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방박사는 누구인가?: 친애하는 T, 오늘은 미셸 투르니에가 1980년에 발표한 소설 『가스파르, 멜키오르 그리고 발타사르』를 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동방박사는 마태오의 복음서 2장에 세 명의 왕으로 등장하는 성자들입니다. 이들은 별을 관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신약 성서에는 “성자” 내지는 “왕들”이라고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아가 동방박사가 몇 사람인지도 불분명합니다. 사실 동방박사의 이야기는 기원후 3세기에 광범하게 퍼지게 됩니다. 6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이 가스파르, 멜키오르 그리고 발타사르라고 언급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아무도 동방박사들이 몇 명인지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기원후 7세기에 시리아 지방에서는 동방박사가 12명이었다는 전설이 퍼졌습니다. 어쨌든 로마 가톨릭교회는 동방박사가 “신의 출현 Epiphania”을 칭송하려고 모여든 “성자”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이로써 동방박사의 축제는 1월 6일에 거행되게 됩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축제를 치르지 않으므로, 다만 현자의 출현을 경배할 뿐입니다. 그런데 러시아 정교는 성탄절 다음 날인 12월 26일에 동방박사의 축제를 치릅니다.
2. 투르니에의 동방박사: 투르니에의 『가스파르, 멜키오르 그리고 발타사르』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들은 제후 아니면 왕자의 신분을 지니고 있는데, 순례자의 신분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향해 순례를 떠나야 했는데, 여기에는 제각기 다른 동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네 번째 동방박사 타오르에 관한 행적에 관해서 작가는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타오르는 인도의 망갈로르 지역을 다스리는 왕자인데, 투르니에는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른바 픽션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일단 투르니에의 소설의 내용을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동방박사는 카스파르입니다. 카스파르는 아람어에 의하면 “보물 창고지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수단 지역인 메로이Meroë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며 흑인입니다. 어느 날 그는 하늘에서 기괴한 혜성을 목격하게 됩니다.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살별의 머리 부분은 자신이 매우 아끼는 금발의 노예, 빌틴느의 모습과 빼박은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카스파르가 그미에게 사랑을 고백했을 때, 빌틴느는 머뭇거리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는 백인 노예인 갈레카라고 대꾸합니다. 이로 인해서 카스파르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다른 한편 그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것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굴욕감이었습니다.
3.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갈망이 여행을 떠나게 하다: 물론 메로이의 왕으로서 무력으로 그미의 몸을 차지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카스파르는 아름다운 빌틴느가 자신을 애호하고 사랑해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욕구가 한마디로 물거품이 된 것이었습니다. 카스파르는 자신이 흑인이므로 사랑받지 못한다고 자책합니다. 그미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하고 자신을 경배하라고 요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카스파르는 다음과 같이 절규합니다. “사랑이 내 가슴 한복판에서 내 민족을 배신하게 하였구나. l'amour m'a fait trahir mon peuple au fond de mon coeur.” 그리하여 카스파르는 자신의 천문학자의 조언을 귀담아 듣습니다. 천문학자는 왕이 혜성을 따라가면, 왕이 바라는 바를 얻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여행 가방에다 “유향encens”을 챙겨 넣습니다. 언젠가 카스파르는 자신의 노예 빌틴느가 갈레카와 묘한 향이 퍼지는 규방에서 살을 섞는 것을 보았는데, 이때 그들이 사용한 향이 바로 유향이었던 것입니다.
4. 상의 금지: 두 번째 동방박사를 언급하기 전에 유대인 관습 가운데 하나를 거론하겠습니다. 유대 민족들은 살아 있는 인간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저주하곤 하였습니다. 어떠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얼굴, 즉 “브누엘Peniel”을 그림으로 남기지 말라는 게 유대인들의 오래된 관습이었습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인간은 신의 형상에 따라서 만들어진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신의 모습은 근원적으로 인간과 다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천국에서 추방당함으로써 안타깝게도 이러한 고유한 원래의 일원성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게 됩니다. 즉 인간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로마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이 감히 신이 되려고 의도하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의 회화 예술이 전혀 발전하지 못했으며, 대신에 음악 예술만이 찬란함을 구가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상의 금지 때문이었습니다. 카스파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30킬로 떨어진 지역 에브론Hebron에서 우연히 발타사르라는 사내와 만나게 됩니다. 발타사르는 이라크 바그다드 남동부에 있는 지역, 니푸어를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 발타사르는 “바빌로니아에서 바알 신을 모시는 자”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는 학문과 예술을 사랑하는 권력자였습니다. 에브론에서는 발타사르가 귀한 문헌 등과 같은 골동품 수집광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사실 그가 모은 초상화 그리고 고대 물품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았습니다.
5. 발타사르의 조각품이 산산조각이 나다: 어느 날 발타사르는 하나의 조각품을 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어깨에 날개를 달고 있는 기사에 관한 조각품으로서 마치 나비와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발타사르는 기사의 조각품에 매료되었습니다. 날개를 달고 있는 기사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자신과 매우 흡사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발타사르는 조각품에다 “발타사르 기사”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니푸어의 궁궐에서는 어느 날 아침에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발타사르 기사의 날개가 그만 파괴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소장품을 전시한 박물관, “발타사레움Balthasareum”의 내부로 침투하여, 박물관의 많은 소장품을 마구잡이로 훼손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 박물관은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사랑하는 젊은 애호가들의 모임인 “나르시시Narcissi”라는 단체의 도움으로 발타사르에 의해서 어렵사리 공을 들여 만든 전시장이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 광신도의 소행이었습니다.
6. 발타사르 예루살렘으로 떠나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 발타사르는 어느 날 하늘에서 혜성이 지나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혜성의 모습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나비 날개의 놀라운 형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발타사르는 바로 그때 가방을 챙겨서 혜성이 향하는 예루살렘으로 여행하기로 결심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면, 자신은 반드시 기상천외한 그림, 아니면 조각품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희구합니다.
예루살렘의 어느 지역에 보관된 어느 예술 작품은 분명히 기독교 문화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보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은폐된 인간의 본질 그리고 신의 영원한 위대함을 용해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발타사르는 가방에 “몰약myrrhe” 한 덩어리를 넣어둡니다. 몰약은 감람나무과의 몰약수 또는 합지 수에서 추출된 약재입니다. 그것은 의학적으로 뭉친 혈액을 풀어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부종을 없애 통증을 완화하며 새살이 돋아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몰약 한 덩어리는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그토록 와해시키던 갈등과 대립을 해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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