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세계 문화

박설호: (3) 배금주의 비판, 아이티 항쟁과 프랑스 혁명

필자 (匹子) 2023. 8. 18. 11:31

 

(3) 배금주의 비판, 아이티 항쟁과 프랑스 혁명. 니콜라스 기옌의 시를 중심으로

 

(앞에서 계속됩니다.)

 

6.

B: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모든 혁명의 근원에는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저항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군요.

A: 바로 그 점이 중요해요. 16세기 독일에서 발발한 농민 혁명 역시 가난한 농민을 착취하는 가렴주구로 인해서 촉발되었습니다. 토마스 뮌처Thomas Müntzer의 사상은 저항이 없으면, 도저히 생각될 수 없습니다. 혁명은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저항의 몸부림을 통해서 아래에서 위로 향해 나아가는 운동이지요.

B: 이제 콩고 아이티 항쟁과 프랑스 혁명 사이의 관계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A: 프랑스 혁명의 구호는 주지하다시피 -프랑스 삼색기에 그려진 그대로- “자유, 평등 그리고 동지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게 있어요. 그것은 자유, 평등 그리고 동지애가 프랑스인들에 의해서 독창적으로 창조된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B: 어째서지요?

A: “자유liberté”는 억압과 구속에 대한 저항에서 태동하는 사고입니다. 그것은 프랑스인들의 것만은 아닙니다. 유럽 역사가만이 창안해낸 개념이 아니지요. 그것은 아프리카 콩고인들이 믿었던 “보두교의 우주론”에 근거한 것입니다. 콩고 출신의 흑인들은 이전에 아프리카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땅에서 스스로 노예처럼 지내야 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부자유에 대항해서 싸우려고 결심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해방의 공동체 “마룬”을 설립했습니다.

B: 마룬 (maroon)은 에스파냐어로 “야생”을 뜻하지요?

A: 그렇습니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시마론Cimarron”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어원상으로 부자유의 구속을 떨치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가 그것입니다. 마룬 공동체는 춤과 제식을 통해서 공동 소유권 그리고 대아(大我)를 추구합니다. 이로써 그들은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는데, 에스파냐 정복자들은 이러한 예식을 이른바 무가치하고 천박한 주술 내지는 무속으로 여기면서 철저히 금지했습니다.

 

B: 기실 자유는 누구든 생각해낼 수 있는 이념이지요. 예컨대 자유는 하나의 독자적인 이념이 아닌 것 같습니다. 흔히 부유한 사업가들이 자유 내지는 “리버럴리즘”을 외치는데, 이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닌 것 같습니다. 평등과 결부되지 않는 자유는 근본적으로 위선 아닌가요?

A: 정확한 말씀입니다. 콩고에 살던 흑인들은 “평등égalité”을 생명체와의 유기적인 관계로 이해했습니다. 다시 말해 “평등”은 식물계, 동물계 그리고 광물계의 모든 개체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형성된 이념입니다.

B: 유기적인 관계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한 개체가 다른 개체를 억압하거나 두 개체 사이에서 유기적인 관계가 무너지면, 결국에는 생태적 균형이 파괴되지요?

 

A: 바로 그 점이 중요해요. 마룬 공동체가 생각하는 평등이란 “너와 나의 평등”이라는 인간 중심의 인식론적 차원을 넘어서서, 인간과 주위 환경 사이의 수직적 주종관계를 넘어서려는 수평적 사고 내지는 의식을 가리킵니다. 자연의 이러한 수평적인 위계질서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중시하는 “어머니로서의 땅terre comme mère”의 개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B: 서인도 제도에 살던 백인들은 콩고 출신의 흑인들이 이러한 깊이 있는 사고를 행할 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니그로”로 비쳤을 뿐입니다. “동지애” 역시 서구적 개념인 “개인”이 아니라, “보다 큰 자아로서의 대아Atman”와 관련되는 것이겠지요?

 

A: 그렇습니다. 서구에는 더 큰 자아로서의 대아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대아는 동양 사상 내지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서 엿보이는 “나를 포함한 나”의 개념을 가리킵니다. 진정한 자아는 마치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자식을 동일시하듯이, “우리 함께 서로를 위하는 자아”의 의미를 담고 있지요.

B: 그렇다면 “동지애fraternité”가 보다 큰 자아로서의 대아와 연결된다는 말씀인데...

A: 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 콩고 아이티 항쟁을 벌인 흑인들은 다음의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즉 고향, 아프리카에서 다른 종족과의 우애 관계가 무엇보다도 전쟁을 차단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평화가 소중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동지애”는 부족의 단합을 도모할 뿐 아니라, 다른 부족과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됩니다.

