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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호: (1) B. 트라벤의 망각된 독일 문학

필자 (匹子) 2022. 12. 27. 09:14

1. 들어가는 말

 

“삶이란 당사자가 쓴 책보다도 더 가치 있다.” (트라벤)

“내 책에서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작가를 무시하고, 작품을 논하세요. 내가 무엇에 대해 어떻게 완강히 저항했는가를. 그게 공산주의든, 볼셰비즘이든 간에.” (트라벤)

 

본고의 목적은 망각된 독일 작가, B. 트라벤 (1882? - 1969)의 초기 작품의 분석을 통해 유럽 문명의 이윤 추구적 특성, 개인을 억압하고 조종하는 전체주의 그리고 권위주의적 소시민적 관료주의 등에 대한 작가의 비판을 규명하려는 데 있다. 트라벤의 문학은 모험 문학 그리고 오락 문학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그것은 톨스토이나 잭 런던 Jack London보다는 오히려] 철학적 혁명가로서의 기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헨리 토로 H. Thoreau 내지 월트 휘트먼 W. Whitman 등의 문학과 근친하다.

본고에서는 다음과 같은 물음들이 트라벤 문학과 관련하여 다루어질 것이다. 1. 어떠한 이유에서 트라벤은 인디언 문화를 통해서 황금 만능주의 및 이윤 추구의 성향을 극복하려 했는가? 인디언 문화에 대한 트라벤의 애착은 하나의 이상인가, 아니면 유럽 문화로부터의 도피에 불과한가? 2. (파시즘과 볼셰비즘과 같은) 전체주의적 사고는 어떤 전체주의적 거짓 유토피아를 위해서 개개인의 삶을 악이용했는가? 이와 관련하여 트라벤 문학의 본질은 가령 막스 슈티르너 Max Stirner의 무정부주의적 성향과 어떠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가? 3. 한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이나 사회적 고리로부터 얼마만큼 벗어날 수 있으며, 사회적 제반 관계에 예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진정한 자유와 무슨 함수 관계를 지니고 있는가? 등이 바로 그 물음들이다.

 

필자는 본고의 연구 대상을 주로 20년대 말에서 30년대 말까지 발표되었던 트라벤의 소설 「정글속의 다리 Die Brücke im Dschungel」,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 Der Schatz in Sierra Madre", "백장미 Die weisse Rose" 등으로 제한하려 한다. 연구 대상을 제한하려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트라벤의 상기한 작품은 (시간적으로는) 유럽에서의 지난 삶 그리고 중미에서의 새로운 삶 사이의 과도기적 시기에, (장소적으로는) 두 개의 대륙 사이에서 씌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작가의 시각은 비판적이자 공정하며, 두 개의 다른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년대 독일에서 「벽돌 굽는 자 Ziegelbrenner」에 발표된 레트 마루트 (B. 트라벤의 이전 이름)의 평문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씌어졌던 단편 작품 등은 부분적으로 원용될 것이다. 그밖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 "죽은 자의 배 Das Totenschiff" 그리고 "목화 따는 사람들 Die Baumwoll- pflücker" 역시 트라벤의 초기 작품에 해당하나, 필자는 이 작품들을 부분적으로 원용할 것이다. 두 작품에서는 두 개의 상이한 문명 사이의 대립이 강력하게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또한 트라벤의 후기 작품, "카오바 Caoba" 연작 그리고 "아슬란 노르발 Aslan Norbal" 등은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왜냐하면 상기한 후기 작품에서는 더 이상 유럽 현실에서 파생된 문제가 다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오직 인디언의 삶과 멕시코의 현실 내부의 문제만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 문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은 후기 작품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2. 감추어진 흔적을 찾아서

“만약 빵이 충분히 있다면, 사람들은 과연 빵 굽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를 묻겠는가?” (B. Brecht: 「Warum soll mein Name genannt werden?」)

 

트라벤은 자신의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고, 심지어는 거주지마저 감추면서 창작에 몰두하였다. 20년대 말부터 4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멕시코의 탐피코 우체국의 사서함을 이용했다. 이는 오로지 자신의 주소를 알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트라벤은 (처음에는 영어를 사용했으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자) 독일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온갖 직업을 전전하다가, 결국 창작에 다시금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밀림속 초가에서 집필에 몰두하였다. 밀림 지역에는 이따끔 재규어와 사자가 출몰했으며, 전기가 공급되지 않고 있었다. 모기, 거미, 뱀, 전갈 등이 그를 괴롭혔다. 종이, 잉크 혹은 연필을 살 수 있는 상점은 35마일 떨어져 있었다. 트라벤을 발굴하고 그의 원고 출판을 도와준 사람은 베를린 도서 조합 구텐베르크의 편집인, 에른스트 프레창 Ernst Preczang이었다. 베를린의 프레창과 멕시코의 트라벤은 원고와 편지를 교환했다. 우편물 송달 기간은 당시에는 40일 정도 걸렸다. 그렇기에 편지 내용은 서로 어긋날 수 밖에 없었다. 프레창은 오로지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고 트라벤의 소설들을 간행하였으며, 가난한 작가에게 원고료를 정확히 송부하였다.

 

무릇 비밀스럽게 비치는 것은 본능적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법일까? B. 트라벤의 비밀스러운 삶은 오랫동안 미국, 독일 그리고 멕시코에서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40년대에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 주위에는 온갖 소문이 그치지 않았다. 예컨대 혹자는 B. 트라벤이 작가 잭 런던 Jack London과 동일 인물인데, 제 2의 삶을 살기 위하여 1916년 자살한 것처럼 꾸민 뒤, 잭 런던은 멕시코 숲으로 숨었다고 했다. 이는 곧 거짓으로 밝혀졌다. 혹자는 트라벤이 실존하지 않는, 그러니까 가상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트라벤은 여류 번역가이자, 차후에 멕시코 대통령이 되는 남자의 누이 동생인 에스페란차 로페스 마테오스 Esperanza López Mateos가 지어낸 필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미가 1952년에 자살한 뒤, 이 소문은 사라졌다. 몇몇 사람들은 B. 트라벤이 (나중에 제 1차 세계대전을 이끈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의 사생아라고 주장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독일의 󰡔슈테른󰡕 잡지의 기자가 멕시코로 와서 취재하였다. 잡지의 기사에 의하면 미국의 여배우, 헬레네 마레트 (B. 트라벤의 어머니?)는 1880년경에 유럽 공연 길에 포츠담에 머문 적이 있는데, 이때 24살의 황태자와 깊은 애정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작가 트라벤이 나병 환자라고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비밀스러운 작가는 치아파에서 은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트라벤이 사망한 뒤에 비밀스러운 작가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1969년 3월 28일에 미망인인 로자 엘레나 루한은 “B. 트라벤은 원래 1918년 독일에서 활동한 작가, 배우 레트 마루트 Ret Marut였다” 라고 신문에 발표하였다. 만약 금전과 관계되는 판권 문제만 아니었더라면, 그미는 이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이유에서 B. 트라벤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을 은폐시키려고 애썼을까? 과거에 체험했던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 때문이었을까?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