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서로박: 넬리 작스의 시

필자 (匹子) 2023. 7. 25. 10:10

1. 넬리 작스의 초기 시

 

독일계이자 유대계 여류 시인 넬리 작스 (1891 - 1970)는 1947년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자신의 작품은 “어떤 말할 수 없는 것을 불충분한 언어 속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할 수 없는 것이란 아우슈비츠의 체험을 지칭하는데, 작스가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추적한 모티브였다.

넬리 작스는 시 외에도 산문과 드라마를 집필했다. 이것들은 인간적 고뇌의 술회로서, 그칠 줄 모르는 외침으로서, 죽음 앞의 기도, 회고록 그리고 탄핵의 글로서 이해된다. 그미의 창작 행위는 처형당한 자, 이름 모르는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노력인 셈이다.

 

논리적 언어 내지 전통적 미학은 아우슈비츠를 묘사하기에는 전혀 쓸모없다. 그렇기에 넬리 작스는 침묵으로부터 언어를 구출하기 위해서 새로운 언어 형태를 찾으려고 한다. 이 점에 있어서 그미의 문학은 파울 첼란의 그것과 유사하다.

처음에는 넬리 작스의 언어는 신낭만주의의 수사 내지는 20년대의 표현주의 내지는 쉬르리얼리즘의 영향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웠지만 (힐데 도민), 나중에 1943년 이후에는 이러한 문체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되었다. 작스는 마르틴 부버 (Martin Buber), 게르숌 숄렘 (Gershom Scholem)의 유대 신비주의의 서적을 접하고 난 뒤에, “자의식으로부터 일탈되는, 환상적인 문체”를 채택하였다.

 

넬리 작스는 1943년에 스웨덴에 망명하여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집단 학살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피살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신의 오빠 여동생도 속해 있었던 것이다. 시집 󰡔죽음의 집 속에서 (In den Häusern des Todes)󰡕 (1947)는 피살당한 유대인 영혼을 달리는 시집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시집은 “1. 연기 되어 공중으로 떠다니는 너의 육체, 2. 죽은 남편을 위한 기도, 3. 공중에 쓴 묘비명, 4. 자정 후의 합창” 등과 같이 네 편의 연작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곳은 죽음의 정원으로서 살인적 폭력과 연약한 배려가 뒤섞여 있다. “손가락”, “신발”, “목”, “연기” 등과 같은 시어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지칭할 뿐 아니라, 역사적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먼지와 같은 환유의 표현은 그 자체 상처와 죽음을 뜻하며, 고통과 신과의 근친함을 결합시킨다. 「공중에 쓴 묘비명」에서 시인은 개별적 이름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넬리 작스가 만났던 유대인들이다. 도부상, 시장의 상인, 스피노자 연구가, 무희 등.

 

「죽은 남편을 위한 기도」에서 시인은 죽은 남편과 실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자정 후의 합창」에서는 떠나간 보이지 않는 사물들, 사망자들, 살아남은 자들, 태어나지 않은 자들, 별들, 돌, 나무, 구름 그리고 구원의 장소 이스라엘 등이 언급된다. “자정”이란 유대인에 대한 거대한 학살의 시간을 상징하고 있다.

1949년에 간행된 두 번째 시집 “별의 꺼짐 Sternverdunklung”이라는 제목은 망명과 대학살을 직접적으로 지칭한다. 그러니까 제목은 지구를 검거 물들인 화장터의 연기를 연상시킨다.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는 연작시는 성서에 나오는 비탄의 잠언과 같은 수사법을 도입하고 있다. 예컨대 대량 학살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 (“시간은 찢어져 있다”), 아브라함, 야곱, 히옵, 다니엘, 다비드, 사울 등과 같은 유태 민족의 고통의 역사 (“조개는 소리를 낸다”), 구원의 땅 이스라엘, 사랑하는 어머니의 임종 모습 등이 그것들이다.

 

두 번째 시집에서는 하시디즘에 관한 서적의 영향이 아주 두드러진다. 고통의 신비적 의미라든가, 다음과 같은 언어관이 바로 그러한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언어는 -하시디즘에 의하면- “별을 잉태하는 밤”으로 돌아섬으로써 신의 근원을 마치 “마스크”처럼 은폐시키는 동안에, 언어는 세계를 창조한다.

