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보부아르의 "제 2의 성"

필자 (匹子) 2023. 1. 17. 09:20

 

 

시몬느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1908 – 1986)의 작품들은 불문학 그리고 철학의 영역에서 사르트르에 가려서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서 보부아르의 문헌 『제 2의 성 Le deuxième sexe』(1949)을 논하려고 한다. 작품은 『사실과 신화 Les faits et les mythes』그리고 『생생한 기억 L’expérience vécue』라는 두 권의 책 속에 실려 있다. 작품은 한마디로 여성의 동등권을 강하게 주장한다. 작품에서 보부아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여성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 어떠한 생물학적, 심리적 그리고 경제적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의 품속에서 여성이라는 인간 존재를 마음대로 규정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On ne naît pas femme: on le devient. Aucun destin biologique, psychique, économique ne définit la figure que revêt au sein de la société la femelle humaine

 

 

 

여기서 보부아르는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기 위해서 생물학, 정신 병리학 그리고 정신분석학 등에 의거하여 일차적으로 여성의 몸과 마음의 특수성을 규정하려고 한다. 뒤이어 수많은 자료에 근거하여 사회학, 역사학 그리고 문학 등에 나타난 여성의 상을 분석해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의 상이 수많은 세월을 지나치면서 신화 속에 그리고 여러 법령 속에서 미화되거나 경멸당해온 것은 사실이다. 여성은 보부아르에 의하면 인간의 오랜 역사 속에서 “다른 존재”로 취급받아 왔다. 남자는 절대적 존재이고, 주체이며, 본질적 존재로 용인된 반면에, 여성은 남자를 보완하는 존재, 객체, 본질과는 무관한 존재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자연은 보부아르의 견해에 의하면 여성을 비-독립적 존재, 부속물, 남성에 종속되는 존재로 취급하라고 주장한 바 없으며, 한 번이라도 여성들을 저주한 바 없었다. 오로지 “다른 존재”로서의 여성은 넓은 의미에서 남성 중심적인 관습, 도덕 그리고 법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그리고 임의적으로 각인되었을 뿐이다.

 

여성의 운명은 말하자면 남성들과 그들의 지배 구조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여성들이 자유를 구가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면, 그들은 역사 속에서 이질적 인간군으로 취급당하고 박해당했다. 가령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마녀사냥을 생각해 보라.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고 사회적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20세기 초에 강하게 나타난 여성 해방 운동의 이상은 보부아르에 의하면 그저 절반 정도 이룩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가령 역사적 유물론이 여성의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제 현실에서 여성의 인권을 향상하는 데 상당히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성의 동등권은 실제 현실에서 그리고 기존 사회주의 국가에서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다.

 

시몬느 보부아르는 두 번째 장에서 인간의 심리적 물리적 발전을 거론하면서 여성의 사회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구명한다. 지금까지 사회는 젊은 처녀들을 어떤 특수한 방식에 의해서 교육했는데, 이러한 교육 방식에는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보부아르는 진정한 해방을 위한 여러 가지 전제조건 그리고 토대 등과 관련되는 교육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제언은 장 작 루소 이후로 이어져 온 남성과 여성 교육의 구분 내지는 차이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부아르가 남성과 여성의 삶의 방식 그리고 사고의 방식이 무조건 동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은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를 드러내는데, 이를 완전히 무시하자고 획일적으로 교육 과정을 마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다만 여성 역시 자신의 품위를 인정받아야 하며,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대접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여성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주체로 살아가고 자유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취급받게 되면, 이는 차제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남성들을 사회적으로 해방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골치 아픈 문제 또한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주어진 사회에서는 남녀의 성 차이로 인해 수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어 있다.

 

