테르나크 문학의 모방자”로 자처하는 피트라스는 모방 시 이외에도 아름다운 연애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해설)

인도의 신 가운데 손이 열개 발이 열개 달린 분이 있습니다. 이들은 힌두교에 의하면 어떠한 일이라 하더라도 다른 자들보다 열배 많이, 혹은 열배로 신속하게 해치우는 신들입니다. 이는 나중에 중국으로 전파되어 천수천안 관음 (千手千眼観音)의 불상 (仏像)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인간들은 무엇을 갈망할까요? 그들은 열개의 손에 관한 허황된 꿈을 꾸었을 게 분명합니다.

 

이 시는 1972년에 발표된 것입니다. 피트라스는 죽어가는 아버지 곁에서 느낀 심경을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 같아 보입니다. 아들의 눈에는 “아버지”의 살아온 이력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비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손과 발은 특히 노동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로 쓰입니다. 그래, 손은 도구입니다. “아버지”는 바로 그 손으로 자루를 짊어지고 일했으며, 바로 그 손으로 우라늄을 캐내고, 목재를 운반하며 살아갔습니다.

 

전쟁터에서 “총알 하나 잃지 않”을 정도로 그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이 있어도 정작 노동자를 위해서 일하지 않는 데 대해 분개하곤 했습니다. 그렇기에 “아침에 당신은 당을 찾았지만,/ 저녁에는 탈당하려 했”던 것입니다. 힘들게 일하며 살아가다가 쓰러진 아버지 곁에서 아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아버지는 이제 죽음의 문턱을 넘으려는 것일까요? 의식을 잃은 아버지의 그토록 강인하던 두 손이 축 쳐져 내려앉은 것입니다. 아들을 슬프게 만든 까닭은 두 손이 당신의 자유를 마음껏 구가하기 위한 게 아니라,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사용되던 도구였다는 사실,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