유대교의 신비주의에 의하면 “비밀”은 가시적인 물질 속에 은폐되어 있는데, 이는 결코 벗겨지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은폐의 금지는 유대교에서 상의 금지를 뜻한다. “비밀을 낱낱이 밝혀내지 말라.”, “신의 구체적인 얼굴을 알려 하지 말라.” 라는 전언은 종교적인 발언, 언어 이론적인 성찰 그리고 윤리적인 요구 사항이나 다름이 없다.

 

예컨대 「죽음 정원사의 손들」이라는 시에서 물리적 폭력은 비밀스러운 암호의 어떤 출현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니까 나치의 폭력은 결코 출현되지 말아야 할 비밀과도 통한다는 것이다. “육체의 성궤 (聖櫃)가 돌출하고/ 비밀의 부호는 마치 호랑이의 이빨처럼 물어뜯으려 해.” 이로써 시인은 앞으로 지구상에 어떤 인종도 언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삶을 말하는 자여, 그대는 한 개인의 죽음만을 생각하지 말라.”

 

넬리 작스는 (망명과 구원을 관련성을 다룬) 하시디즘 신화의 핵심적 모티브로서 “빛” 그리고 “섬광”을 사용한다. 빛과 섬광은 작스 시의 전 편에 걸쳐 나타나는 이미지인 셈이다. 작스에 의하면 신의 광명은 모든 세속적인 사물 속에 어떤 섬광으로서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섬광은 신의 창조 행위에 의해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데, 오로지 인간적인 헌신에 의해서 흩어진 섬광들은 재집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대 신비주의의 언어 이론은 작스의 시 창작의 구상과 일치된다. 그러니까 끔찍한 역사적 사건에 의해 “익사 직전에 위치한 알파벳” (넬리 작스)을 구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어를 되찾는 일은 바로 신을 되찾는 일과 직결되고 있다.

 

2. 넬리 작스의 중기, 후기 시

 

50년대 60년대에 넬리 작스는 세 권의 시집을 간행했다. 󰡔더 이상 아무도 모른다 (Und niemand weiss weiter)󰡕 (1957), 󰡔도주와 변신 (Flucht und Verwandlung)󰡕 (1959), 󰡔먼지 없는 곳으로의 여행 (Fahrt ins Staublose)󰡕 (1961)이 그 작품집이다. “도주” 그리고 “변신” 등의 모티브는 강렬하게 드러나지만, 주제상의 관점이라기보다는 시작 행위 속에 도사린 역설적인 운동을 지칭하고 있다.

50년대 이래로 넬리 작스는 유대교의 신비로운 서적인 카발라, 그 가운데 특히 13세기의 소하르 (Sohar)의 책에 몰입하였다. 고통과 박해로부터 도주하려는 모티브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위한 어떤 암호로서 의미 확장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암호는 신을 지속적으로 상실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과 신으로부터 구분되었다는 사실을 의식할 것 등을 요구한다. 도피와 망명은 “신에게 가까이 하려는 신비주의의 길을 서술하려는” 존재 형태로 화한다.

 

넬리 작스가 추적하는 이러한 탈 역사적 추상성은 폭력이라는 테마의 근저에 위치하고 있다. 유태인들의 박해의 역사는 “사냥꾼” 그리고 “사냥 당하는 자” 사이의 인류 역사의 원초적 유희로 확장되고 있다. 다시 말해 넬리 작스의 중기 시들은 시인의 직접적인 체험을 넘어서 보다 보편적인 테마를 포괄한다. 이는 시어 선택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작스의 중기 시들은 초기 시집에 실린 부호 목록을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 (“모래”, “신발”, “나비”, “물고기”, “돌”, “별”, “빛”, “동경”, “죽음” 등).