 

   7.

B: 프랑스 혁명 사상 그리고 자유, 평등 그리고 동지애라는 구호는 콩고 출신의 흑인들에 의해서 제기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참으로 혁신적입니다. 지금까지 프랑스 혁명은 서구의 계몽주의의 정점으로서 시민 주체의 요구 사항이라고 간주하지 않았습니까?

A: 말씀하신 대로 프랑스 혁명은 콩고 아이티 항쟁 없이는 도저히 생각될 수 없습니다. 콩고 아이티 혁명 운동은 19세기 유럽에서 전개되었던 모든 개혁과 혁명적 사고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사항은 유감스럽게도 서구의 철학과 서양사에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철학자, 헤겔은 모든 것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콩고 아이티 혁명을 부차적인 사건으로 은폐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정신은 오로지 서구 사람들이 끄집어낸 독창적인 무엇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B: 왜 그랬을까요?

A: 그 이유는 만약 제삼세계의 폭동이 유럽 정신사에 포함되면, 자신의 역사철학의 시스템이 흐트러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헤겔은 신대륙 사람들이 무지하고 열등하다고 여겼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시스템을 강조하는 헤겔의 역사관에 의하면 계몽 정신의 정점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헤겔은 지중해야말로 세계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헤겔의 이러한 유럽 중심주의가 신대륙의 역사를 변방의 지엽적인 사건으로 배제하게 했습니다. 세계사는 16세기 이후로는 유럽 중심으로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B: 공감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근대 이후의 역사에서 제삼세계가 배제될 수 없지요. 시스템과 조직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적 시스템에 어긋나는 것은 막무가내로 예외적인 것으로 배척하고 봅니다. 이것은 잘못된 처사지요.

 

A: 그렇습니다. 자신의 주된 이론적 논거에 부응하지 않는 사항들을 하나의 예외사항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이지요. 가령 마르크스는 경제적 생산 양식의 발전 과정을 역사철학적으로 구명하면서, 이른바 “아시아적 생산 양식”을 예외 사항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까?

B: 알렉산드르 차야노프Alexander Chayanov도 언급한 바 있듯이 농업 경제는 마르크스 사상과 막무가내로 접목되지 않습니다.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가는 농부에게는 “임금”이라든가 “잉여가치” 등과 같은 경제 용어는 불필요하거든요.

A: 예리한 지적입니다.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 – 공산주의 등으로 이어지는 생산 양식의 발전 과정에서 아시아 농업 경제의 질서는 어떤 것과도 연결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도 아시아적 생산 양식 논쟁에서 한 발 물러서고 말았지요. 어쨌든 아이티 항쟁과 프랑스 혁명 사이의 관련성에 관한 문제는 차제에 학문적으로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

B: 잘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옌의 시 한 편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이어지는 시는 니콜라스 기옌의 「수수께끼Adivinanzas」라는 작품입니다.

A: 작품은 쿠바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참담한 현상을 간접적으로 지적합니다. 그것은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 (1연), 끝없이 이어지는 가난과 기아 현상 (2연), 돈 문제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성) 폭력 (3연) 그리고 노동력이 있음에도 구걸해야 하는 모순 구조 (4연) 등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연은 참담한 현실을 개선하지 못하는 시인 자신의 불가항력 (5연) 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이빨로

밤에는 피부로 떨고 있지

그는 대체 누굴까

흑인이야

 

못생긴 여성이라면, 아마 주인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겠지

그는 대체 누구일까

굶주림이야

 

폭군 같은 소유주의 머슴들

가운데 가장 천한 노예

그건 대체 무얼까

몽둥이야

 

한 손에는 풍문, 다른 한 손은

절대로 잊지 못하는 것

그건 대체 무얼까

적선하기야

 

지금까지 배운 대로 크게 웃는 남자는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그는 대체 누굴까

바로 나야.

 

 

En los dientes, la mañana,/ y la noche en el pellejo./ ¿Quién será, quién no será?/ -El negro.

Con ser hembra y no ser bella,/ harás lo que ella te mande./ ¿Quién será, quién no será?/ -El hambre.

Esclava de los esclavos,/ y con los dueños tirana./ ¿Quién será, quién no será?/ -La caña.

Escándalo de una mano/ que nunca ignora la otra./ ¿Quién será, quién no será?/ -La limosna.

Un hombre que está llorando/ con la risa que aprendió./ ¿Quién será, quién no será?/ -Yo.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