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박설호: (3) 사랑은 이별을 연습하는 격정적 트레몰로. 슈테핀의 시

필자 (匹子) 2022. 10. 21. 12:10

3. “사랑을 사랑했을 뿐, 사랑하기는 아니었어요.”

 

: 브레히트의 사생활은 문란했다고 들었습니다.

: 네 그는 망명 생활을 구실로, 한 집에 세 여인과 동거한 적도 있었습니다. 페터 바이스 (1916 - 1982)는 소설, 『저항의 미학』에서 이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슈테핀은 브레히트 뒤에 앉아 속기에 몰두하고, 베를라우는 브레히트 앞에서 마치 성욕을 자극하듯이 손을 그의 무릎에 얹고 있는데, 바이겔은 바깥 정원에서 빨래하는 장면이었습니다.

: 브레히트는 일부다처주의자인가요?

 

: 네. 그렇지만 돈 후안과 같은 진상이라기보다는, 여성들을 애호하는 카사노바를 방불케 합니다. 어느 연구자는 “데리고 놀기 좋은 귀여운 남자”의 전형이었다고 주장합니다.

: 한 가지 사항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제3의 애인까지 거느린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접했을 때 보통 여자라면 질색하며, 거리감을 취했을 텐데요. 어째서 슈테핀은 브레히트를 떠나지 않았을까요?

 

: 여기에는 네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그미는 20대에 이미 폐결핵을 앓고 있었습니다. 브레히트의 도움으로 스위스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오른쪽 허파의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몇 년 더 살지 알 수 없는 형국이었으므로, 사랑하는 임과 백년해로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둘째로 당시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슈테핀은 병원 치료 후에 곧장 독일로 입국할 수 없었습니다. 슈테핀은 독일 공산당 당원이었고, 입국하게 되면 나치에 의해 고초를 겪을 게 뻔했지요. 그래서 파리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 다른 두 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 셋째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입니다. 아픈 몸으로 혼자 망명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브레히트는 교정, 번역 등의 명목으로 풍족한 수당을 지급하였습니다. 여동생 마르타는 출산한 해인 1936년을 제외하면 매년 한 번씩 덴마크를 방문했는데, 이 경비를 부담한 사람은 언니였습니다. 말하자면 슈테핀은 동생과 어머니의 생활비를 부담한 것이었지요. 핀란드 시절 이전에는 슈테핀의 주머니 사정은 비교적 좋은 편이었습니다.

 

너: 네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 브레히트에 대한 애틋한 사랑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슈테핀은 모든 악조건을 무시하며 그를 극진히 사랑했습니다. 물론 브레히트는 그전에도 많은 여성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령 1929년에 그가 베를린에서 헬레네 바이겔과의 결혼을 선언했을 때, 마리루이제 플라이서 (1901 - 1974)는 동맥을 끊었으며, 엘리자베트 하우프트만(1897 - 1973)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였습니다.

: 슈테핀이 1934년에 브레히트의 식솔들과 합류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속사정이 있었군요. 브레히트는 어쨌든 대단한 남자였군요.

 

사랑을 사랑했을 뿐, 사랑하기는 아니었어요.

“이 사내, 조만간 끝내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하며, 이따위 귀찮은 일 증오했어요.

아, 사랑이 욕망 없이 머물게 된다면.

 

지난 4년 동안 오직 단 한 번 느꼈어요,

열망 그 자체, 욕망 그 자체의 감정을.

그게 이런 것인 줄 이전엔 미처 몰랐어요.

허나 꿈속이니, 실제 한 번도 느끼지 못했어요.

 

이제 오셨군요. 과연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매일 밤 나는

그대 곁에 머물기를 갈망하고 있어요.

 

그대가 나를 만지면, 침대에 몸 눕혀야 해요.

수치도 후회도 이를 가로막지 못해요.

그 외에 무엇이 떠오를까요? (박설호 역).

 

Liebe liebte ich, doch nicht das Lieben.

”Ob der Junge nicht bald fertig ist“?

Dachte ich und haßte diesen Mist.

Wenn die Liebe ohne Lust geblieben.

 

Durch vier Jahre spürte ich nur einmal

Selber die Begierde, selber Lust.

Daß es so war, hatt ich nie gewußt.

Doch es war im Traum und darum keinmal.

 

Und nun bist du da. Ob ich dich liebe

Weiß ich nicht. Doch daß ich bei dir bliebe

Wünsch ich jede Nacht.

 

Rührst du mich nur an, muß ich mich legen.

Weder Scham noch Reue stehn dagegen

Und was sonst da wacht.

 

: 상기한 소네트에서는 남녀 사이의 어떤 차이가 엿보입니다. 남녀 사이에 성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것 같습니다.

: 애무할 때 파트너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브레히트에 의하면 성적 만족에 악재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파트너에게 자신을 마치 “맛있는 수프”처럼 음미하라고 요구합니다. 그 대신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다른 남자를 뇌리에 떠올려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브레히트의 이기주의의 시각이 드러납니다.

 

: 이에 비하면 슈테핀은 한편으로는 파트너의 요구를 헌신적으로 수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별반 감흥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브레히트는 슈테핀에게 보내는 소네트에서 “떡치다ficken” 내지 “알까다vögeln” 등과 같은 비속어를 사용했어요.

나: 우리는 두 사람의 관계를 그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성행위가 일상이 되면 “이따위 귀찮은 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슈테핀이 바라는 것은 “매일 밤” 사랑하는 임의 “곁에” 머무는 일입니다. 왜냐면 그미가 갈구하는 것은 다만 사랑의 아우르기였기 때문입니다.

 

: 그미는 사랑을 확인하는 행동을 성행위라고 여긴 것 같아요. 예컨대 육체는 슈테핀의 경우 쾌락의 객체가 아니라, 그 자체 갈망의 장소가 아닐까요?

: 가끔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슈테핀에게는 생식기가 아니라, 몸 전체가 성감대였던 것 같아요. 그것은 판타지의 장소 내지 “열망의 거처abord of desire”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성의 엑스터시는 상대방을 망각하면서 성을 탐하는 데에서 충족되는 게 아니라, 상호 간의 열정을 주고받는 과정의 희열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