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박설호: 견유 문학론 (1)

필자 (匹子) 2022. 6. 24. 11:00

(문학의 행위는 삶에서 부수적이다. 허나 이런 부수적인 행위가 없다면, 삶은 얼마나 황량할까? 꿈이 없는 삶, 그냥 목숨을 부지하는 삶은 추하고 허망할지 모른다.)

 

1.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Canes timidi vehementius latrant.). 하나의 입으로 어찌 두 가지 내용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을까? 장자 (莊子)가 까치 한 마리를 관찰하는 에피소드를 생각해 보라. 새를 관찰하며 서성거리는 동안에, 장자는 또 다른 생각과 주어진 전체로서의 세계를 망각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 한 마리가 컹컹 짖는 동안에, 그 개는 중요한 다른 일을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컹컹 짖기 전에 깊이 생각해야 하며, 우선 신중하게 사방을 둘러보아야 한다.

 

2.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 (Canem timidum vehementius latrare quam mordere.) 사고 (事故)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한다.

 

3.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개가 마구 짖는 것은 위협과 같은 의사 표현이지, 그 자체 행동은 아니다. 마치 사람이 말과 글을 사용하여 자신의 의사를 밝히듯이, 개 역시 꼬리를 흔든다든가, 혹은 컹컹 짖음으로써 의사를 표명한다. 먹이를 찾아, 혹은 암캐를 찾아 헤맨다든가, 물어뜯는 것은 분명히 행동이다. 이렇듯 인간 동물은 말과 글로 의사를 표시한다. 말과 글은 의사 표시일 뿐, 아직 행위는 아니다. 말과 글은 행위와 실천의 전제 조건 내지는 실천된 행위에 대한 해명인 셈이다. 말과 글은 행위와 실천에 종속된다.

 

 

디오게네스는 개와 함께 통 속에서 살았다.  가끔 수음을 하면서 그는 말했다. 굶주림도 이렇게 쓱쓱 만지는 식으로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배 터지게 먹지 않으면 오래 산다. 디오게네스는 90년을 살았다. 

 

4.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무턱대고 물어뜯는 법이 있을까? 개는 일단 컹컹 짖음으로써 상대방에게 경고한다. 물어뜯는 순간 개는 짖지 않는다. 거대한 혁명 내지는 변혁의 기간 동안에는 아무도 글을 쓰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뜻대로 활약하려 하고, 무언가를 실천하려 한다. 그렇기에 말과 글은 행위와 실천 이전에 사용되거나, 행위와 실천 이후에 사용된다. 이렇듯 행위가 진행될 때는 말과 글은 불필요하다. 말과 글은 행위와 실천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과 글은 행위에 비해 복합적이다. 왜 그러한가?

 

5.

컹컹 짖는 의도를 생각해 보라. 개의 울부짖음 속에는 수많은 의향이 담겨 있다. 그러나 물어뜯는 행위는 한 가지 결과만을 남긴다. (고뇌하는 햄릿은 안타깝게도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는 반면에, 천방지축으로 헤매는 돈키호테는 어리석게도 실수만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이렇듯 원인은 복잡하나, 행동의 결과는 단순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신문 기사 한 줄을 읽고, 엄청난 분량의 "죄와 벌"을 집필하지 않았던가? 바로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가설을 도출할 수 있다. 즉 거짓 행동은 없으나, 거짓말은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6.

어째서 말하기는 쉽지만, 행동하기는 어려운가?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오히려 짖지 않는 개가 순식간에 사람의 발목을 물어뜯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살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좀처럼 자살하는 법이 없다. 목소리 큰 사람들 가운데 과감한 행동주의자는 드물다. 언제나 침묵하고 있던 자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 말과 글은 -비유적으로 말하면- 구멍 난 술독처럼 작용한다. 그것은 술 마시기도 전에 모든 술을 새나가게 하니까. 그래, 말과 글은 때로는 마치 김빠진 맥주처럼 작용하여, 우리의 행동을 방해하거나 차단시킨다.

 

7.

그렇지만 생각해 보라. 무언가 생각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다.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말과 글로 표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마오쩌둥은 “나의 삶은 곧 나의 전기이다.”라고 말하며, 전기(傳記)에 대해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인상파 화가 마네는 자신의 생애에 관해 묻는 기자에게 꽃밭에 가보라고 말했다. “꽃밭은 나의 생애와 같습니다.” 이와는 달리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자신의 과거 삶에 관해 묻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나의 저서들을 접해보세요. 내 책들 속에 이미 내 삶이 담겨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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