사람들은 보부아르의 작품을 논하고, 때로는 작품을 공격하기도 했다. 남녀평등을 위한 문제점 그리고 해결 방안이 논쟁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보부아르는 책을 통해서 출생률의 조절이라든가, 낙태를 합법화시키는 당국의 조처에 대해서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에서 해결되지 않고 사회적 이슈로 나타나고 있다. (가령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에서 달리 내세우는 낙태에 관한 문제를 생각해 보라. 여성이 자의에 의해 자식을 출산하거나 낙태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란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목숨을 잃은 여성 그리고 그 이후의 일련의 사태를 생각해 보라.) 기실 남자와 여자는 인위적인 관습과 전통적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서 만나서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보부아르의 지론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보부아르의 책을 마구잡이로 비난하였다. 첫째로 보부아르는 책을 통해서 남성을 증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보부아르가 남성성을 폄훼하고 특정 남성들을 비아냥거린 경우는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작가는 다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의 개인적 사회적 입지 때문에 여성에게 해악을 저지르는 역사적 남성들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가한 바 있다. 둘째로 보부아르는 무조건 참고 살아가는 여성들을 완강하게 비난하는데, 이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었다. 물론 작가가 가부장적 남성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여성들 그리고 “현모양처”와 같은 수동적 여성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사실이다. 보부아르의 논점이 완강하고 급진적이지만, 집필의 의향과 목표를 고려할 때 남성들 역시 이 책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자유와 책임 그리고 자기 자신의 고유한 의사 결정이야 말로 오늘날 남녀 모두에게 필요한 성숙한 인간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제 2의 성』은 오늘날 (남녀) 평등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초석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사이의 계약 결혼에 관해서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하려고 한다. 두 사람은 혼인하기 전에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로 시민 사회의 일부일처제는 용납될 수 없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상대방의 성적 자유를 인정한다. 둘째로 어떠한 경우에도 비밀은 용인될 수 없다. 자유 결혼의 계약은 처음에는 2년으로 제한되었지만, 사르트르가 죽을 때까지 연장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유연애의 이상이 멋지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르트르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젊은 여인들에게 강하게 집착했다. 그의 행동은 마치 돈 후안과 같은 마초를 방불케 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여성을 유혹하여 그미를 탐한 다음에 “멋지게” 헤어지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멋진 이별”이란 하룻밤의 연인 관계를 아무런 잡음 없이 끊어내는 일을 가리킨다. 사르트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별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여성을 유혹하여 동침하는 일보다 어려운 것은 동침 후에 자신에게 집착하는 여성과 이별하는 일이니까.

 

어쩌면 사르트르는 사랑을 갈구한 게 아니라, 오로지 성만 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엽색 행각을 보바르에게 속속들이 고백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자유연애의 계약을 어긴 것은 바로 사르트르였다. 사르트르는 자신이 홍등가를 방문한 것까지 시시콜콜 그미에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에 보부아르는 심리적 고통을 느꼈다. 적어도 지식인이라면, 최소한 스스로 제어할 수 있으리라고 그미는 지레짐작했다. 나중에 프랑스의 많은 페미니스트는 두 사람 사이의 계약 결혼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시몬느 보부아르라고 말하면서 그미를 두둔했다. 물론 시몬느 보부아르 역시 특정 남자와 깊은 관계에 빠지기도 했다. 가령 연출가이자 영화 제작자였던 클로드 란즈만Claude Lanzmann은 자신이 1952년부터 1958년까지 시몬느 드 보부아르와 동거했다는 사실을 먼 훗날 언론에 공개하였다. 그미는 일시적으로 동성연애자로 생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미의 자유분방한 삶에는 한 가지 기준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고, 이러한 다짐의 기준은 오로지 사랑하는 감정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옹프레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모두 성 착취자들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칠 때 보부아르는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을 사르트르의 침대 속으로 밀어 넣았다는 것이다.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그림으로 읽는 철학의 역사Crocodile d'Aristote. Une histoire de la philosophie par la peinture』라는 책에서 그렇게 주장하였다. “많은 여자들이 두 사람의 노리개화로 인한 고통을 증언해준다. 이 성 약탈자 커플은 페미니스트라기보다는 봉건주의자였다. 영주들은 가신들의 육체를 마음껏 탐했다.” (고명섭: “프랑스제 이론 겨냥한 프랑스 철학자의 독설”, 한겨레신문 2023년 1월 15일자) 비앙카 랑블랭 (Bianca Lamblin, 1921 2011)점잖지 못한 소녀의 회상Mémoires d'une jeune fille dérangée(1994/ 2006)이 사르트르-보부아르 커플의 성적 쾌락에 동원된 노리개의 실상을 상세히 알려준다. 이들의 덫에 걸리는 처녀들은 바보로 여겨질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고백하지 못하는 앵무새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통상적인) 결혼 생활은 부부 사이의 관계를 지루하게 만든다. 그러나 계약 결혼 (자유연애)는 질투의 아픔과 배반으로 인한 고통을 당사자에게 안겨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