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서로박: 테니오르의 이른 여자

필자 (匹子) 2022. 11. 16. 06:50

이른 여자

 

1 만일 그미가

 

2 코너를 돌아오면

 

3 14세의 나이로

 

4 분홍 스웨터로

 

5 약간 더럽게

 

6 그미의 가슴은

 

7 주먹 볼록하다고

 

8 사내애들이 말하듯

 

9 만일 그미가

 

10 코너를 돌아오면

 

11 풍선껌 불다

 

12 입 앞에서

13 퍼억 

(Die Fastfrau von Ralf Thenior: “Wenn sie/ um die Ecke kommt/ mit ihren 14 Jahren/ und dem rosa Pullover/ etwas schmuddelig/ an den Brüsten/ hat schon ’ne Handvoll/ sagen die Jungs/ wenn sie/ um die Ecke kommt/ mit der Kaugummiblase/ vor dem Mund/

PLOPP”)

 

「이른 여자」는 연애 시이다. 이 시는 맨 처음에 다음의 문헌에 발표되었다. (R. T. Traurige Hurras. Gedichte und Kurzprosa. Mit dem Nachwort von Helmut Heißelbüttel, München Goldmann 1979). 나중에 얀 한스 (Jan Hans)는 1979년에 시선집, "허나 나는 너에게 취해 있다. 연애 시 (Aber besoffen bin ich von dir. Liebesgedichte)"을 간행했는데, 테니오르의 「이른 여자」를 재수록하였다.

 

「이른 여자」는 현대적 감각을 담고 있는 연애시이다. 이는 작가를 고려할 때 그리고 독자를 고려할 때 분명히 드러난다. 테니오르는 젊은 시인이며, 상기한 시선집은 사춘기의 세대들을 위해 만들어진 앤솔로지이다. “그미”는 더 이상 소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숙된 여자도 아니다. 따라서 그미는 14세의 이른 여자이다. 시인은 그미를 13행의 시구에 간결하게 담았다.

 

 「이른 여자」는 우리의 호기심을 부추긴다. 왜냐하면 시의 내용은 독자의 기대감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중간 부분에 첨가된 표현 (제 7 - 9행)을 제외한다면, 시는 조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건 문장은 독자에게 어떤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 말하자면 그미는 “코너를 돌아” 급작스럽게 출현한다. 우리는 그미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그미가 “분홍 스웨터”를 걸쳤으며, 그미의 “주먹 볼록”한 젖가슴을 연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째서 그미의 스웨터를 “약간 더럽”다고 묘사했을까? 이러한 물음은 시의 여백 속에 도사린 상상 공간을 가설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젖가슴의 “주먹 볼록함”은 제 3자, 즉 “사내애들”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여기서 다음의 사항은 얼마든지 추론 가능하다. 그들은 분명히 그미와 어떤 만남을 가졌다는 사항 말이다. 그렇지만 그게 어떠한 만남이었는지 명확히 간파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미가 몇 명의 “사내애들 (Jungs)”과 무언가를 체험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그미의 “분홍 스웨터”가 더러워졌겠는가? 어두운 골목의 담에 기대어 나누는 키스, 혹은 풀밭에서의 애무는 스웨터를 때 묻게 한다. 여기서 스웨터는 분명히 물적 증거가 아닌가? 스웨터가 “약간” 더러워진 것으로 미루어, 그미 역시 사내애들과의 사랑 (혹은 한 사내애와의 사랑?)에 어느 정도 적극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사랑에 대한 그미의 목표가 성취되었는가? 테니오르의 시는 이에 관해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제 9행에서 13행의 시구 역시 조건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에 관한 그미의 이야기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다만 “퍼억”이라는 풍선껌 터지는 소리로 끝을 맺는다. 독자의 기대감은 여기서 순간적으로 실망감으로 전환된다. 이른 여자 그리고 관찰자와의 만남은 이 순간 실현되지 않고, 어떠한 갈망도 성취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어떤 극적 긴장감은 다만 풍선껌 터지는 환상으로 사라져버린다.

 

분명히 테니오르의 시는 시각적이면서 아울러 청각적이다. 「이른 여자」는 하나의 시각적 장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으나, 이러한 장면은 풍선껌 터지는 소리, 즉 청각적으로 차단된다. 이로써 시인은 예컨대 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Lichtenstein)의 음악과 미술을 혼합시킨 대중 예술적인 요소를 보여준다. 그것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일회용 시 (Wegwerf-Lyrik)”로 간주될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른 여자」는 현대인들이 행하는 사랑의 유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이탈리아의 소설가, 모라비아 (A. Moravia)의 소설 "권태 (La noia)" (1960)가 제각기 다른 계층에게 여러 다른 의미를 불러일으키듯이, 테니오르의 시 역시 우리에게 다양한 의미를 촉발시킬 수 있다.

 

상기한 내용을 고려할 때 대문자로 표기된 의성어, “퍼억”은 그 자체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로 그미는 성 (性)이라는 은밀한 영역에 침투했지만, 은폐된 무엇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사랑과 성은 그미에게 더 이상 신비롭지는 않지만, 그미는 아직 그곳을 샅샅이 탐색하지 못했다. 둘째로 그미는 아직 사랑의 완전한 성취를 맛보지 못했다. 따라서 “퍼억”이란 절망이나 환멸을 암시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실패 속의 가능성으로서의 어떤 실망감 내지 일 라운드의 패배뜻한다. 셋째로 “퍼억”은 -두 번째 사항을 고려하자면- 그미의 미래를 유희적으로 암시해주는 소리로서 이해될 수 있다.

 

그래, 풍선껌 터지는 소리는 그 자체 발설되지 않은 성적 긴장감을 지칭한다. 그것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으며, 다만 육체 언어, 즉 표정과 제스처로 드러날 뿐이다. 그래, 그 소리는 성적인 긴장감의 표현이다. 발설되지 못한 질문과 무언 (無言)의 대답, 사랑의 요구와 자기 방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 그리고 자신을 감추는 일 사이의 긴장감을 생각해 보라. 모든 것은 “이른 여자”에게는 아직 완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

 

랄프 테니오르는 “나는 나를 놀라게 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Ralf Thenior: Sätze zu meiner Arbeit, in: Lyrik-Katalog, hrsg., Jan Hans u.a., München: Goldmann 1978, S. 431). 이를 고려할 때, 그의 시, 「이른 여자」는 시의 독자에게 유희의 공간 그리고 욕구를 연구하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려는 자신의 의도를 잘 반영하는 작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