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세계 문화

서로박: (1)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필자 (匹子) 2023. 9. 24. 10:45

 

”새롭게 발견되는 현실은 이전의 고착된 사고를 수정하게 한다.” (필자)

“진정한 비판은 오로지 외부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비판이 진정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방향이 외부로 그리고 동시에 내부로 향해야 한다.” (레비스트로스)

“헤겔은 북반구의 온대, 즉 지중해 지역만을 세계사의 토대라고 착각하였다. 새로운 세계의 방방곡곡이 세계사의 현장이다.” (필자)

 

 

1. 레비스트로스, 아마존 지역을 탐색하다.: 프랑스의 문화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Claude Lévi-Strauss, 1908 – 2009)의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는 그의 자전적인 여행기로서 1955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그는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의 사회학 교수로 부임하여, 1934년부터 1947년 사이에 수차례에 걸쳐 아마존 숲의 내부를 탐험하였습니다. 당시의 문명 세계는 아마존의 험준하고 은밀한 숲에 관해서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곳의 토착민이었던 카인강Kaingang, 카두베오Caduveo 그리고 보로로Bororo 등과 같은 종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브라질 사람들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상파울루 대학을 떠나 프랑스로 돌아간 레비스트로스는 국가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서 본격적으로 아마존 지역을 탐험하게 됩니다. 1938년에서 이듬해에 이르기까지 그의 탐험대원들은 아마존 중부 지역인 마투그로수를 지나서 아마존강의 상류에 다다릅니다. 그곳에서 레비스트로스는 낭비크와라족Nambikwara 그리고 투피-카와이브족Tupi-Kawahib의 오묘하고 폐쇄적인 생활상을 직접적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2. 철학적 여행기: 레비스트로스의 탐험에는 수많은 위험이 동반했습니다. 자신이 계획한 바가 성공리에 완수될지도 모르는 형국이었습니다. 정글 지역에는 모래벼룩, 구더기 등과 같은 작은 동물들이 즐비합니다. 강에는 피라니아가, 위에는 모기떼가, 육지에는 독사와 재규어가 탐험가를 공격합니다. (울리 쿨케: 훔볼트의 대륙, 최윤영 역, 을유문화사, 17쪽,) 레비스트로스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아마존 상류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의 생활방식이 민속학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독특한지를 밝혀내고 있습니다. 아마존 원주민들의 삶은 문명과 야생이라는 양자택일의 관점에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하나의 독자적이고 이질적인 고유성을 지닙니다.

 

여행기라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슬픈 열대』는 -수전 손택이 지적한 바 있듯이- 지식인의 체험 기록에 해당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 몽테뉴의 수상록을 방불케 합니다. (Susan Sontag: Against Interpretation, New York 1966, 69 – 81.) 저자는 단순히 문명과 야생의 이원론에 입각한 게 아니라, 유럽 사람들의 착취와 이익 추구에 의해 나타나는 병리 현상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슬픈 열대』는 프랑스에서 “철학적 여행기Voyage philosophique”라는 문학적 장르를 형성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3. “도래한 미래”: 여행의 마지막에 이르면 레비스트로스의 염세주의의 시각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탐험이 시작할 때부터 레비스트로스는 다음과 같은 물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어쩌면 문명을 접하지 못한 아마존 원주민들에게서 우리 자신의 역사적 현존재의 가장 불행한 형태가 고스란히 발견하게 되는 게 아닐까?” 왜냐하면 서구인들은 식민 통치와 야생의 교란이 얼마나 심각할 정도로 피폐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구인들은 제삼세계를 여행한 다음에 그곳에서 구한 기이한 물품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시하곤 합니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여행의 전리품들은 마치 자신의 특권을 과시하는 수단처럼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서구인들은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보고서, 사진 그리고 책 등으로 소개하곤 했는데, 이것들은 아마존 원주민들의 진정한 민속적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피상적 사항만을 서술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여행기는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무가치할 뿐 아니라, 열대 지역의 문화적 독창성을 희석하게 해줄 뿐이라고 합니다.

