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박설호: (1) “보라! 호메로스의 태양은 우리에게도 미소 지을 거야!” 실러의 시 산책 해설

필자 (匹子) 2023. 3. 22. 11:32

총론

 

프리드리히 실러의 비가, 「산책」은 그의 다른 작품 「종 (鐘)Die Glocke」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795년 8월에서 9월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잡지 「호렌」에 발표되었습니다. 나중에 수정되어 1800년에 완성본으로 실러의 시집에 실리게 됩니다. 실러는 시의 구조에 있어서 비가 형식을 선택했습니다. 이로써 시작품은 “강약 격 (Trochäus)”의 “6각운 (Hexameter)”의 구조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시인이 각운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정형시가 사라진 지 오래되지만, 현대의 시인들은 대부분 여전히 각운을 사용하곤 합니다. 어쩌면 각운이야 말로 시의 본질적인 특성인데, 실러는 의도적으로 각운을 파기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빌헬름 슐레겔은 실러의 시 「산책」을 혹평한 바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특징은 실러가 비가 형식의 작품에 자연미를 찬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6 각운의 시 형식은 세계의 변화와 인간의 삶에서 나타나는 슬픔을 유장하게 묘사하는 데 적격입니다. 그렇기에 비가 형식으로 전원의 찬란함을 기술하는 실러의 시도는 무척 기이한 것입니다. 실러는 당시에 소피 모로Sophie Moreau의 시 「슈바르츠부르크」 그리고 고트로프 하인리히 랍Gottlob Heinrich Rapp의 작품 「호엔하임의 정원」을 읽고, 자신도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시작품으로 정갈하게 묘사하려고 작심했습니다. 원래의 본질을 상실한 자연의 의미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른 한편 베르길리우스 이후로 끊어진 전원시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비가 「산책」은 단순히 자연미를 찬양함으로써 고대의 아르카디아의 무위 내지는 소박함을 따르려는 베르길리우스의 의향과는 다른 작품입니다. 작품의 주제는 오히려 인간의 문화가 원래의 자연이라는 근원적 특성을 상실하고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장작 루소의 문화적 비관주의와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실러의 비가를 자연과 문명이라는 두 가지 영역에 가교를 내리려는 고전주의적 의향을 담고 있는 “사상시Gedankengedicht”라고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물론 작품의 중간 부분에서 문명사회에 던지는 혹독한 비판 내지는 서슬 푸른 발언이 우리를 섬뜩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산책」은 근본적으로 바이마르 고전주의가 추구하는 “조화로움Harmonie”, “여유Muße” 그리고 “온유함Milde”을 도출해내려고 합니다.

 

실러는 작품의 전반부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합니다. 뒤이어 인간의 역사를 비판적인 톤으로 서술합니다. 이는 “끔찍한 장소의 유형Topos des locus terribilis”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신들의 도움으로 활기 넘치는 마을을 건설하고, 강을 구획하며 나라를 건설하였습니다. 수렵인들은 농부로 특정 지역에 정착하고, 함께 거주하게 됩니다. 농토에 대한 집착은 사유권을 형성하게 되고 결국에는 가부장 사회 관습 그리고 국가를 형성시킵니다. 이로 인해서 “황무지 너머 추방당”하는 자들은 여성들이었습니다. (69행) “철의 시대 이후로 사랑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지.” (42행) “광야의 유복한 민족들” (55행)은 “자유롭게 눈뜨지 못하고 있”으며, “무심하게 순환되는 수확”만 갈망할 뿐입니다. (57행)

 

모든 게 도시로 변화되고 상업, 교육, 학문이 문화사적으로 발전하지만, 시인의 눈에는 사람들이 깨어나지 못한 것처럼 비칩니다. 법과 질서가 정착되면, 권력 구도는 더욱 튼실해집니다. 시인은 “하인의 복종심이 지배자를 만드는” 것 같다고 토로합니다. (66행) “세력 다툼은 거대한 힘을 낳”게 됩니다. (74행) “경애하는 조상의 뼈가 이곳 귀한 땅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고려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를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는 도덕과 예술을 발전시켜 다른 지역에 찬란한 문화를 퍼뜨렸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이웃과 국가의 영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한 치의 땅을 더 차지하려고 합니다. 이로써 남자들은 전쟁터로 향해 싸우려 합니다. “여자들은 신의 제단에서 주저앉아 울면서 기도한다,/ 반드시 승리를 구가한 다음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라고.” (93 – 94행)

 

