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박설호: (4) 사랑은 이별을 연습하는 격정적 트레몰로. 슈테핀의 시

필자 (匹子) 2022. 10. 25. 21:03

4. “생각해 봐, 당신이 살 섞었던 모든 여자가”

 

: 임에 대한 헌신은 문학 작품 집필에서도 나타납니다. 만약 슈테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브레히트는 많은 명작을 완성하지 못했겠지요?

: 그렇습니다. 1930년대에 슈테핀은 한스 아이슬러의 말대로 “브레히트의 가장 귀중한 협력자”였습니다. 가령 「호라치와 쿠라치」, 「둥근 머리와 뾰족 머리」, 「제 3제국의 공포와 참상」, 「카라 부인의 무기」, 「아르투르 우이의 저지할 수 있는 상승」, 「주인 푼틸라와 하인 마티」 등과 같은 놀라운 수준의 드라마 작품들을 생각해 보세요. 슈테핀은 연인을 위해서 직접 창작의 모티브를 제공했고, 원고를 세심하게 정리했습니다.

 

: 자신의 창작보다도 임을 도와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군요.

: 네. 그밖에 슈테핀은 탁월한 외국어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슈테핀은 유럽의 각 나라에서 간행되는 문학 서적들을 번역하였습니다. 이는 오로지 애인을 도우려는 일념에서 나온 행위였습니다. 병약한데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 브레히트를 둘러싼 세 여인의 관계는 어떠했는지요?

나: 그들 모두 내적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브레히트의 아내, 헬레네 바이겔은 결혼 전에 이미 브레히트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934년 4월 마르가레테 슈테핀은 브레히트의 집에서 불과 오백 미터 떨어져 있는 여관 “스텔라 마리스”에 기거하게 됩니다. 브레히트는 처음에 이를 함구했습니다. 바이겔은 나중에 이 사실을 접하고 격노했지요. 그 이유는 폐결핵에 걸린 처녀가 가까이 살면, 자식들의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아들, 슈테판 브레히트 (1924 – 2009)는 10살이었고, 딸, 바르바라 브레히트 (1930 – 2015)는 4살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바이겔이 당시에 화를 낸 것은 성 문제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의 건강 때문이라는 말이네요?

: 그렇습니다. 유대인 집안에서 자란 바이겔은 처음부터 일부다처제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1950년대에 브레히트가 26세 나이 어린 이조트 킬리안 (1924 - 1986)과 동거에 들어갔을 때, 바이겔은 끝내 브레히트와 결별을 선언합니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는 법이지요. 스벤보르에 체류 시에 브레히트는 매일 아침 루트 베를라우의 집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베를라우는 사진 작업 외에는 놀라운 문학적 재능을 드러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미는 브레히트가 죽을 때까지 그의 곁에 머물었습니다. 그런데 베를라우는 슈테핀과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 사랑하는 임이 다른 여자 (혹은 다른 남자)의 품이 있다고 생각하면, 당사자의 가슴은 쓰라려 오는 법이지요.

: 그렇습니다. 누구든 간에 사랑하는 임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요. 세 여인은 제각기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나름대로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생각해 봐, 당신이 살 섞었던 모든 여자가

한꺼번에 모여서 당신의 침대로 다가온다고,

헉, 그들 가운데 친절한 여자는 거의 없을 거야.

누구도 재회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겠지.

 

허나 모두가 말없이 근엄하게 서 있을 테지.

그들 모두 한 사람씩 네게서 하룻밤의 향락을

원할 테지, 만약 당신이 한 여자를 만족시킨다면,

그미는 옆으로 물러나, 다음 여자를 가리키겠지.

 

그들은 탐욕적으로 다가갈 거야. 그럼 당신은

녹초가 되겠지. 지금까지 당신이 즐기려고 선택했던

여자들은 당신과 사악한 유희를 계속하겠지.

 

나 역시도 여자들 사이에 줄을 서서

부끄러움 없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가갈 거야.

당신은 가련하고 병든 채 창백하게 누워 있겠지. (박설호 역)

 

Stell dir vor: es kommen alle Frauen

Die du einmal hattest, an dein Bett.

Ach, die wenigsten sind jetzt noch nett.

Keine, denkst du, ist mehr anzuschauen.

 

Aber alle stehen streng und schweigend.

Eine jede will von dir heut nacht

Ihren Spaß. Und wenn du ihr's gemacht

Tritt sie seitwärts, auf die nächste zeigend.

 

Gierig langen sie dich an. Verloren

Bist du. Die du einst zum Spaß erkoren

Treiben mit dir bösen Spaß.

 

Selbst seh ich mich in der Reihe stehen

Sehe mich ganz schamlos zu dir gehen.

Und du liegst armselig, krank und blaß.

 

너: 이 작품은 이른바 “복수의 소네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슈테핀도 일시적으로 질투심에 사로잡혔군요. 작품은 성적인 친밀성과는 전혀 다른 섬뜩한 매춘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매춘이라니요? 음탕한 사내를 혼내주기 위한 짓거리에 해당하지요. 시적 자아는 애인이 과거에 사랑했던 많은 여인들을 “사악한 유희”의 장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다음에 애인에게 가학적으로 복수합니다. 익명의 여성들은 합심하여 왕년에 자신들을 성 노리개로 삼은 한 남자를 차례로 농락하고 있습니다.

 

: 차례로 한 남성을 겁탈하여 “녹초”로 만들다니, 갑자기 닭살이 돋는군요.

: 그런가요? 시민 사회는 결혼을 통해서든, 매춘을 통해서든 간에 여성들에게 자기희생을 강요합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이 시에 묘사되고 있는 여성들의 보복 행위는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지요.

: 그밖에 슈테핀이 복수의 소네트를 브레히트에게 발송한 시점은 1933년 7월 8일이었습니다.

: 이 시를 읽으면, 슈테핀이 처했던 삶의 정황을 떠오릅니다, 그미는 이미 두 번씩이나 폐 수술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절망감이 자유분방한 애인에 대한 복수심을 일시적으로 자극했을 수 있습니다.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