 

4. 자신을 성찰하는 여행기: 레비스트로스는 물론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무엇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가령 의사였던 프랑스와 베르니에 (François Bernier, 1620 – 1688)는 이집트 그리고 인도를 여행하였고, 루이 앙트완 부갱빌 (Louis Antione Bougainville, 1728 – 1811)은 해군 함장으로서 남태평양의 타히티를 탐험하였으며, 칼뱅 교단의 수사였던 장 드 레리 (Jean de Léry, 1536 – 1613)는 브라질을 탐험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들의 여행기에 관해서 이미 숙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서술한 여행기의 내용은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낯선 나라에 관한 궁금증만을 해결해줄 뿐, 그곳의 본질과 근본적인 문제점에 관해서 논평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가 서로 뒤섞여서 각자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우리는 다른 문화에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제각기 주어진 문화적 다양성과 풍요로움은 있는 그대로 보존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나는 낯선 지역의 문화를 접하면서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이에 대해 그저 조소하고 경멸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나는 아마존 열대 우림 지역을 탐험하면서 오래전에 사라진, 어떤 과거 인류 문화의 놀라운 흔적을 발견하려고 한다.”

 

5. 세 가지 다른 구조주의의 영역: 지질학, 정신분석학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레비스트로스는 어떠한 정신적인 풍토 속에서 자신을 지적으로 발전시켰는가? 하는 물음에 관해서 “인간은 어떻게 민속학자가 되는가?”의 장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즉 자신에게 어떤 깨달음을 전한 학문은 지질학, 정신분석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구조주의의 영역은 현실의 유형을 정반대 방향으로 되돌아보게 하면서 다음의 사항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즉 “진정한 현실은 결코 표면적, 피상적 특징으로 가시화되는 게 아니다.La vraie réalité n'est pas visible à partir des traits superficiels.”라는 사항 말입니다. 지질학, 정신분석학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공통으로 자리하고 있는 인식론적 구상은 “어떤 초-합리주의라는 유형적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고유성을 희생하지 않고, 감각적인 무엇을 합리적인 카테고리 속에 통합하고 있습니다.

 

6. 문제는 심층부에 있다. 지질학은 지구 내부를 연구하면서 바위와 금속을 구분합니다. 가령 금 그리고 은은 암석의 내부에 밀집하게 박혀 있습니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의 피상적 특징을 ”파롤parole“로, 언어의 본질을 ”랑그langue“로 구분하였습니다. 마르크스는 외부적으로 드러난 인간 삶의 형태를 ”상부 구조Überbau“로 파악하고, 이를 받쳐주는 경제적 기능을 ”토대Basis“라고 명명했습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에서 인간 행동을 외부적으로 규정하는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을 ”초자아Super-Ego“로, 인간의 내적이고 본능적 조건을 ”이드Id“라고 규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레비스트로스의 연구 방향은 구조주의적으로 피상적인 부분과 심층적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생활 습관이라든가 외적으로 드러난 이국적 특징이 민속학적인 ”현상“이라면, 그 속에 숨어 있는 질서 내지는 바탕은 민속학적 문화적 ”본바탕“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민속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특정 문화의 바깥에서, 다시 말해서 이방인의 자세를 떨치지 않고 멀리서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구 방향은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땅에서 살아가는 낯선 문화를 알려면 그 안으로 잠입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가 성립되어야 민속학자는 자신의 문화 속에 숨어 있는 결함이라든가 문제점을 예리하게 간파할 수 있다고 합니다.

 

7. 문명사회의 일방적 잣대 내지는 기준은 불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레비스트로스는 겉으로 드러난 특징보다 더욱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카테고리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토착민의 특수한 생활 양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명사회에서 연마된 이른바 합리성이라는 기준은 레비스트로스의 견해에 의하면 일차적으로 불필요하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다른 문화 내지는 야생의 문화를 탐색하는 자는 한마디로 과거에 맹신했던 합리성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다시 말해 합리성의 저편에서 어떤 의미심장한 혁신성을 밝혀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토착민의 사회 그리고 그 양식une société autochtone et son style」이라는 장에서 바로 이 점을 명확하게 강조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무엇보다도 관료주의의 토대에서 치르는, 마치 축제와 같은 삶의 양식 그리고 몸에 색을 칠하면서 춤을 추는 카두베오Caduveo 종족의 예술적 표현에 관해서 심도 있게 서술하였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