 

그러나 작스 시에 나타난 시어들은 [가르시아 로르카 (Garcia Lorca), 파블로 네루다 (Neruda), 파울 클레 (Klee) 등과 같은] 현대 예술의 수용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나중에 시인은 이후의 차단된 후기 시에서 이러한 시어들을 이른바 절대적 메타퍼로 발전시키고 있다. [󰡔죽음은 아직도 삶을 축하한다 (Noch feiert Tod das Leben)󰡕 (1961), 󰡔작열하는 수수께끼들 (Glühende Rätsel)󰡕 (1963 - 1967), 󰡔무언가를 찾는 여자 (Die Suchende)󰡕, (1966) 󰡔밤 (夜)은 너를 가르고 (Teile dich Nacht)󰡕 (1971)].

작스는 1960년에 독일을 방문했는데, 이때 과거의 끔찍한 기억이 다시 출현하여 기절하기까지 했다. 그미의 후기 시는 바로 이러한 경험을 그대로 반영한 듯 보인다. 이후로 그미는 수년간 요양원 생활을 보내야 했다. 시집 󰡔죽음은 아직도 삶을 축하한다󰡕에서 나타나는 비유는 그미의 요양원 생활을 통한 구체적 특성을 담고 있다. 이러한 구체성 및 더욱 강화된 현실적 관련성은 이후의 시에서 하나의 경향적 특성으로 반복되고 있다.

 

일상적 사적인 공간은 -가령 「나는 빨래한다.」라는 시에서 나타나듯이- 예기치 못할 정도로 신비주의적 특성으로 이전되고 있다. 󰡔작열하는 수수께끼들󰡕과 넬리 작스의 사후 간행된 󰡔밤은 너를 가르고󰡕 등은 절제와 축약으로 씌어진 경구의 모음집처럼 보인다. 두 시집은 명사의 충돌이 가져다주는 소통의 단절 그리고 침묵과 죽음 사이에 온존하고 있는 여백 등을 드러낸다. 여섯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진 시집 󰡔무언가를 찾는 여자󰡕는 이에 비하면 어느 여자의 행동을 마치 서술하듯이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등장인물은 사라진 연인을 찾아 더듬는 어느 여자의 고뇌와 한풀이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셈이다. “그미는 연인을 찾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세상을 새롭게 건립해야 한다.”

 

작스의 후기 시는 -유대교의 신비주의적 경향 외에도- 절대적 메타퍼와 부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들은 구체적인 직관 내지는 경험 등을 배경으로 하지 않으며, 아무런 구상적인 상과 무관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어진 것을 재현하는 언어가 아니라, 어떤 “침묵하는 상처 입은 언어” 바로 그것이다. 작스는 현실 바깥의 영역, 저편의 불안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영역을 추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넬리 작스의 시는 현실적 발언과 상징적 발언을 상호 응집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가령 “물고기”라는 시어는 종교적 신화적인 함의를 넘어서서, 거대한 충격을 입은 어느 인간의 말문 막힌 상태를 암시한다. 실제로 작스는 게슈타포에 의해 심문을 받은 후 5일간 목젖의 마비 상태를 경험했다고 한다.

 

또한 작스의 후기 시는 폭력과 냉담함에서 비롯하는 지속적인 위협을 주제화시키고 있다. 작스는 지금까지 피해당한 자들의 고통을 묘사하지만, 여기서는 역으로 “(유대인에게) 돌을 던지는 타자는 누구인가?”하고 묻는다. 여기서 시인은 “(인종, 언어, 고향 그리고 문화 등 모든 게 다른) 낯선 자에게 인간적으로 근접해야 한다”고 독자에게 호소한다. “멀리서/ 어느 누군가가/ 개의 움직임으로/ 올까, 혹은/ 아마도 들쥐가.”

넬리 작스의 시는 구서독에서 조심스럽게 수용되었다. 50년대에는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H. M. Enzensberger)와 알프레트 안더쉬 (A. Andersch) 등에 의해 시의 진가가 입증되기도 했다. 그러나 넬리 작스가 60년대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어느새 “미지근한 망각의 과정” (에곤 바르)이 전개되었다. 70년대에 독문학계는 작스 시의 주제보다는, 대체로 시적 모티브 내지 신비주의적인 특성을 연구하였다. 과거에 저지른 죄를 망각하기 - “시간이 약”이라고 말하기에는 죄과가 너무나 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