“방랑자여, 스파르타로 가려는가, 우리가 법이 명령한 대로/ 이곳에서 싸우다 전사했음을 분명히 보았노라고 전해다오.” (97 – 98행) 기원전 5세기에 발생한 페르시아 전쟁 당시에 스파르타의 군인 300명은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습니다. 인용문은 레오니다스 왕이 전사하기 전에 남긴 발언입니다. 이 발언은 이후의 역사에서 참전을 부추기는 발언으로 수없이 인용되었습니다. 소설가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은 단편 「방랑자여, 가려는가, 스파Wanderer, kommst du nach Spa」를 집필하였습니다. 여기서 “스파르타”가 아니라, “스파”로 표기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모병하는 인간은 자신이 말을 끝내기 전에 사망해버립니다. 그렇지만 실러의 시구는 하인리히 뵐처럼 반전사상 내지는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시구를 남긴 게 아니라, 조국애와 희생정신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묘사했습니다. 이는 이어지는 구절에서 잘 나타납니다. “사랑받는 자들이여, 편히 쉬거라! 너희가 흘린 피에서/ 올리브나무가 자라고, 귀한 싹이 활발히 터져 나온다.” (99 – 100행)

 

인류는 상업과 예술을 부흥시키고 학문을 발전시켰습니다. 첫째로 사람들은 시장을 통해서 자신의 재화를 물물교환합니다. “동족 사람의 부지런함이 낯선 이방인의 나라로 옮겨지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낯선 선물에 마냥 쾌재를 부른다.” (112 – 113행) 시장이 붐비고, 여러 가지 물품들이 교환됩니다. 인류 문명은 무엇보다도 교역과 상업을 통해서 풍요로움을 확장한 셈입니다. 둘째로 조각 예술과 건축 문화를 찬양합니다. “조각가들은 신을 모방하여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133행) “끌에 의해 영혼을 얻은 암석은 자신의 감동을 말하고,/ 인공의 하늘은 날씬한 이오니아의 기둥 위에 휴식”합니다. 그리스의 많은 신전은 찬란한 건축 예술의 진가를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셋째로 인류는 학문의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그윽한 밀실에서 컴퍼스는 의미심장한 방법을 골똘히/ 설계하고” (129 – 130행), “익숙한 법칙에서 우연히 어떤 소름 돋는 기적을 찾”으며 (133행), 정신과학에서 의미심장한 문헌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정치적 영역에서 부자유가 횡행하고, 인간 삶에서 거짓이 득세했다는 사실입니다. “진실이 대화에서 사라진다. 삶에서 유래하는 믿음과/ 충직함, 맹세하는 자의 입술에서 거짓이 발설되고 있다.” (149 – 150행) 배신자가 속출해서 사람들 사이의 우정을 욕보이고, “사고는 더럽힌 가슴에 의해 즉시 매물로 출시되고” 사랑은 신의 자비롭고 고결한 감정을 팽개쳐버린 지 오래됩니다. (155행) 다음과 같은 시구에는 실러의 정치관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법의 유령이 왕들의 의자에 마냥 머물고 있네./ 끔찍한 미라는 수년, 아니 수백 년 존속될 것이다.” (162 – 163행) 이 구절은 장작 루소의 자연법사상 내지는 문화적 비관주의를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은 자연의 조화로움을 어기고 법을 잘못 실천하여 세상을 거짓과 배신으로 이어나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인이 기대하는 것은 자연의 본원적인 특성이 인간 사회에 뿌리내리는 일입니다. 자연은 “마치 쇠창살을 파괴하고 빠져나오는 호랑이처럼” (166행),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더 이상 범행을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며, 가난과 폭정이라는 궁핍함을 완전히 극복하게 되리라고 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실러의 갈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비유적으로 말하면 “누미디아의 숲”입니다. 누미디아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까지 존재하던 북아프리카의 왕국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기원 후 5세기에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실러는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그대들이여, 제발 장벽을 걷고 수인들을 석방하라!/ 숲이여 부디 구원받아서 버림받은 평지로 되돌아오라!” (171 – 172행) 실러의 시대에 독일 땅은 수많은 공국으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실러는 이 구절을 통해서 부자유와 폭정이 사라지기를 애타게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작품 173행에 이르러 시인은 문명 그리고 사회를 더 이상 비판하지 않고, 어떤 백일몽에서 깨어납니다. “나는 혼자인가? 오 자연이여! 오직 그대의 품속에서/ 그대 심장과 마주하고 싶다. 그건 나를 오싹하게 만들고/ 삶의 무거운 모습으로 감동 안기는 꿈에 불과했을까.” (185 – 187행) 이때부터 시인은 경건한 자연을 노래합니다. 자연은 시인이 어릴 때 그리고 청년이었을 때 한결같이 신뢰하는 마음으로 시인을 성장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실러는 마지막에 이르러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만약 자연이 이전처럼 시인에게 “항상 같은 젖가슴으로 영양을 공급”해준다면 (197행), 인류는 “가까운 종족”이든 “먼 곳의 종족”이든 간에 “단합하여” (199행) 평화롭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호메로스의 태양”은 우리에게도 환한 “미소”를 보내리라고 실러는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