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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폰 운루의 "어느 가문"

필자 (匹子) 2022. 8. 24. 07:08

표현주의 극작가, 프리츠 폰 운루 (Fritz v. Unruh, 1885 - 1970)의 운문 비극, '어느 가문 (Ein Geschlecht)'은 단막극으로 씌어져서, 1918년 6월 16일에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하면 비극이 아니라, 시적 드라마로 씌어진 폭력 행위를 담은 극이라고 명명될 수 있습니다. 극작가는 여기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비인간적 결과를 낳는가를 지적하면서, 현세와는 거리가 먼, 더 나은 시대의 상을 작품 속에 투영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신화적 무명 (無名) 시대의 어느 가문에 관한 놀라운 환영입니다.

 

표현주의 극작가, 프리츠 폰 운루 (1887 - 1970)

 

산정의 궁궐에서는 축제가 거행됩니다. 그것은 아주 거칠고 방종한 축제입니다. 흐릿한 상으로서의 어머니는 딸들과 일곱 번째 막내아들과 함께 죽은 네 아들의 무덤가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네 아들은 전쟁터에서 차례대로 전사했습니다. 그 사이에 군인들은 그미의 다섯째 그리고 여섯 번째 아들을 궁궐의 유치장에 묶어두고 있습니다.

 

한 명은 비겁함 때문에, 다른 한 명은 강간 혐의로 동이 틀 무렵에 처형당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가문의 죄를 떨치기 위해서 일곱 번째 막내아들이 형을 집행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막내아들은 두 형의 사형 집행을 행할 수 없다고 강하게 버팁니다. 군인들은 막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그를 전쟁터로 데리고 가서 총알받이로 활용하겠다고 마구 협박합니다.

 

말하자면 세 아들은 죽음의 위협에 처해 있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세계 파괴의 정신”이 도덕과 인간성으로 결성된 모든 단체를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생생히 체험합니다. 다섯째 아들은 그의 친여동생의 성을 열망하고, 여동생은 그의 성적 욕구에 화답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남매가 근친상간을 저지른 셈이지요. 그러나 이로써 문제가 끝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두 남매가 정을 통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에 사로잡힙니다.

 

이때 남매는 어머니를 살해할 계획을 꾸밉니다. 그들은 어머니가 그들 삶의 괴로움을 낳게 한 장본인이라고 말하면서, 어머니를 저주합니다. 다섯 째 아들은 미친 듯이 무덤의 십자가를 뽑아버린 뒤에 교회의 장벽 아래로 몸을 던져 자살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금기로 생각하는데, 아들은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몸을 끊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러한 와중에서 절망과 분노를 느낍니다. 신에 대해 거칠게 항의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그미는 어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계, 새로운 가문과 혈통에 관해서 목청을 높입니다. 어머니는 새로운 가문과 혈통의 이름으로 사령관에게서 지배자의 막대기를 빼앗습니다.

 

“오 어머니의 육체여, 오 육체여, 그렇게 거칠고 저주받은 채 모든 끔찍한 행위를 유발시키는구나./ 그대는 우주 건설 속에서 심장이 되어야 하네/ 그대의 희열 속에서 하나의 혈통을 형성시켜야 하네./ 그것은 지배자의 막대기 사용보다도 더욱 훌륭하구나! -/ 나는 전율을 느끼면서 지배자에게 그걸 돌려주려 하네!

 

이때 사령관은 행여나 그미에게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워 그미를 살해합니다. 그렇지만 그미의 영혼은 가장 나이 어린 아들에게서 살아남습니다. 막내아들은 끔찍한 숙명적 관계 그리고 사회적 불행을 차단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폭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외칩니다. “오 어머니의 입김이여/ 모든 눈사태는 그대에게서 녹아 나오고/ 폭력의 병영 아래로 내려오는 구나./ 아주 무례하게 하늘 위로 건축한 것은 모조리 무너질 것이다.”

 

작품 '어느 가문'은 운루 (Unruh)의 삼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입니다. 두 번째 작품, '광장'은 1920년에, 세 번째 작품 '디트리히'는 1936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로써 운루의 삼부작은 새로운 참여극의 효시로 간주되었습니다. 극작품 집필을 통하여 운루는 무조건 전쟁지향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국가적 망상적 정책을 떨치고, 전투적 평화주의를 강조하였습니다.

 

실제로 제 1차 세계대전에 장교로 참여한 바 있는 운루는 군국주의 그리고 과거의 군주제 질서에 대해 맹렬하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권력자는 우리가 창조한 인류의 축조물을 무의미하게 파괴하고 사람들을 무덤 속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광기를 그냥 참고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운루는 특히 펜타메타, 6강격의 얌부스 (약강격)를 사용하여, 격정적으로 반전론을 펼쳤습니다. 특히 작품 내에서 나타나는 독백은 소포클레스의 리듬을 방불케 하지만, 나름대로 약점을 지닙니다. 즉 무거운 주제를 격앙된 어조로 담고 있는 언어는 아름다운 알레고리의 상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너무나 무거운 주제로 인하여 작품의 부분적인 치장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도 운루의 이 작품은 나름대로 가치를 지닙니다. 비록 작품 자체가 어떤 분명한 방향 감각을 제시하지 못하지만, 운루의 극작품은 동시대 극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젠클레버, 게오르크 카이저 등의 극작품들은 운루의 영향 없이 출현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