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박설호: (5) 사랑은 이별을 연습하는 격정적 트레몰로. 슈테핀의 시

필자 (匹子) 2022. 10. 30. 11:33

5. “사랑은 이별을 연습하는 격정적 트레몰로”

 

: 지면 관계로 다른 작품을 살펴볼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슈테핀의 시적 주제를 요약해주시지요?

: 네, 슈테핀의 시작품은 고통에 처한 여성의 뒤엉킨 사랑의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거기에는 사랑을 둘러싼 부차적인 복합적 증상들이 뒤섞여 있지요. 물론 슈테핀은 요절했지만, 그미가 남긴 소네트는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합니다.

: 인간은 이성적 존재지만, 다른 한편 본능적 동물이지요?

: 네, 인간의 몸은 지렁이처럼 반응합니다. 그런데 주어진 현실은 인간 동물의 사랑을 연속적으로 방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를 내고, 눈물을 흘리며, 누군가를 질시하며, 초조한 불안으로 어쩔 줄 모르지요.

 

: 원래 분노는 폭력을 동반하고, 미움은 히스테리를 불러일으키며, 슬픔은 자살 출동을 야기하며, 집착은 불안을 동반합니다.

: 왜곡된 사랑 내지는 사랑의 상실이 그러한 부차적 증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네 가지 잘못된 증상들을 바로 잡게 하는 것 역시 사랑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슈테핀은 질투와 소유욕을 떨친 큰 사랑의 정신을 견지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로지 임의 행복을 빌며, 헌신하는 마음이 바로 “큰 사랑”, “대아Atman”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희망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사랑을 “어떤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향하는 여행”이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 인간이 죽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 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슈테핀의 삶과 문학을 고려한다면 사랑이란 “이별을 연습하는 격정적 트레몰로”로 이해되지 않습니까?

: 놀라운 지적이로군요. 충분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슈테핀의 죽음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 네, 1939년 독일 군이 스칸디나비아반도를 침공했을 때, 브레히트와 식솔들은 핀란드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때 슈테핀의 건강은 몹시 나빠집니다. 1941년 4월에 브레히트와 그의 식솔들은 소련으로 입국하여 멕시코 비자를 신청하였습니다.

: 힘든 망명의 과정이었군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려면 소련 땅을 지나쳐야 했지요?

: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자는 슈테핀 밖에 없었습니다. 소련 입국할 때 브레히트의 원고들이 하마터면 당국에 빼앗길 뻔합니다. 이때 슈테핀은 통역하면서 귀중한 원고가 몰수당하지 않도록 조처합니다.

 

: 소련도 안심하게 머물 나라는 아니었군요.

: 그렇습니다. 소련 작가 회의에 소속된 문우들은 가능하면 빨리 소련을 떠나라고 브레히트에게 조언하였습니다. 독일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무시하고, 소련 침공을 계획했기 때문입니다. 슈테핀은 1941년 6월 4일 모스크바의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바로 이때, 브레히트와 식솔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 당시에 브레히트는 그미의 부음 소식에 절망감에 사로잡혔지요?

: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1941년 이후 브레히트가 집필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아요. 1930년대는 브레히트에게는 망명의 시간이었지만, 찬란한 결실을 가져다준 나날이었습니다. 슈테핀의 도움이 지대했지요. 브레히트의 시 한 편 인용하겠습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너: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