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서로박: 장미와 이카로스의 비밀

필자 (匹子) 2022. 6. 24. 13:30

어머니가 원하신다면, 결혼하죠.” (생텍쥐베리)

 

1.

흔히 사회학이 망원경을 필요로 한다면, 심리학은 현미경을 필요로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학자는 광범한 영역을 조망하며, 연구의 기본이 되는 골격을 거시적 차원에서 끌어내곤 합니다. 이에 비하면 심리학자는 인간 내면이라는 영역을 세밀하게 추적하며, 그 속에서 폭발적인 요소를 찾으려고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지요. 사회학이 심리학적 패러다임을 도외시하면, 공허한 외부 현상만을 기술할 뿐입니다. 이에 반해서 심리학이 사회학적 패러다임을 도외시하면, 일방성의 그물에 갇혀버리곤 합니다.

 

오늘은 오이겐 드레버만 (Eugen Drewermann) 교수의 "장미와 이카루스의 비밀" (고원 역, 개마고원 1998)에 관해 언급하려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의 심층 심리를 날카롭게 추적해 나갑니다.

 

2.

히틀러는 600만 명이라는 유대인을 학살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잔인한 태도의 배후에는 어머니와의 사적인 애증 관계에서 파생된 심리적 뒤틀림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견 아무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요소들은 때로는 엄청난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법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러한 요소들을 외면하곤 합니다. 가령 남한의 학문적 경향은 방대하고, 거창한 대상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심리학적 진단 등은 진지한 논의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곤 하지요.

 

물론 정신 분석학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굶주림이라는 긴급한 욕구에 대한 외면입니다.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의 성 상담소 정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거지는 출입을 금합니다.” 굶주림은 정신분석학자들에게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는 당연지사였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우리는 역사의 거시적 흐름 내지는 광범한 국제 관계 등을 논할 때에도 사소하게 보이는 심리적 요소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독일의 신학자, 오이겐 드레버만 (E. Drewermann) 교수는 인간의 동화 속에 담긴 여러 가지 갈망 그리고 심리적 동인 등을 분석한 정신 분석학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수사들 (Kleriker)"이라는 그의 방대한 책이 80년대에 서독에서 간행된 바 있습니다. 이 책에서 드레버만 교수는 신앙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층적 내면을 세밀하게 기술하여, 독일 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칙칙한 이야기라고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수사들의 동성애의 경향, 수음 등에 관한 이야기는 신앙인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시사해 줍니다. 드레버만은 성모 마리아의 자연 수태 설이 거짓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신부 자격 뿐 아니라, 파다본 대학교 교수직 등을 박탈당했습니다. 드레버만의 견해에 의하면 동정녀 마리아의 신의 계시로 인한 임신은 거짓이라고 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의 이러한 견해를 이단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른바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드레버만 교수를 남미의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와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4.

나의 관심은 드레버만 교수의 신학적 견해로 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 동화들에 대한 그의 심리 비평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어요. 일단 고원 교수의 번역으로 한국어로 번역되어, 1998년도에 간행된 "장미와 이카루스의 비밀"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 책은 문학 비평의 자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삶을 한 영혼의 심리적 내면적 모티브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동화라는 장르는 상기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어린 왕자는 여러 행성을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모든 곳은 낯설고, 이질적이어서 어린 왕자에게 고통과 고독을 안겨줍니다. 어린 왕자의 방황은 마치 그리스도의 그것을 방불케 합니다. 실제로 드레버만 교수는 이에 관한 내용을 성서의 내용과 결부시키고 있습니다. 이때 어린 왕자는 장미와 마주칩니다.

 

5.

“장미”는 피트로 다 모라에 의하면 세 가지 사항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첫째로 장미는 “순교자의 합창 (chorus martyrium)”이라고 합니다. 순교자의 목에서 떨어지는 피는 장미처럼 붉다고 합니다. 둘째로 장미는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물 (mediator Dei et hominum)”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예로서 우리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셋째로 장미는 “순결한 여성의 성기 (virgo vaginae)”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여성의 불그레한 질 (膣)은 장미꽃을 연상시킵니다.

 

어린 왕자에 나타난 장미는 사랑에 대한 원형의 상과 같습니다. 드레버만 교수는 장미의 비밀을 다음과 같이 해명합니다. 즉 장미는 작가 생텍쥐페리의 어머니의 상과 다름이 없다고 말입니다.

 

6.

그러면 이카로스는 무슨 비밀을 지니고 있을까요? 어린 왕자는 고독의 고통을 느끼며, 여러 행성을 돌아다닙니다. 작가 생텍쥐페리 역시 비행사로 살다가 짧은 인생을 마쳤습니다. 그 자신이 바로 어린 왕자요, 찬란한 이카로스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애타게 하늘 위로 솟아오르게 충동했을까요? 그것은 궁극적으로 장미로부터 도망치려는 욕구, 바로 그것입니다. 어린 왕자는 어머니를 사랑하나, 어머니에게서 완전한 사랑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이 경우 연적 (戀敵)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어린 왕자는 어머니의 세계로부터 정 반대되는 “남성적 이상”을 실현하려고 있는 힘을 다해 비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단순히 정신분석학적 용어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흔히 페미니스트들은 남한에 가부장주의가 지배한다고 주장합니다만, 이는 부분적으로 옳습니다. 일견 남자들이 모든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 반대의 경우가 허다합니다. 흔히 남성적 권위를 자랑하는 “마초 (Macho)”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어머니, 혹은 어머니를 닮은 아내에게 애정적으로 종속되어 있지 않습니까?

 

7.

이를테면 술꾼을 생각해 보십시오. 작품 "어린 왕자"에서도 술꾼은 등장합니다. 그는 술 마신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술이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거대한 젖가슴 속에 담긴 젖과 다를 바 없습니다. 포유류의 젖 빠는 행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헝가리의 정신분석학자 산도르 페렌치 (Ferenczi) 역시 언급한 바 있지요. 실제 주어진 현실이 너무나 각박하고 냉엄하기 때문에 술꾼은 언제나 술의 세계에 빠져 들어갑니다. 술이란 술꾼에게는 경쟁, 승리, 성취 등에 대한 초조감 내지 불안감을 잊게 해주는 매개체로 작용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술꾼들은 무척 마음이 여린 사람들입니다. 정신병자들이 내면에 고결한 프시케를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바람둥이 가운데 효자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카사노바 콤플렉스가 바로 그것이지요. 어머니를 너무도 사랑하는 사내아이는 성취될 수 없는 욕구를 무의식 속에 지닌다고 합니다. 이는 나중에 한 명의 여자로 만족할 수 없는 병적 징후를 낳게 한다는 것입니다.

 

8.

당신도 아시다시피 세상사가 모조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즉 인간 동물의 모든 일들은 궁극적으로 사랑과 성을 찾으려는 목표로 향한다고 말입니다.

 

힘들게 일하는 어느 배추 장수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더러운 시장 터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그건 밤에 아내를 멋지게 끌어안기 위함이랍니다. 나도 아내와 어머니 때문에 열심히 일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니 먹여 살려야지요.” 그래, 누가 말했던가요, 역사는 남자에 의해서 이루어지나, 그 뒤를 조종하는 자는 여자라고? 지금은 밤 시간입니다. 당신은 잠이 들었을까요? 아마 대통령 후보자들도 지금쯤 잠을 청하고 있겠지요. 어쩌면 정치가들의 아내는 남편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다독거릴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든 권력을 차지하여, 자신을 만족시켜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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