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전독문헌

서로박: 카프카의 '학술원을 위한 보고' (2)

필자 (匹子) 2022. 3. 15. 16:47

(9) 충동과 무의식을 택할 것인가? 문명, 초자아를 택할 것인가? 친애하는 B, 카프카의 매력은 작품의 다양한 해석에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카프카의 단편을 어떤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습니다. 빨간 피터가 유인원으로서의 본성을 상실하고, 인간의 문화를 습득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 문명이 충동의 억압으로 인하여 발전되어나간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의 문화 이론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를테면 빨간 피터는 자신의 여자 친구인 침팬지와 함께 있으면, 심리적 편안함을 유지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뭍 인간들을 대할 때 그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빨간 피터는 맨 처음 아프리카에서 총을 맞았는데, 이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거세 행위와 거의 일치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분석학의 해석을 바탕으로 카프카의 사랑의 삶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카프카는 작품 집필을 위해서 성적 만족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예컨대 그는 사랑의 삶에서 여러 번에 걸쳐서 실패를 거듭했지요. 한 여자와 세 번 약혼하고 세 번 이혼한 까닭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카프카가 무엇보다도 작가 생활을 영위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 기인합니다.

 

(10) 브렘의 책 『동물의 삶』: 넷째로,「학술원을 위한 보고」의 내용과 주제는 카프카가 살았던 당시의 자연과학의 결과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카프카는 원숭이의 체포, 유럽에로의 항해, 훈련, 버라이어티 쇼, 호텔에서 거주하는 원숭이 등의 이야기를 다음의 책에서 추출해내었습니다. 즉 동물학자이자 작가인 알프레트 E. 브렘 (Alfred E. Brehm, 1829 - 1884)의 『동물의 삶 Tierleben』이 바로 그 책들입니다. 브렘의 책은 13권으로 이루어져 잇습니다. 문헌에 실린 우랑우탄 그리고 침팬지에 관한 브렘의 서술은 카프카의 그것과 거의 일치합니다.

 

브렘의 책에서도 “피터 영사 Peter Consul”라는 이름의 원숭이가 등장하는데, 그는 드레스덴 동물원에 머물던 실존하던 원숭이로서 사진과 함께 책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마이센 지방의 도공들은 피터의 모습을 그려서 도자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 침팬지는 브렘의 책에 수록되었고, 연미복 차림으로 버라이어티 쇼 혹은 서커스에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커다란 웃음을 선사하였습니다.

 

당시에 관객들은 눈이 둥그렇게 부릅뜬 채 침팬지가 과연 짐승인지, 아니면 원숭이의 껍질을 뒤집어 쓴 사람인지 의아해했습니다.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이 오래 전에 죽은, 잘 알려진 원숭이의 이름을 따온 것 같습니다. 실제로 1908년 9월 그리고 1909년 4월에 프라하에서 피터 영사의 버라이어티 공연이 개최되었는데, 카프카는 이 공연을 관람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1) 다윈의 진화론은 과연 타당하며, 진화를 위한 실험은 그 자체 바람직한가? 19세기 말엽에 동물 심리학자 내지 동물 행동 연구가들은 다윈 Darwin의 진화 이론을 거론하면서, “피터 영사”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믿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인간이 원숭이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진화가 촉진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몇몇 학자들은 개, 말 그리고 원숭이들에게 계산하기, 책 읽기 그리고 글쓰기를 가르쳤습니다. 이는 동물들을 인간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한 단계 높여서 급속하게 진화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피터 영사”의 경우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범례로 작용했지요. 그들은 실험을 통하여 수백만 년 동안 우연히 전개되어온 진화의 과정을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카프카는 당시에 다윈의 추종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말하는 짐승에 관한 학문적 담론에 몰두한 바 있습니다.

 

(12) 물구나무서서 바라본 세상은 참으로 우스꽝스럽구나. 혹은 원숭이의 눈에 비친 인간 세계: 카프카는 다윈의 진화론의 제반 결론에 대해서 하나의 이의를 제기합니다. 가령 빨간 피터는 진화론적 발전 속도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더 이상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려고 애를 씁니다. 다시 말해서 마치 진화를 거듭하는 것 같은 빨간 피터의 이야기는 내적 본능이라는 주관적 의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빨간 피터는 더 이상 학문적 대상으로서의 객체가 아닙니다.

 

카프카가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한 주인공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원숭이입니다. 그래, 빨간 피터는 진화에 관해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학술원 회원들의 모임에서 자신의 과거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세계를 원숭이의 눈으로 고찰하게 만듭니다. 다시 말해서 예컨대 빨간 피터는 인간들이 버라이어티 쇼에서 벌이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곡예를 바라보며, 조소를 터뜨립니다. 나아가 빨간 피터는 다음과 같이 실토합니다. 즉 자신을 가르치던 첫 번째 조련사는 심지어 우랑우탄과 다를 바 없는 이상한 사람인데, 정신 병동으로 보내져야 할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13) 그렇다면 문제는 주체의 의지와 주위 환경 사이의 관계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네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섯째로 작품의 주제는 환경과 주체 사이의 상호관계에서 새롭게 파악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카프카의 단편 소설은 다음의 문제를 보여줍니다. 한 생명체의 자유로운 의지는 어째서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어떤 낯선 현실에서 갈등을 빚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마디로 카프카는 인간의 일방적인 (편협한?) 관점에서 비롯한 판단을 처음부터 거부합니다. 가령 “유익하다”, “해롭다”, “삶에 가치 있다” 등과 같은, 다윈 식의 실용적 사회학의 판단은 그 자체 불충분한 것으로 이해될 뿐이지요.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카프카는 “주관적 심리학”의 방법론을 도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동물은 자신의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이를 개척해나가기 위해서 자신과 주위 환경을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 변화시킨다는 게 바로 그 주관적 심리학의 방법론이 아닌가요? 이것은 먼 훗날에 환경과 주체의 내면 사이의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환경 이론을 탄생시키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이를테면 스웨덴 출신의 박애주의자, 야콥 폰 우엑스퀼 (Jakob von Uexküll, 1944 - )의 환경 이론을 생각해 보세요.

 

추송웅 선생이 열연하는 모습

 

(14) 막스 브로트의 아내, 엘제 브로트 Else Brod는 1917년 12월 9일 프라하의 어느 클럽에서 이 작품을 낭송했는데, 이때 커다란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 후로 작품은 일인 극작품으로 각색되어, 심심치 않게 무대에 공연되었습니다. 1963년 크라우스 캄머 Kraus Kammer는 독일의 TV에 출연하여 카프카의 작품을 멋지게 소화해낸 뒤에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였습니다.「학술원을 위한 보고」는 오래 전에 한국에서도 소개되었고, 관객들의 폭발적인 찬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빨간 피터의 고백”의 빨간 피터의 역을 맡은 분은 고 (故) 추송웅 선생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면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In der Strafkolonie」와 함께 카프카의 가장 훌륭한 걸작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은 주어진 현실과 어떤 가상적인 (?) 다른 현실을 오가는 어느 생명체의 체험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이러한 관점에서 귄터 아이히 Günter Eich의 방송극들과 묘하게 연결되는데, 아직 누구도 카프카의 소설을 아이히의 문학과 비교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